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이 깊어지고 있다. 어쩐지 ‘깊어지다’는 동사는 가을에 어울리는 것 같지만, 제주에서 보내는 올해 8월은 ‘깊어지다’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여름을 이렇게 온전히 누려본 게 얼마만인지. 특히나 더위에 취약한 나는 이제껏 여름을 피하기 바빴다. 바다를 보는 건 좋아해도 바다에 뛰어드는 건 별로라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여름 바다에도 가본 기억이 별로 없다. 물놀이 자체를 즐기지도 않아서 계곡도, 수영장도, 워터파크도 애써 찾지 않으니 여름이 반가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나마 아이를 낳은 후로 더위를 조금 덜 타는 체질로 바뀌어 여름이 두렵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좋아질 이유는 없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물놀이터에 쫓아다니기도 하고 휴가철이면 바다든 계곡이든 워터파크든 물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여름은 나에게 견디는 계절, 버티는 계절에 가까웠다. 여름이 시작되는 5월 말이 되면 별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해서 여름이 끝을 보이는 9월이 되어서야 다시 기운을 차리는 식이었다.
2024년 8월. 내 생에 이토록 강렬한 8월이 또 있었을까. 지금 나는 여름 태양을 온전히 받고, 살갗이 붉고 검게 익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매일 물놀이를 하고, 쏟아지는 여름비를 그대로 맞으며 8월을 살아내고 있다. 제주라는 장소가 주는 관대함인지, 한 달 살이라는 여행이 주는 용기인지, 엄마라는 역할이 주는 변화인지.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 이 더위를 만끽하며 깊어가는 8월을 즐기고 있다.
오늘도 종일 함덕 해수욕장에 머무르며 물놀이를 하다가 평상에서 낮잠도 자고 아이들과 물고기도 잡았다.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도 실컷 듣고 커피도 마시고 물놀이하다 쉬러 온 아이들과 뽀뽀도 마음껏 했다. 하늘은 더없이 높푸르고 물빛은 티 없이 맑고 모래는 곱고 바람은 선선했던, 기적 같은 여름날이었다. 여름이 이렇게 매력적인 계절이었나, 이제껏 왜 그렇게 무작정 여름을 미워했던가 싶었다.
아름다운 제주에서 깊어가는 8월의 하루를 떠올리며 오늘의 문장을 쓴다. ‘영원히 좋은 것도 영원히 싫은 것도 없다.‘ 셰익스피어가 ‘좋고 나쁜 건 없다. 다만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라는 명언을 남겼다는데, 정말 그런가 싶다. 수십 년을 견디고 버티던 여름을 이제 와 새삼 만끽하고 즐기게 되다니.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정말 상황에 따라,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건가.
영원이라는 단어는 너무 아득해서 잘 쓰지 않지만,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들 때면 그 마음이 영원할 것 같아 괴로울 때가 있다. 특히 영원히 좋을 것 같은 마음을 외면해야 할 때나 영원히 싫을 것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할 때면 괴로움이 배가 된다. 나이를 먹어가도 이 ‘영원할 것 같은 마음’ 앞에서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영원히 좋은 것도, 영원히 싫은 것도 없다’라는 문장에서 위안을 받는다. 열렬하고 맹렬한 마음도 언제 어떤 순간에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 상황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지고 마음도 달라질 수 있다. 그토록 피하고 싶던 여름을, 시름시름 앓으며 겨우 넘어가던 여름을, 이토록 풍요롭게 누리고 있는 걸 보면, 지나가는 날들이 아쉬울 정도로 애틋하게 보내고 있는 걸 보면.
그러니 너무 애태우지 말자. 아무리 미워해도 날을 채워야 지나갔던 과거의 여름처럼, 아무리 애틋해도 날을 채우면 지나가버릴 현재의 여름처럼.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금의 마음도 날을 채우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달라질 거다. 지금 좋은 일이 싫어질 수도 있고, 지금 싫은 일이 좋아질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니까.
문득, 이렇게 좋아진 여름이 내년에도 변함없이 좋을까 싶다. 학교로 돌아가 짧은 여름 방학 내내 더위와 씨름하며 생활기록부를 쓰고 보충수업을 하다 보면, 다시 ‘와, 이 여름! 이 더위! 지긋지긋하다. 정말!!!!’ 소리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영원히 좋은 것도, 영원히 싫은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