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타클로스였던 이모를 위하여.

by 진아

어제 오후 두 아이와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카톡 알림 소리가 들렸다. 확인해보니 이모가 어린이날이라고 아이들과 함께 먹으라며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낸 것이었다. 아이들이 찾아대는 통에 감사하다는 한 마디의 답장을 보내는데 5분이 넘게 걸렸다. 이모는 아이들을 너무 예쁘게 잘 키워서 보기 좋다며, 더 좋은 것을 못 해주어서 미안하다고 답장이 왔다. 조금 더 긴 답을 쓰다가 봄이에게 휴대전화를 뺏기를 바람에 더 이상 톡을 잇지 못했다.


5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들어준 우리 이모♡

오늘 이모가 보내주신 기프티콘으로 케이크를 사 와서 촛불도 불고, 아이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이모는 그렇게 서른일곱이 된 나에게도 여전히 불쑥불쑥 선물을 보내는 나만의 산타클로스다.



내가 두 돌 때쯤 되었을 때, 이미 혼자가 되었던 엄마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아빠는 동생을 남기고 다시 사라졌다. 그 무렵 엄마는 작은 단칸방에서 나와 둘이 남겨진 채로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고 있었다. 어린 딸 하나도 혼자 감당하기 버거웠을 엄마에게 둘째라니. 엄마는 절망했지만 동생을 포기할 수 없었고, 어린 딸을 보며 입덧까지 견뎌야 하는 버거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는 어린 나의 손을 잡고 동네 산책을 하다가 근처 슈퍼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 가판대에 진열되어 있던 토마토가 너무 먹고 싶었다고 한다. 입덧을 경험해본 여자들이면 알겠지만, 입덧 중에 무언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면 오로지 그 생각만 난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 토마토를 덥석 살 수 있는 돈 천 원이 없었고, 서러운 마음에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그 마음을 쏟아냈다고 한다. 이모는 퇴근과 동시에 토마토 한 아름과 어린 나의 선물을 잔뜩 사서 우리의 단칸방에 찾아왔고 엄마는 그토록 먹고 싶던 토마토를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이모는 그때부터도 나에게, 또 엄마에게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였다.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큼직한 선물 보따리를 들고 찾아오는 산타클로스가 있다는 것은 그때의 엄마를 버티게 하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엄마와 나, 동생 세 식구가 외가로 들어간 이후,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이모는 큰 트리를 만들어주었다. 방 한 칸 크기가 될까 말까 했던 그 좁은 거실 겸 부엌 한 편에 이모는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내 키만 한 트리를 만들어주었다. 트리용 나무에 장식품을 하나하나 걸고, 전구를 연결해서 탁! 하고 불을 켰을 때, 그 어두운 거실 구석에서 반짝거리던 트리의 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예뻤는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렇게 진짜 크리스마스를 이모와 함께 살며 처음으로 맞아보았다.


우리가 이모와 함께 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모는 이모부를 만나 결혼을 해서 먼 도시로 신혼살림을 꾸려 독립을 하셨다. 그렇게 이모와의 추억은 끝일 줄 알았지만 이모만큼이나 살뜰히 우리를 아끼고 사랑해주신 이모부 덕분에 우리는 방학마다 이모네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자매는 당시 관련 기업에서 일을 하셨던 이모부 덕분에 에버랜드 연간 이용권을 갖고 있었고 그 덕에 방학마다 에버랜드를 제집 드나들 듯이 다녔다. 캐리비안베이가 문을 열었던 첫해에는 이모네 세 식구와 우리 세 식구가 새벽부터 줄을 서서 입장을 해서는 하루 종일 지칠 때까지 물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해골 모양의 큰 박에서 쏟아지던 물줄기, 유수풀, 파도풀까지, 당시에는 모든 것이 너무나 새롭고 놀라웠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어이없지만 추로스다. 종일 물놀이를 하고 나와서 출출해진 타이밍에 이모가 사주셨던 추로스 하나! 방금 구워 온기가 가득한 데다 계피향에 설탕 맛까지 더해져 세상에 이런 맛이 또 있을까 생각하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추로스가 뭐라고, 그것 하나에도 그렇게 감동하던 초등학생 시절의 추억에도 이모가 가득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학 과제였던 탐구생활에서 수도권 지역의 유적이 나오면 이모부는 일부러 휴가를 내서까지 우리를 데리고 다니셨다. 광릉수목원, 독립기념관, 세종대왕릉 등 모두 이모부와 이모가 있었기에 가볼 수 있었던 곳들이다. 그렇게 이모는 결혼 후에도 우리 가족에게 여전히 산타클로스가 되어주셨다.




이모는 보험 관련 일을 하셨는데 워낙 성격이 좋고 말씀도 잘하시는 데다 사람을 끄는 매력도 있으셔서 꽤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가셨다. 이모네의 부유함과 윤택함은 이내 우리 자매와 엄마에게로 전해졌다. 이모부는 엄마 몰래 내 통장에 꽤 자주 용돈을 보내주셨고, 이모는 우리를 만날 때마다 더 좋은 음식을 사주려고, 더 좋은 곳에 데려가 주려고, 더 좋은 옷을 사주려고 안달이셨다. 우리는 그 덕에 이모를 만나면 언제나 제일 좋은 곳에서 제일 좋은 음식을 먹으며 휴가를 즐겼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모의 삶은 부유하지도, 윤택하지도 않다. 이모의 삶에 갑작스럽게 펼쳐진 수많은 우여곡절을 나의 짧은 글에 다 담을 수도 없고, 이모에게 아픈 그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싶지도 않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시며 지금 이모는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프시다. 집도 작은 곳으로 옮기셨고, 건강이 나빠져서 더 이상 일을 하기도 어려운 상태다. 이모는 가끔 하는 나와의 통화나 카톡에서는 아픔도 슬픔도 전혀 티를 내지 않으시지만, 엄마와의 통화에서는 곧잘 우신다고 한다.


나의 산타클로스가, 영원히 나의 산타클로스일 줄 알았던 우리 이모가 아프다니.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고, 사실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평생을 우리의 이모가 아닌 또 다른 엄마처럼 사셨던, 일 년 사계절 365일 언제든 선물꾸러미를 들고 우리를 찾아오던 산타클로스가 주저앉아버렸다니.


가끔, 아주 많이 두렵다. 이대로 이모를 잃게 될까 봐. 아직까지 이모에게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다. 이모는 우리가 잘 사는 것이 기쁨이라고 하시지만, 우리 아이들의 동영상을 보는 것이 큰 행복이라고 하시지만, 자꾸만 주저앉고 무너져내리는 이모에게 정말로 힘이 되어드린 적이 없다.


가진 것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글뿐, 그래서 이모에게 이 글을 바친다. 눈도 잘 떠지지 않으셔서 이 글을 다 읽으시는 데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 시간을 버티며 조카의 글이 발행되었다는 알람이 뜨면 언제든 몸을 일으켜 한쪽 눈으로나마 정성껏 내 글을 읽어 내려가실 이모에게 이 글을 드린다.


이모는 언제나 나의 산타클로스였다고, 이모의 사랑으로 이만큼 자라 잘 살아가고 있다고, 지난 이모의 삶이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이모의 산타클로스가 되어드리고 싶다. 묵직한 선물꾸러미에 건강과 행복, 평안과 사랑을 가득 담아, 이모의 작은 집 가득 채워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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