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맞는 첫 주말이다. 육지에서 남편이 왔고 아이들은 며칠 만에 보는 아빠를 격하게 반겼다. (육지에서라고 쓰고 보니 진짜 섬에 와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겨우 며칠 떨어져 있었다 만나면서 세 사람은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듯했다. 아빠가 없던 나에게는 참으로 생경한 광경이었다. 내 아이들이 남편을 ’ 아빠‘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때가 되어서야, ’아, 나는 아빠라는 단어를 불러본 적이 없구나‘ 처음으로 깨달았다. 끌어 안고 좋아하는 셋을 보며 ‘아빠와 자식의 관계는 저렇게 애틋한 거구나‘ 생각했다. 한편으로 ‘남편 덕에 이번 주말은 좀 쉬어가겠구나’ 기대도 했다.
오랜만에 독박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났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무척 큰 사람이다. 세 사람은 함께 하지 못한 며칠의 한을 풀듯 딱풀처럼 붙어 시간을 보냈다. 제주에서 몇 년치 물놀이를 다 할 기세인 우리는, 해수욕장과 수영장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바닷가로 가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신나게 놀았다.
왕복 세 시간의 운전과 물놀이 준비, 뒤처리까지 모두 내 몫이었지만,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니 그저 흐뭇했다. ‘이렇게 잘 놀아보려고 제주까지 왔지. 긴 여행을 떠나왔지.’ 생각했다. 심지어 숙소 근처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후에 또 근처 바다에 뛰어들어 2차 물놀이까지 했다.
노을이 지는 바다 위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아이들이 마냥 부러웠다. 재고 따질 것 하나 없이, 그저 신나 보이는 일이면 주저 없이 하고 보는 아이들. 나도 한 때는 저런 어린이였겠지. 하루 종일 놀아도 더 놀고 싶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일단 하고 보는 멋진 어린이.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 오늘의 문장을 쓴다. <어린 왕자>(생떽쥐베리)에 나오는 문장,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이토록 낯설게 느껴지다니. 나도 분명 아기였던 때를 거쳐 어린이였다가 청소년이었다가 청년이었다가 지금의 나이가 되었을 텐데. 어쩜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까마득한지.
옷이 젖는 것 따위, 오늘 미처 다 하지 못한 과제 따위, 내일 해야 할 일 따위, 이후 뒤처리 따위, 주변의 시선 따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 마음. 오직 지금의 즐거움, 지금 내 마음, 지금 하고 싶은 일, 지금 좋은 것에 집중하는 마음. 재지 않고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그저 순간을 누리는 마음. 어린이의 마음. 내게도 있었을 텐데 어쩌다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는지.
지금 물놀이를 하면 추울 텐데, 그럼 감기에 걸릴 텐데, 젖은 옷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숙소까지 가는 동안 차에는 어떻게 앉혀야 하지, 수영복도 아니고 외출복인데 괜찮을까. 걱정과 염려가 줄줄이 늘어질 때마다 휴대전화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너무 행복하고 너무 충만했다. 걱정과 염려가 무색할 만큼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아무리 애써도 온전한 아이의 마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의 문장을 쓰면서 문득 생각했다. 부모가 되는 일은 어쩌면 신이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 잊어버린 어린이의 마음을, 나를 닮은 어린이를 통해 되찾아보라고. 마지막으로 딱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신이 준 기회를 잡아야 할 것 같다. 적어도 나는 지금 여행지에 있으니까. 어른의 고민보다는 어린이의 마음이 이 여행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을 아니까.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일어나지 않을 일을 염려하지 않기로 한다. 오늘 즐거운 일을 하고 이미 일어난 일을 만끽하기로 한다. 이곳에 머무를 이십여 일 동안은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보기로 한다. 용기가 필요하다면, 그것까지 내어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