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들에게 고민 상담을 했다.

by 진아

“엄마, 오늘 엄마 표정이 왜 안 좋아?”

“응? 엄마 표정이 안 좋아 보여?”

“응,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한데?”

“아, 사실 엄마가 오늘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었어.”

“왜? 무슨 일인데?”


저녁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는데, 나를 빤히 바라보던 사랑이가 대뜸 물었다. 좀 놀랐다.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나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어내다니. 그날은 정말로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날이었다. 업무 경계가 불분명한 일들이 자꾸만 내가 맡은 부서로 넘어오면서, 업무에 과부하가 걸렸다.


하루 네 시간의 수업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업무를 처리하고, 그러는 와중에 나를 찾아오는 학생들과 따로 상담을 하고,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피드백하고……. 어디 한 군데도 구멍을 낼 수 없어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자꾸만 예정에 없던 새로운 일이 추가되었다. 모두 ‘학생을 위한 일’라는 명분으로 생기는 일들이라 무턱대고 거부할 수도 없었다. 내가 맡지 않으면 분명히 다른 누군가에게 넘어갈 텐데, 그것 또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미룬 일이 아님에도, 마치 내가 미룬 일을 다른 누군가가 처리하는 느낌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렇게 하나둘씩 맡기 시작한 일이 점점 쌓이던 차에 또 새로운 일 하나가 넘어온 것이다.

퇴근하는 길 내내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 일로 상한 감정을 집까지 이어가지 말자고. 그런데 표정마저 감추지는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걸 일곱 살 아이가 바로 알아차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은 엄마가 학교 일이 너무 많아서 힘이 들어.”

“엄마가 일을 미룬 건 아니야?”(‘아니, 이런 말을 어떻게 하지?’ 잠깐 생각했다.)

“아니야. 엄마는 일을 미루지 않아.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하지.”

“근데 왜 일이 많아?”

“음.. 엄마 생각에는 엄마가 할 일이 아닌데, 자꾸 엄마한테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시키네. 엄마가 열심히 해서 그런가.”

“그럼 엄마, 너무 열심히 하지 마.”

사랑이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당연하다는 듯, “열심히 하지 마~!”라는데 순간 통쾌하기도 하고, 한 방 먹은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사랑아, 엄마는 원래 모든 일에 열심인 사람이라, 갑자기 열심히 하지 않는 건 잘 안 될 것 같아.”

“그럼 엄마, 아직 나랑 봄이랑 어린데 엄마도 집안일하면서 우리 돌보면 안 돼?”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사랑이 친구들 엄마는 대부분 주부였다. 사랑이에게는 그게 부러웠을까. 그래도 어른들 손에 맡기지 않고 최대한 나와 남편이 시간을 맞추어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는 아직 엄마 손이 더 필요했던 것일까.


“사랑아, 그건 안 돼. 사랑이 친구들 엄마들은 바깥일과 집안일 중에 집안일을 선택하신 거야. 엄마는 바깥일을 선택한 거고. 대신에 네가 5살이 될 때까지는 집안일을 선택해서 엄마가 학교에 나가지 않았잖아. 이제는 엄마가 바깥일을 해야겠다고 결정한 거야.”

사랑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사이. 내가 뱉은 말을 곱씹어보니, 내 안에 이미 답이 있었다. 나는 일을 선택했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은 없었다.

“엄마, 그럼 어쩔 수 없어. 나랑 봄이랑 키우려면 그냥 해~!”


정적을 깬 사랑이의 마지막 일격. “그냥 해~!” 확실한 답이었다. 그래야겠다, 답하고 나니 막혔던 속에 작은 구멍 하나가 뚫린 기분이 들었다. 으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조금 전까지 어깨를 짓누르던 짐 하나가 덜어진 듯했다.

‘아, 시원하다. 그래, 내 새끼들 잘 키우려면 그냥 하는 거지! 뭐 다른 답이 있겠어~!’


내가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이제는 아이가 나의 마음을 읽어주고 나의 생각을 들어준다. 먼저 마음을 물어주고 눈을 맞추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데, 명쾌하고 시원한 답까지 내려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아들, 앞으로도 엄마 고민 상담 잘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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