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치러진 6월 고1 전국연합학력평가 국어 영역에 출제된 시입니다. 시를 보자마자 '아이들은 이렇게 따스하고 아름다운 시를 문제 풀이의 대상으로 만나는구나' 싶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시의 표현법과 시구의 의미를 묻는 문제를 풀어야 하는 아이들이 이 시에서 감동을 느낄 겨를이 있었을까요.
'나무의 꿈(손택수)'에서 말하는이는 나무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자라서 무엇이 되고 싶니'라고요. 그리고는 나무가 되고 싶어 할 무언가를 추측합니다. '의자, 책상, 다락방, 창문, 배……'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혹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장작으로 생을 마무리한다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또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 시는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따뜻한 위로가 됩니다. 나무의 모든 꿈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시는 나아갑니다. '하지만'을 기점으로 '지금'을 이야기해요. 먼 훗날 '무엇'이 되고자 하는 꿈보다 '지금의 너',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바라봅니다. 바람을 만나, 바람에 여지없이 흔들리는 오직 지금의 너를요.
십 대 아이들이 이 시를 시험이 아닌, 삶에서 만났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요. 문제를 풀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연히 읽게 된 SNS의 한 게시물에서 만났다면. 정답을 찾기 위해 시를 분석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감각을 느끼고 저마다의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요. 감히 단언컨대,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들은 후드득 눈물을 쏟았을지도 모릅니다.
"샘, 꿈은 평생 꾸는 거 아니에요? 왜 당장 진로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이렇게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거예요?"
수업에서 만난 한 아이가 감정을 쏟아냅니다. 꿈을 종용하는 사회에서, 그렇다고 마음껏 꿈꿀 수도 없는 사회(사회적으로 '좋은 직업'이 너무나 분명하게 정해져 있으니까요.)에서 십 대 아이들은 병들어갑니다.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이지? 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지?' 깊이 고민할 틈도 없이 진로와 관련된 활동을 해야 하고, 성적도 꾸준히 잘 받아야 합니다.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오늘의 '나'를 모두 걸고 매일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이 그저 대견하다가도 가끔은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너'를 가만히 위로합니다. 바람을 만나 흔들리는 지금의 '너'로도 충분하다고 다독입니다. 훗날 '무엇'이 되더라도, 너의 삶은 의미 있다고 말해주면서. '지금의 너'를 그저 묵묵히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