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습관, 일기 쓰기

매일 일기를 씁니다.

by 진아

초등학교 6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하는 숙제가 바로 일기 쓰기였다. 1학년 때는 그림일기, 2학년부터는 그림을 뺀 일기로, 매일 일기를 써서 등교하자마자 담임 선생님 책상 위에 일기장을 올려두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방학숙제에도 매일 일기 쓰기가 있었는데, 미뤄놨다가는 개학 직전에 호되게 당하는 숙제라 웬만하면 미루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혹 하루 이틀 미루더라도 날씨만큼은 그날그날 기록을 해놨었다. 생각해보면 선생님들도 그 일기를 날씨까지 체크하며 다 읽지는 못하셨을 것 같은데, 순진했던 초등학생 마음에 날씨를 거짓으로 기록했다가는 일기를 밀려 쓴 것이 들통날까 봐 조마조마했던 모양이다.(실제로 방학이 끝나갈 때쯤 되면 친구들에게서 일기장 좀 빌려달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게 다 일기를 베끼려는 것이 아니라 날씨를 베끼려는 것이었다. )


초등학교 6년 내내 일기를 미루거나 건너뛴 적은 없었다. 하지만 2학년 때부터 4학년 초까지는 일기를 쓰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었다. 2학년 때 일기장에 엄마와 할머니와 함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절에 다녀온 이야기를 써서 냈는데, 뒤에서 일기검사를 하고 계시던 담임 선생님께서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일기장으로 머리를 내리치시며 절에 갔다고 혼을 내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선생님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한들 그게 2학년 아이의 머리를 내리칠 일인가? 요즘 같았으면 신고 감인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던 때였다. 그 일로 내가 느낀 수치심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다시는 일기장에 솔직한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뒤로 내 일기의 내용은 완전히 기계적으로 변했다.


그 사건 이후로 일기 쓰기에 마음을 접기도 했지만, 초등학생의 일과랄 것이 특별한 것도 없으니 그 내용은 매일 비슷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무엇을 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일기는 그 무엇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몇 줄로 이어졌고, '참 재미있었다, 즐거웠다, 슬펐다' 등의 무미건조한 감정을 담은 문장으로 끝이 났다. 4학년 담임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매일이 그런 일기의 연속이었다.


4학년 담임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셨는데, 어느 날 우리에게 검사한 일기장을 나눠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정확한 말투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일기 쓸 때 '오늘은'으로 시작하지 말라는 것(당연히 오늘의 일이니까)

무엇을 했는지를 나열하는 일기는 좋은 일기가 아니라는 것

어떤 일이든, 사소한 일 하나라도 그 일에서 느낀 점과 배운 점을 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지금 보면 참 별 것 아닌 가르침이었는데, 그 당시의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주문이었다. '오늘은'으로 시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너무 어려웠다. 그럼 대체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몇 번이나 일기를 고쳐 썼던 기억이 난다. 일기장을 내면 짧게나마 한두 줄의 말을 덧붙여 써주시는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처음으로 일기에 애착을 느끼며 열심히 써보았지만, 그 일기의 수준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의 선생님 말씀이 아직까지 내 안에 살아남아 지금도 일기 쓸 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오늘은'으로 시작하려다 황급히 다른 단어를 고르곤 한다.




내가 진짜 나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29살부터인데, 20대를 마무리하고 30대를 준비하며 괜히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한 순간들이 많아서였다. 처음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비슷한 일상을 나열하며 한두 줄의 느낌을 쓰는 데에 그쳤지만, 그것이 계속되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역으로 일기의 소재를 찾아내는 일상을 살기 시작했다.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고 작은 일에서도 의미를 발견해보았다.


그랬더니 일상이 그저 그런 날들이 아니었다. 매일이 의미 있는 날들이었고, 그 속에서 깨달은 메시지들은 내 삶에 잔잔한 울림이 되곤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기가 손톱에 일어난 거스러미를 뗐다가 하루 종일 후회를 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았다고 썼던 일기이다. 거스러미 하나까지도 일기의 소재가 되었고, 스스로를 가르치는 경험이 되었다.


그렇게 일기 쓰기는 습관이 되었고, 아이를 가지면서는 태교 일기, 출산 후에는 육아일기로 이어서 썼다. 둘째를 임신, 출산하면서 약 1년 정도 너무 힘들고 정신이 없어 일기를 제대로 쓰지 못한 게 뒤늦게 후회가 되어 다시 부지런히 일기 쓰기를 시작한 지 이제 4개월이 지났다.

이사하며 3권이나 잃어버렸다. 그래도 빛나는 내 지난 날들이 이렇게 남아있어서 참 좋다.
첫째의 태교일기와 육아일기는 사진까지 붙이며 참 열정적으로 썼다.(둘째야, 미안..)


29살에 시작된 일기 쓰기는 내 삶을 많이도 바꾸어놓았다. 격동의 20대에도 일기를 썼다면 수없이 잃고 무너지던 그 순간들에도 조금은 덜 상처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일기 쓰기를 통해 내 마음을 다독이는 법, 그렇게 스스로를 치유하는 법을 배웠다. 또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행복, 작은 일에도 기뻐할 수 있는 열린 마음,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까지 얻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기를 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습관,
일기 쓰기.



이 습관이 앞으로도 내 삶을 반드시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