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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Oct 04. 2022

같이 쓰고, 같이 살며, 행복을 느낍니다.

선량 작가님, 정아 작가님.

한국은 계절이 역행하는지, 한동안 가을가을하던 날씨가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고 여름여름한 햇살이 다시 내리쬐고 있어요. 도쿄와 밀라노의 날씨는 어떤가요?

    

어쩐지 편지의 서두에는 꼭 날씨와 계절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걸 보니, 주입식 교육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우리 어렸을 때, 편지 쓰는 법을 배우며 받는 사람-첫인사-날씨나 안부 묻기-하고 싶은 말-끝인사-보내는 사람 이렇게 써야 한다고 배웠잖아요. 어릴 때 배운 내용이 고스란히 각인되었는지, 자꾸만 작가님들의 이름을 부르고 나면 계절 인사를 건네야 할 것만 같아요.      


아니, 어쩌면 두 분과의 물리적 거리를 의식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끼지는 못하지만, 편지를 쓰려고 하면 불현듯 두 분과의 물리적 거리가 느껴지곤 해요. 그나마도 비슷한 계절을 공유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분과 비슷한 날씨를 이야기하고, 두 분의 사진에서 비슷한 두께의 옷차림을 확인하다 보면 그래도 우리의 거리가 영 멀지는 않구나, 내심 안도하게 되거든요.


투고 원고를 만들고, 이내 계약을 하고, 정아 작가님이 보내주신 꽃다발로 자축을 했던 것이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벌써 세 번의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계획에 불과하던 목차를 초고로 써냈고, 몇 번의 퇴고를 했지요. 제목을 정하고 표지 디자인의 느낌을 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지요.     




두 분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저는 제 세계가 무한히 넓어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구라는 도시도, 교사라는 직업도, 비슷한 직업군을 가진 주변 사람들도, 생각해보면 저에게 보이지 않는 테두리였어요. 보이지 않는데 너무도 선명한, 이 모순적인 느낌을 짐작하실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테두리를 벗어날 생각도 못 했고, 벗어나서도 안 된다고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테두리 안은 안전했거든요. 벌이도, 생활도, 미래도요.     


작가님들과 함께 글을 쓰고 삶을 나누면서, 제 테두리가 얼마나 안일하고 좁은 세계인지 매 순간 느꼈어요.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에 주저함이 없으신 선량 작가님과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정아 작가님의 일상을 듣는 것만으로도, 저는 자주 움찔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작은 선 안에서 내 삶을 규정하고 단정 지으며 살아왔는지, 때론 조금 부끄럽기도 했어요.   

   

내년이면 마흔이 됩니다. 십 대 때는 마흔을 생각조차 못했고, 이십 대 때는 마흔이 너무 늙어버린 나이라 생각했어요. 삼십 대가 되어서는 마흔이 두려웠는데 막상 마흔을 앞두고 보니 별거 없네, 싶었어요. 많은 것을 이루었고 그만큼 가졌고, 그래서 이제는 좀 덜 욕심내고 살아도 되겠다 생각하게 되는, 그런 나이요. 그런데 저, 작가님들을 만나고 나서 마흔을 앞둔 마음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님들 덕분에 두 번째 책을 쓸 수 있었고,  세 번째 책도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님들과 연결된 고리를 단단히 붙잡았더니 기적이 일상처럼 일어났어요. 이제 저는 안일했던 삶의 테두리를 조금씩 더  확장해보고 싶어요. 더 이상은 이룰 게 없다, 꿈이 없다 생각했었는데 더 많이 이루고 싶고 더 많이 꿈꾸고 싶어 졌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가진 것을 포기하지는 못하겠지요. 아마 모든 것을 움켜쥐려다 더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두려운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저의 도전에는 언제나 작가님들의 응원이 함께 할 것이고, 저는 그 마음에서 진심을 느낄 테니까요.      


작가님들과 함께 책을 쓰게 된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작가님들과 함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 진짜 기적이었네요. 태생이 장녀였던 제가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는 일만큼 어려운 것이 없었는데, 작가님들에게는 자꾸만 얼굴을 묻고 울고 싶고 작은 성취도 자랑하고 싶어집니다. 그만큼 우리의 연결고리가 끈끈하기 때문이겠지요.     




꾸뻬 씨의 행복여행에서 여행을 마친 꾸뻬는 행복의 종류로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그중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행복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행복'이라고 해요.


그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행복이야. 우정, 사랑, 나눔, 다른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지.(꾸뻬 씨의 행복여행, 199쪽)


작가님들과 우정을 나누었고, 서로의 행복과 불행에 주의를 기울이는 동안 저는 태어나 처음 느껴본 종류의 행복을 경험했습니다. 앞으로는 더 자주, 이 행복을 마주하게 되리라 감히 기대하고 고대합니다.


곧 표지가 완성되고, 더 두꺼운 코트를 꺼내 입기 전에 우리의 책이 나오겠지요?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되는 책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언제나 작가님들의 일상이 안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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