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천둥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다. 그 소리에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격한 날씨였다. 내일도 이렇게 비가 쏟아지면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역시나 비가 계속되고 있었다. 오늘은 그냥 숙소에서 하루 쉬거나 근처 도서관이나 가볼까 생각하며 아침 준비를 했다.
아침을 먹고 있는데 등 뒤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커튼을 열어보니 비 그친 하늘에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밤새 내린 비가 곳곳에 만든 작은 웅덩이는 아침 햇볕에 빛났다. ‘와! 오늘은 뭘 해도 신나겠다! 역시 여행은 날씨가 다지!‘
아이들과 신나게 나갈 채비를 하면서 “오늘은 뭐 할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틀 연속 바다 물놀이를 했으니 오늘은 좀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제주에 오면 꼭 들르고 싶던 종달리의 작은 책방에 함께 가자고 했더니 아이들도 좋아했다. 엄마의 로망에 함께 해주는 아이들이라니!
엄마의 로망만 채울 수는 없으니, 용눈이 오름 근처에 있다는 레일바이크도 예매했다. 마침 숙소에서 서점으로 가는 길에 레일바이크가 있었다. 먼저 레일바이크를 타고 서점에 갔다가 숙소로 돌아오면 하루가 알찰 것 같았다. 오랜만에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차에 시동을 거는데 출발 전부터 신이 났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일정은 성공적이었다. 내가 가보고 싶었던 서점에도 들렀고, 서점 사장님이 선물해 주신 쿠폰으로 근처 가게에서 당근 빙수도 먹었다. 종달리에 사는 지인의 추천으로 깔끔한 찬이 한가득 나오는 식당에서 점심도 먹었고 레일바이크도 신나게 탔다. 돌아오는 길에 송당에 있는 카페에 들러 아이스크림과 라테도 먹었다. 날씨는 내내 맑았고 하늘은 내내 푸르렀다.
그 모든 순간이 사진에 고스란히 남았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행복한지.
이렇게만 쓰고 보니,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이나 오늘 찍은 사진만 본 분이라면 ‘부럽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반드시 해내야 할 일도 없으며 그저 아이들과 매일 제주를 여행하는 삶이라니!
오늘 발견한 문장은 찰리 채플린이 남겼다는 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오늘 하루치의 일정과 우리가 남긴 사진은 분명 희극이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날씨와 장소, 함께 한 이들과 나눈 음식들까지. 무엇하나 희극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미처 쓰지 못한, 어쩌면 애써 쓰지 않은 하루에는 슬픔도 있고 화도 있고 짜증도 있고 피로도 있다. 어린 두 아이와 함께 하는 한여름의 여행이 마냥 즐거울 리 없다. 기호도 취향도 너무 다른 두 아이의 욕구를 적절히 조율하는 일도 쉽지 않다. 여행이긴 하지만 긴 기간을 두고 살러 왔다 보니, 이곳에서도 하루 두 끼는 집밥을 해 먹어야 하고 빨래나 설거지 등의 집안일도 여전히 내 몫이다. (일상에 여행이라는 과제가 더해진 셈이랄까.) 희극으로 가득한 문장의 마침표와 마침표 사이에 다 쓰지 못한 비극이 얼마나 많은지는 오직 나와 아이들만 안다.
이곳으로 떠나온 후 가장 많이 받은 메시지는 ‘부럽다’, ‘좋겠다’이다. 일상을 살던 나도 여행을 떠난 친구들에게 가장 자주 했던 말이었으니. 나와 조금만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만나면 입이 닳도록 ‘부럽다, 좋겠다’를 연발했다. 멀리서 보는 지금의 내 하루도 분명히 그럴 것이다. 온전한 희극.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 않은 순간이 정말 많다. 울고 싶을 만큼 비극적인 순간이.
나는 인스타그램도, 브런치도 꽤 활발히 하는 편이다. 그렇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삶을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 내가 보여주는 삶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기에. 부러운 삶도 있고, 마냥 좋아 보이는 삶도 있지만 그들이 드러내는 삶 뒤편에는 슬픔과 아픔이 있음을 안다.
모든 삶에는 슬픔과 기쁨이 공존한다. 우리는 대체로 기쁨을 전시하고 슬픔을 감추고 싶어 한다. 가끔 그 사실을 잊고 타인의 기쁨에 한없이 슬퍼지고 작아지기도 하지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이 문장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며 스스로의 삶을 누추하게 만드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희극과 비극을 오가며 이 생을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