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목마에서 용두산공원으로, 다시 엄마의 사랑으로.

by 진아

집 앞 아울렛에 아이들 회전목마를 태워주러 갔다. 이 동네에 4년째 살지만 집 바로 앞에 아울렛이 있는 것은, 그곳에 심지어 회전목마가 있는 것은 여전히 낯설다. 동네가 시내와는 거리가 제법 있는 곳이라, 교외 나들이 삼아 아울렛에 오는 가족 고객들이 많아서 아울렛에는 아이들을 위해 놀이기구 몇 개를 들여놓았다. 그중 회전목마가 있다. 그렇게 회전목마를 집 앞에 두고 사는 덕분에 사랑이는 걷고 뛰기 시작한 이후부터 회전목마라면 지겹도록 탔다.


사랑이는 혼자서, 봄이는 아기띠에 앞보기로 안긴 채로 나와 함께 회전목마에 올랐다. 사랑이는 18개월부터 목마를 탔는데 처음부터도 혼자 타려고 해서 함께 탈 일이 없었다. 그런데 봄이는 혼자 태우기에 너무 작아서 어쩔 수 없이 내가 함께 목마의 등에 올랐다. 띄엄띄엄 거리를 두고 다른 아이들이 탔고, 곧 목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회전목마를 타보는 건지.


빙글빙글, 위로 아래로, 그 단순한 움직임이 봄바람과 만나니 참 좋았다. 오랜만에 회전목마를 타는 사랑이는 기둥을 잡은 두 손에 힘을 꽉 주고는 신이 났는지 발을 마구 굴렀고, 봄이는 처음 느껴보는 목마의 움직임에 옹알이가 폭발하여 무슨 말인지도 알 수 없는 말들로 떠들어대며 까르르 웃었다.




아이들과 함께 회전목마의 움직임을 느끼며, 나는 언제 어디서 회전목마를 처음 타보았을까 떠올려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어린 시절에 회전목마를 타본 기억은 없었다. 분명히 아주 어렸을 때에도 타보았을 텐데, 첫 회전목마의 기억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놀이동산에 가서 자유이용권의 마지막 코스로 타본 것이었다. 그렇다면 언제 처음으로 놀이동산에 가보았지? 엄마와 함께 가보았겠지?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문득 가 닿은 곳은 놀이동산은 아니었지만 내겐 놀이동산 대신이었던 곳, 바로 용두산공원이었다.

버스를 타고 10분이면 갈 수 있던 곳에 용두산공원이 있었다. 엄마는 어린 두 딸의 손을 잡고 날씨가 좋은 계절에는 거의 매주(적어도 내 기억에는) 주말마다 용두산공원에 올랐다. 꽤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했던 그곳에는 꽃시계도 있고 동전을 넣으면 탈 수 있는 놀이기구(놀이기구라고 말하기엔 좀 애매하지만)들도 있고, 넓은 광장도 있었다. 더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용두산 타워도 나오는데, 엄마와 우리 자매는 늘 광장에서 놀았다. 가끔은 동전을 넣고 놀이기구를 타기도 했던 것 같다. 갈 때마다 꽃시계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조금씩 바뀌는 풍경들을 담아 비슷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그때는 필름 카메라 시절이었으니 아마 엄마는 몇 주의 사진을 모으고 모아 사진관에 필름을 맡겼을 것이다. 크면서 앨범을 들여다보니 비슷한 장소에서 다른 옷을 입은 채로 찍은 사진들이 유난히 많았는데 그곳들이 다 용두산공원이었다.


용두산공원 얘기만 나오면 나와 동생에게는 동시에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그 공원에는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어느 날 우리는 그 솜사탕이 너무 먹고 싶어서 엄마에게 그거 하나만 사달라고 무척이나 졸랐었다. 우리 기억에는 거의 드러눕다시피 하며 떼를 썼는데, 엄마는 끝내 사주지 않았다. 조금 자란 뒤에 내가 우리 집 형편을, 또 우리 엄마의 주머니 사정을 알고 나서 엄마가 그 솜사탕을 사줄 여유가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혼자 짐작을 했다. 그래서 괜히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그 기억은 묻어둔 채로 살았다. 그러다 어른이 된 후에 아주 오랜만에 셋이서 함께 용두산공원에 올랐는데, 그때 또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가 있길래 예전에 엄마가 그때 그런 적이 있었다고, 아무리 울고불고 해도 절대 안 사줬었다고 했더니 어이없게도 엄마는 기억조차 없다고 했다. 도리어 엄마는 솜사탕을 사줬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 억울해하면서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많이도 웃었다.


언젠가 엄마가 얘기했다. 그 시절에, 날씨가 좋은 주말이 되면 우리들을 데리고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그렇게 용두산공원에 올랐다고 했다. 햇살은 좋지, 아이들은 한참 에너지가 넘치지, 집은 좁고 답답하지, 집에서 할 것은 없지... 어디로든 데리고는 나가야겠는데 주머니에 여유는 없지, 그런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버스비만 있으면 갈 수 있는 그곳뿐이었다고.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매주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정류장에 내려 같은 길을 걸어서 같은 공원에 오른 것이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마음껏 뛸 수 있고, 철마다 바뀌는 풍경을 볼 수도 있으며, 소소한 간식 하나로도 나들이 기분을 충분히 낼 수 있었으니.


가진 것이 없어도 딸들을 한순간도 그냥 방치하지 않고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 하셨던, 그 마음만은 언제나 사랑으로 충만했던 엄마가 있어서 나와 동생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흠뻑 느끼며 걷고 뛰며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렇게 회전목마에서 놀이동산으로, 용두산공원으로, 솜사탕으로, 끝내는 엄마의 사랑으로 생각이 치달아갈 때쯤 회전목마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던 회전목마가 점차 속도를 늦추며 멈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랑이는 회전목마의 속도가 늦어지기 무섭게 한 번 더 타고 싶다고 졸랐고, 봄이는 회전목마가 멈추어 내가 내리려고 몸을 일으키니 자기는 내리기 싫다는 표현으로 아기띠 안에서 발을 굴러댔다.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다음 주에 또 타러 오자고 얘기하고는 회전목마에서 내려 출구로 나왔다.


사랑이는 제 킥보드를 타고 앞으로 내달리고, 봄이는 작은 손으로 내 손을 잡은 채로 두 발로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참으로 가진 것 없던 나의 유년기가 소소한 행복들로 충만한 것은 가늠할 수 없는 엄마의 사랑과 희생 덕분이었음을 되새겨 보았다. 더불어 나는 엄마만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자문해보았다. 나는 엄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졌지만, 엄마만큼 나를 희생하여 아이를 키워낼 자신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봄이와 함께 걸어가는데 앞서 킥보드를 타고 달리던 사랑이가 넘어졌다. 봄이의 손을 신랑에게 쥐어 주고는 사랑이에게로 뛰어가 아이를 일으키며 손을 털게 했다. 그리고 그대로 사랑이의 손을 잡고는 다른 한 손으로 다시 봄이의 손을 잡았다. 두 아이의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희들의 유년기도 나의 유년기만큼이나 행복으로 충만하기를, 그러기 위해 나의 오늘을 너희들에게 희생함을 아까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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