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듣다가 우연히 내음악이라는 탭을 눌렀다가 피식 웃었다. 살다 보니 플레이리스트에 발라드보다 트로트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날이 온다. 동요가 발라드를 이긴 건 오래됐지만 트로트라니!
이게 다 미스터트롯 때문이다.
심지어 트로트가 더 많다. 많아도 한참 많다.
미스터트롯은 방송시간이 워낙 늦은 밤까지 이어지던 프로그램이라 육아에 지친 내가 본방사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또 미스트롯을 몇 편 재밌게 보긴 했지만 그건 그때뿐 그 관심이 미스터트롯으로 이어지진 않아서그냥 그런 프로그램이 있나 보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미스터트롯 재방송을 잠깐 보게 되었는데, 김호중, 이찬원, 정동원, 고재근 이렇게 네 사람이 팀으로 '희망가'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목소리와 울림이 온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이어지는 심사평에서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정동원 군을 위로하는 마스터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좀 전에 들었던 노래의 울림 때문이었을까. 거짓말처럼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내 눈에는 어느 배우보다도 더 멋진 젊은 날의 우리 할아버지
2년 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노래를 잘하셨다. (할머니는 언제나 할아버지가 음치라며 타박을 하셨지만 우리 식구 누구도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퇴직 이후 경비일을 하시다가 60대 후반부터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집에서 특별한 일없이 지내셨다. 그래도 건강이 괜찮으셨던 70대 중반까지는 물도 뜨러 다니시고, 가까운 곳에 친구분들을 만나러 외출도 하시고 여러 모임에도 나가셨지만 몸이 급속도로 쇠약해지신 후로는 거의 집안에서 텔레비전을 보시며 지내셨다.
할아버지는 일일드라마, 바둑, 스포츠, 뉴스. 시사 프로그램까지 모두 좋아하셨지만 가요 프로그램을 특히 좋아하셨다. 가요무대, 전국 노래자랑,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뿐만 아니라,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성인가요 채널의 방송 시간까지 다 아시고는 한 프로도 놓치지 않고 다 챙겨보셨다. 나는 집에 갈 때마다 할아버지와 함께 가요 프로그램을 봤어도 언제나 낯선 사람들(지금 생각해보면 그들 중에 임영웅도, 영탁도, 장민호도 있지 않았을까)에 낯선 노래들이었는데. 할아버지는 매번 다른 그 노래의 가사들을 어찌 다 외우시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따라 부르셨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곁에 계시지 않아서 어떤 노래였는지는 여쭈어 볼 수도 없지만 그 노래들을 따라 부르시는 할아버지의 낮고 중후한 목소리는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다.
할아버지는 내게 아버지셨다.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존재하지 않았던 내게 평생을 아빠가 되어주신 분이다. 끈질긴 구애 끝에 엄마와 결혼에 성공한 아빠라는 사람은 나를 허니문 베이비로 엄마 뱃속에 남겨두고 신혼 초부터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스물셋, 너무도 어렸던 엄마는 그저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고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남편도 없는 시댁에서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며 몇 년을 살았다. 그러다 우연히 집에 들른 아빠는 또 동생을 남기고 사라졌고 엄마는 고작 스물여섯에 딸 둘을 키우는 가장이 되었다. 그런 엄마를 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묵묵히 엄마의 보호자이자 우리의 아빠가 되셨다. 그렇게 엄마와 우리 자매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우리 자매가 독립을 해서 가정을 꾸린 지금도 엄마는 할머니와 함께 살고 계신다.
막내딸 삼아 키워주신 나와 동생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도, 학위를 받았을 때도, 취업을 해서 독립을 했을 때도, 결혼을 하겠다고 각자의 남편을 인사시켰을 때도, 할아버지는 늘 의연하셨다. 그게 아빠의 역할 인양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잘 살라고 한두 마디의 덕담을 해주셨을 뿐이다. 그런데 동생의 결혼식날, 하객들을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할아버지는 마이크를 잡으시고는 오늘 영이까지 시집보내고 나니 마음이 너무 좋다면서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가 있는데 한곡 불러보겠다시며 노래 한 곡을 멋들어지게 부르셨다고 한다. 가족들 모두 생각지 못한 할아버지의 선물에 감동했고, 엄마는 지난 시간 손녀들의 아버지가 되어주셨던 당신의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으로 많이 우셨다고 했다. 나는 친정과 다른 지방에 사는 터라 그 버스를 타지 않았는데 그때 할아버지 노래를 직접 듣지 못한 게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할아버지는 재작년 내 생일인 12월 31일에 지병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병이라고 해도 암처럼 준비할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가신 거라 아무 준비 없이 할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다. 돌아가실 즈음에는 몸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자주정신을 잃으셨는데, 그날 아침엄마는 내게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가 정신이 좀 돌아오셨는지 "오늘이 진아 생일이제?"라고 물으시며 내 생일을 챙기셨다기에 괜찮으신 줄로만 알았다.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손녀의 생일을 축하해주시고 먼길을 가신 우리 할아버지. 그때 나는 봄이의 만삭 때인 데다가 조기진통이 와서 언제 출산을 할지 모르던 시점이라 할아버지 장례식장에도 가지 못했다. 그 뒤로 봄이 낳고 키우느라 할아버지 산소에도 못 가봤는데 올해 봄에는 꼭 가봐야지 했더니 코로나가 터져서 무기한으로 외출 금지 상태가 되었다.
생활 속에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아 묻어둔 채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자꾸만 미스터트롯이 재방송을 하고, 기사가 나오고 유튜브에 트로트 영상이 올라온다. 미스터트롯 끝나서 좀 덜 울겠다 싶었더니, 사랑의 콜센타가 시작되어 다시 눈물샘이 열렸다. 정말로 이 모든 게 다 미스터트롯 때문이다!
오늘도 플레이리스트에 새로운 트로트를 추가하며 그 멜로디 위에 할아버지 목소리를 얹어본다. 그리고는 쏟아지는 그리움을 아이들의 목소리로 애써 다시 꾹꾹 눌러 담아본다.
할아버지, 살아계셨다면 할아버지의 '원픽!'은 누구였을까요? 누가 '진'이 될지 아이스크림 내기를 했다면 할아버지와 저는 한 편이었을까요?
제대로 된 인사 한 마디 못 했는데, 이 말만은 꼭 바람결에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 전해졌으면 좋겠다.
내게는 아빠이자 할아버지이자 든든한 백그라운드이자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홈그라운드였던 우리 할아버지.
지금까지 할아버지 덕분에 한 번도 아빠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멋진 할아버지가 '있는' 사람으로 잘 살아왔어요. 그러니 앞으로 어떤 어려움에 맞닥뜨리더라도 잘 견디며 행복하게 잘 살아갈게요. 그 넓은 품 안에 살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생전에 한 번도 못 드린 말, 사랑합니다.
사랑이 뒷모습이 귀여워서 찍었던 사진인데 이제는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꺼내보는 사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