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 하나 있었으면(도종환)
요즘 사랑이는 반에서 누구랑 제일 친해?
음. 난 ○○이!
그래? 요즘은 이랑○○ 잘 지내는구나. 다른 친구는?
△△이도 있고, □□이도 있고.
그럼 ■■이는? 학기 초에 그 친구랑 친하다고 했잖아.
■■이는 이제 친구 아니야.
응? 왜?
■■이랑은 마음이 안 맞아.
그래? 싸운 건 아니고?
싸우긴 왜 싸워. 안 싸웠어. 그냥 걔랑 같이 있으면 불편해. 화도 너무 많이 내고 자꾸 짜증을 부려. 그냥 우리 반은 맞지만 친구는 아니야.
사랑이와 대화를 하다 보니 제가 학교에 다닐 때 갖고 있던 '친구'의 개념보다 사랑이가 지닌 '친구'의 개념이 훨씬 더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같은 반이면, 같은 학원에 다니면 모두 친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크게 가깝지 않은 아이의 말이나 행동에도 상처받는 일이 잦았던 걸까요.
사랑이는 마음이 맞지 않아서, 그 아이랑 있으면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친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친구냐고 물었더니, 명쾌한 답을 주었어요.
"같이 있으면 재밌어야지! 싸워도 금방 화해할 수 있고!"
와, 정답이구나. 싶었어요. 함께 있는 순간이 기쁜 사람, 행복한 사람. 갈등이 있더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관계, 그만큼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충분한 관계. 그런 게 친구이고 우정이었어요.
벗 하나 있었으면(도종환)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 <너에게 주고픈 아름다운 시>, 북카라반, 2019
요즘 들어 친구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날들이 많습니다. 정말로 나이를 먹어가는 건지, 곁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언젠가부터 나이나 성별, 처한 위치나 상황 같은 것은 우정을 쌓는 데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마음이 울적할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사람이라면, ‘마음이 비어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어리든 많든, 자주 만나든 그렇지 않든 '벗'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그런 '벗‘들의 얼굴을 떠올리다 보면,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나누고 어려움을 함께 할 친구가 아닌가 싶어요.
몇 년 전,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진아야, 네가 죽으면 네 영정 사진 앞에서 진심으로 슬퍼할 친구가 몇이나 되니? 가족들을 제외하고 말이야.”
엄마는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다른 친구에게 받은 질문을 저에게 돌려준 것이었어요. 그때 엄마의 나이가 육십즈음이셨는데, 엄마는 그 질문을 받고 엄마 곁에 있는 친구들을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대단히 사교적이거나 활발한 성격이 아니기에 두루두루 많은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분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준 분과는 아주 오래, 그리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분이세요. 그 덕분에 매년 엄마의 집에는 친구들이 보내주는 고향집의 김장김치가 도착하고, 통이 다른 밑반찬들이 냉장고를 채우곤 합니다. 이십 년을 훌쩍 넘긴 모임도 몇 개나 되고, 엄마의 전화 한 통이면 당장 시간과 마음을 내어줄 친구들도 꽤 많아요.
“내가 그 친구들 이야기를 했더니, 질문한 친구가 믿지를 않더라. 한참 설명을 했더니 나더러 인생을 참 잘 살았다고 그러대.”
엄마의 말을 들으며 친구란 무엇일까, 나에게는 정말 그런 친구가 몇이나 될까, 그런 생각을 잠시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매년 새로운 동료를 만나 함께 일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의도와 무관하게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얻어요.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진짜 친구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몸소 느껴요. 사는 게 바쁘고 신경 쓸 일도 많아지다 보니,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것 자체가 힘듭니다. 더불어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가 있어서인지, 한 해를 잘 보냈더라도 이듬해까지, 그 이후로 오랫동안 우정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엄마의 질문을 받은 지 벌써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요즘, 부쩍 엄마가 던진 질문을 자주 떠올립니다. ‘정말 내게 그런 친구가 몇이나 될까.’ 하고요.
서른다섯 명의 대학 동기들 중, 여전히 안부를 주고받으며 좋은 소식에 함께 기뻐하고 슬픈 소식에 함께 아파하는 둘. G, P.
임용에 함께 합격한 동기로, 내 모든 교직 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본 친구 셋. H, N, G.
임용 4년 차에 1급 정교사 연수에서 만나 십 년째 함께 취하고 함께 신나는 넷. G, L, P, K.
첫 학교에서 만나 이제는 동료가 아닌 동반자가 된 넷. L, G, J, K.
두 번째 학교에서 만나 수업 이야기와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며 진짜 교사로서 살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준 세 분. K, K, S.
오랜 휴직 끝에 복직한 나의 자존감을 한껏 높여주고, 내가 모임의 구심점이라 치켜세워주면서 나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넷. K, K, R, O.
제자에서 딸이 된 L.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나 이제는 진짜 친구가 된 셋. J, N, H.
동네에서 만났지만, 서로의 깊은 속내를 모두 드러내 친구가 된 L.
가장 오랜 글친구인 작가님. C.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 표정을 골고루 떠올리며, 그들의 이니셜을 쓰다 보니 행복감이 차오릅니다. 제가 별다르게 한 것도 없는데, 저를 좋아하고 믿어주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떠올리니, 남은 생에 더 이상 새로운 인연은 필요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내 곁을 지키고, 내가 머물고 싶은 곁을 내어주는 이 사람들만 잘 지키고 살아도 충분하겠다 싶습니다.
물론 살다 보면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또 다른 인연도 생기겠지요. 그러나 새로운 인연이 내 마음과 같지 않다고 해서, 내 뜻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상처받거나 좌절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히 대하고, 이들을 잘 챙기며 사는 것만으로도 후회 없는 삶일 거란 확신이 생겨요.
이 글을 당신들을 향한 러브레터입니다.
당신들이 있어서 수많은 생의 고비를 무사히 넘어올 수 있었어요.
당신들이 보내준 마음, 당신들이 보여준 사랑으로 무너지는 순간에도 추락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우리에게 남은 삶이, 시간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함께인 시간 동안 후회 없이 마음을 나누고, 아쉬움 없이 사랑하며 서로를 지켜요.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