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붕불퉁 모과 같은 엄마

가을 모과(문태준)

by 진아

[시쓰는 가을] 여섯 번째 시


가을 모과(문태준)


울퉁불퉁한 가을 모과 하나를 보았지요

내가 꼭 모과 같았지요

나는 보자기를 풀듯

울퉁불퉁한 모과를 풀어보았지요

시큼하고 떫고 단

모과 향기

볕과 바람과 서리와 달빛의

조각 향기

볕은 둥글고

바람은 모나고

서리는 조급하고

달빛은 냉정하고

이 천들을 잇대어 짠

보자기 모과

외양이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나는 모과를 쥐고

뛰는 심장 가까이 대보았지요

울퉁불퉁하게 뛰는 심장 소리는

모과를 꼭 빼닮았더군요


출처: <먼곳>, 창비, 2012



비가 그치고 종일 푸른 가을이었습니다. 가을 앞에는 ‘붉은’이라는 색채어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오늘 만난 가을은 ‘푸른’ 가을이었어요. 아직 단풍은 들기 전이고, 오랜만에 비가 개어서 하늘이 쨍했거든요.


오늘 시는 ‘가을 모과(문태준)’입니다. 모과는 참 독특한 열매예요. 과일이긴 하지만, 청으로 담그지 않는 다음에야 먹을 길이 없습니다. 모과의 진면목은 향기에 있어요. 어릴 땐 모과철이 되면 안방 화장대나 텔레비전 위에 모과 몇 개가 담긴 바구니가 항상 놓여있었어요. 그럼 좁고 작은 집안 가득 모과향이 그윽하게 퍼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모과는 과일의 모습을 한 꽃과 같네요. ‘가을 모과’에서는 모과의 향기에 둥근 별, 모난 바람, 조급한 서리, 냉정한 달빛들이 고루 들어있다고 합니다. ‘대추 한 알(장석주)‘이라는 시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모과나 대추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햇살도 별도 바람도 태풍도 고루 필요한가 봅니다.


저는 2017년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하던 때에 엄마가 되었기에, 그 마음 하나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착각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어요. 사랑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더군요.


아이를 키우며 많이 부서지고 깨졌습니다. 내 안에 이런 모습이 있다니, 싶을 만큼 최악의 나를 만나기도 했고 내가 이렇게까지도 할 수 있구나, 싶을 만큼 희생적인 나를 만나기도 했어요. 매 순간 좌충우돌하며 조금씩 엄마가 되어 갔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엄마가 되는 게 아니라,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로 태어나는 거구나. 아이를 키우며 엄마로 자라는 거구나.’ 뼈저리게 느꼈어요.


이제 두 아이는 일곱 살,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당탕탕 할 때도 많지만, 그래도 조금씩 울퉁불퉁한 엄마로서의 모습을 갖춰가는 중입니다. 오늘은, 아이들에게서 울퉁불퉁한 엄마에게서 모과 향기가 난다는 인정을 받은 것 같은 날이라 꼭 그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퇴근 후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놀이터에서 시간을 좀 보냈더니, 집에 가서 저녁 준비를 하기 바쁠 것 같았어요.


“엄마, 우리 오늘 외식하면 안 돼?”


제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아이들이 먼저 외식을 하자고 했습니다. 남편은 일이 바빠 늦게 퇴근한다고 한 터라, 두 아이와 저 이렇게 셋이서 외식을 하게 됐어요. 집 근처 국숫집에 가서 칼국수와 비빔국수, 만두 하나를 시켰습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가위바위보로 딱밤 맞기 놀이를 했어요. 둘째가 요즘 가위바위보에 재미를 붙여서 어디서든 “가위바위보 딱밤 하자!” 합니다. 말이 딱밤이지, 아이들의 딱밤은 손톱을 이마에 톡 가져다 대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아픈 딱밤을 맞은 것처럼 리액션을 잘해야 해요. 제 딱밤은 언제나 실수로 비켜난 척, 아쉬워하는 게 포인트고요. 그렇게 한참을 가위바위보! 딱밤 놀이를 하다 보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습니다.


음식을 사이좋게 나눠 담았어요. 일곱 살 첫째는 매운 것도 제법 잘 먹어서 제가 시킨 비빔국수까지 호로록 먹었습니다. 마주 앉아 잘 먹는 모습이 하도 예뻐서 ‘아, 이런 걸 보고 부모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나왔구나 ‘ 잠시 생각했어요.


“엄마, 나는 엄마랑 아빠 아들이라서 참 다행이야.”

“응? 갑자기? 아.. 엄마 너무 감동인데..? 눈물 날 것 같아. 봄이도 그렇게 생각해? “

“음…아마 그럴 걸?”(이때 얼마나 새초롬한 표정이었는지..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게 아쉽네요.)

“아.. 엄마 눈물이 핑이다. 아마 집이었으면 엄마 울었을 것 같아.”

“왜 울어?”

“사랑이랑 봄이가 엄마 아빠 아들인 게 다행이라고 말해주니까 너무 고맙고 감동적이라서..”


아이는 씩 웃더니 다른 이야기들을 꺼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와 식사를 하는 시간이 참 행복했어요.


집에 들어와 세탁물을 정리하고 아침 설거지를 하는데 아이가 곁에 쓱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아빠랑 몇 년 같이 살았어?”

“엄마랑 아빠는..8년 정도?”

“그럼 8년 동안 그날 싸운 게 처음이었어?”


아이는 얼마 전 저와 남편이 크게 싸운 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처음으로 아이들 앞에서 큰소리가 오갈 정도로 심각하게 싸웠던 날이었어요. 그때도 감정이 정리된 후 아이가 알아듣도록 상황을 설명하고, 그래도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다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그날 이야기를 다시 꺼냈으니, 담담하게 그날 일을 다시 한번 이야기해야겠구나 마음을 다잡았어요.


“응. 그렇게 크게 싸운 건 처음이었어.”

“그럼 8년 동안 한 번도 안 싸웠어?”

“속상한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싸우지는 않았지. 속상한 마음을 말하지 않고 쌓아뒀던 게 터진 거야.”

“왜 갑자기?”

“풍선에 바람을 계속 불어넣으면 어때?”

“터져.”

“그래. 그거랑 비슷한 거야. 엄마랑 아빠는 속상한 마음이 계속 쌓이는 줄 모르고 계속 쌓아둔 거야. 그러다 그게 팡 터진 거지. 근데 엄마도 이번에 많은 걸 배웠어. ”

“누구한테?”

“엄마 나이쯤 되면 꼭 누구한테 무언가를 배우지 않더라도 어떤 일을 겪으며 배우는 게 생겨.”

“뭘 배웠어?”

“속상한 마음은 그때그때 말을 해서 풀어야 한다는 걸. 참고 넘어가면 화산처럼. 크게 터질 수 있다는 걸.”

“나는 속상한 일을 말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아니다. 유치원에서는 속상해도 말 잘 안 해. ”

“그래도 사랑이는 집에 와서 엄마한테 속상한 마음을 잘 말해주잖아. 그렇게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털어놓으면 괜찮아. 속상한 걸 혼자만 품고 있으면 힘들어.”

“그래. 알았어!”


발걸음도 가볍게 안방으로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왈칵 눈물이 났습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런 대화를 할 만큼 아이가 자랐다는 것이 감격스러웠어요. 참았던 눈물이 뒤늦게 터지니 주체하기 어려웠습니다. 설거지 물소리에 눈물을 훔치며, 지난 육아의 시간을 떠올렸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언제나 내 맘 같지 않아서,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만 있지는 않았어요. 때론 다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기도 했고, 수시로 두려움과 마주해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심 어린 사랑을 주고받은 시간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어요.




앞으로도 울퉁불퉁한 모과가 되기를 꿈꿔봅니다. 먹을 수 없기에 완벽한 과일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다른 과일이 갖지 못한 깊고 진한 향기를 가진 모과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적어도 내 아이에게만은 깊고 진한 향기를 전하는 엄마가 되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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