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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Apr 08. 2020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아이와의 대화 3

은 저녁 거실에서 두 아이와 함께 놀고 있었는데 사랑이가 갑자기 미끄럼틀 위에 올라서더니,


"엄마! 엄마! 저기 보세요!! 저기 저기!!"


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뭔데 뭔데?"


자세히 봤더니 아주 날씬한 초승달이 떠있었다.

"초승달이에요. 초승달!"
"우와, 초승달이 떴네? 예쁘다. 초승달!"
"엄마, 그런데 보름달은 언제 뜨는 거예요?"
"지금 초승달이니까 아직 열 밤 넘게 더 자야 할 걸?"
"우와, 우와! 초승달이다!"
"엄마는 초승달 좋아. 사랑이도 초승달이 좋아?"
"나는 부엉이가 좋아하는 보름달이 좋아요."


함께 읽었던 '보름달을 좋아한 부엉이'라는 책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봄이는 어떤 달 좋아할까?"
"초승달 좋아하겠지. 엄마랑 똑같은 거."
"아, 봄이는 초승달 좋아하는구나, 엄마랑 같은 거 좋아한다고."

그 말들이 다 너무 예쁘고 귀해서 미소 짓고 있는데 구름이 초승달을 덮어버려 잠시 달이 보이지 않았다.

"어? 엄마. 초승달이 없어졌어요."
"어, 그렇네? 구름이 초승달을 가렸나 보다."
"안돼! 구름 비켜! 내가 얼마나 초승달이 보고 싶겠어!"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사랑이가 초승달이 보고 싶었구나!"


하는데 구름이 살짝 걷히며 달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우와! 오예! 구름이 초승달을 다시 보내줬다!!"
"그러게! 구름이 지나갔나 보다. 다시 보이네!"

그 뒤로 구름이 달을 가렸다가, 걷혔다가는 반복하는 내내 사랑이는 "내가 얼마나 보고 싶겠어!", "오예!! 구름이 달을 보내줬다!"를 반복하며 미끄럼틀 위에서 방방 뛰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며칠 뒤 시댁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엄마, 저기 좀 봐요!"
"어디?"

사랑이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선루프였다. 자세히 보니 달이 보였다.

"달님이 떴어요!"
"그렇네. 이제 반달에서 보름달로 점점 바뀌고 있네."
"나는 보름달 좋아하는데."
"맞아. 사랑이가 좋아하는 보름달로 점점 바뀌고 있어."
"내가 보름달 엄청 엄청 좋아하는데~.  뭐야 뭐야~."

소리를 지르며 신이 났다. 며칠 전 초승달 떴다고 신나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요즘처럼 달의 변화를 계속해서 관찰해 본 적이 있었을까.

"엄마, 근데 달님이 왜 자꾸 따라와요?"
"그렇네. 달님이 우리 집까지 따라오려나보다, "
"왜요?"
"달님이 사랑이랑 봄이 집 구경하고 싶은가 보지?"
"오예! 자꾸자꾸 따라와요. 왜 자꾸 따라오지?"

그 뒤로 지하주차장에 들어서는 순간까지 사랑이는 왜 달님이 우리를 따라오는지 물었다. 나도 계속 달님이 우리 집이 궁금한가 보다고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주차장에 들어서자 더 이상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 달님이 없어졌어요."

"아니야, 달님은 하늘에 있는데 우리가 주차장에 들어와서 하늘이 안 보여서 그래."

"달님이 길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

"달님은 길 안 잃어버리고 잘 올 거야. 사랑이 우리 집까지 달님이 못 따라올까 봐 걱정돼?"

"응,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

"집에 가면 바로 달님이 잘 왔는지 창문으로 가보자!"


차에서 내려서부터 사랑이는 마음이 바빴다. 빨리  집에 가자고 성화였다. 드디어 집에 도착!


사랑이는 현관문을 열기가 무섭게 신발도 현관 안으로 벗어던진 채 거실 창문 쪽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그 시간대에는 거실 창문에서는 달이 안 보이는 시간대였나 보다. 달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별생각 없이 얘기했다.

"사랑아, 달님이 쫓아오다가 길을 잃어버렸나 봐. 못 따라왔나 보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랑이는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 엉엉."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어떤 말로도 진정이 되질 않았다. 결국 신랑이 달이 보이는 다른 방 창문을 열어 보여주고서야 울음이 그쳤다.


"사랑아, 달님한테 우리 기도할까?"

"무슨 기도?"

"내일도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그래, 좋아!"




살면서 이렇게 달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한 적이 있을까?

달뿐만이 아니다. 아이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작은 벌레 한 마리,  해질녘이면 창밖 가득한 노을,  해와 달까지 어떤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초록색 나무도 있고, 빨간색 나무도 있고, 노란색 나무도 있어요.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나뭇잎들이 바닥에 다 떨어졌어요. "

"저 새들은 어디로 날아가는 거예요?"

"땅 속에 지렁이 살고 있어요? 지렁이는 뭐 먹어요? 엄마 지렁이, 아빠 지렁이, 오빠 지렁이, 아기 지렁이 있어요?"

"저기 높이 하늘 봐요."

"나뭇잎 색깔이 달라졌어요!"

"꽃은 먹고살아요? 꿀벌이 꽃 잡아먹어요?"

"엄마,  저기 보세요. 노을이 왔어요!"


아이에겐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다. 어른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어쩌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이야깃거리가 된다. 아이와 그런 사소하지만 귀한 것들로 끊임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그런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훗날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는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정성스럽게 들어주고 함께 이야기 나누어주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고 싶다.



 

문득 궁금하다. 나도 사랑이만 한 아이였을 때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달의 변화만으로도 재잘재잘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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