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물놀이를 이어했던 아이들도 피곤했을 것이다. 푹 늦잠이라도 자면 좋을 것을, 8시 전에 모두 일어났으니 내내 하품을 연발할 수밖에. 아침을 해 먹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둘이 놀이를 시작하길래 나도 커피 한 잔을 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여행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아침 풍경이지만, 한 달 살기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풍경이다. 우리의 여행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므로 페이스 조절이 필수다. 아이들에게 쉼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나에게도 쉼이 필요했다. 즐거운 것과 피곤하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으니까. 지난 5일을 치열하게 논만큼 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축축 늘어지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두 아이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게 다투지도 않고 정말 잘 놀았다. 덕분에 나는 아침 설거지를 하고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심지어 점심에 먹을 짜장까지 만들어두었다. 오늘은 이대로 고요하게 하루를 푹 쉬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아이들의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안 싸우고 잘 노나 했다…..‘
“점심 먹고 어디 나갈까? 가고 싶은 데 있어?”
“나는 바닷가!”
“나는 오늘 피곤해서 바다 가기 싫은데… 바다 말고 다른 데 찾아보면 안 돼?“
둘째는 바다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첫째는 바다만 아니면 된다고 노래를 부르는 상황에서 결정의 공은 나에게 넘어왔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려워서 내가 원하는 것은 선택지에 없었고(나는 어디 조용한 카페에 가서 아이스라테나 마시면 좋겠는데…), 둘 중 하나를 고르자니 꼭 내가 두 아이 중 한 명의 편을 드는 것 같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결정을 재촉하는 아이들과 결정을 유보하는 나 사이에 묘한 신경전이 있던 때에 날씨를 확인했다. 오늘 하루만 맑음이고, 이어질 3일이 내내 비소식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 태풍 소식이 있었다. ‘태풍이 오면 절대 할 수 없는 게 뭐지? 물놀이네!’ 생각이 미치자 더 고민할 게 없었다.
“얘들아, 내일부터 제주도에 태풍이 온대. 그럼 비바람도 불고 천둥 번개도 치기 때문에 물놀이는 절대 못해. 그러니까 오늘은 물놀이를 가는 게 어때?”
앞으로 3일 동안 물놀이를 못 한다니 첫째도 멈칫하더니 이내 그러자고 했다. 점심까지 든든하게 챙겨 먹고 오늘도 래시가드를 입었다. 물놀이 용품을 잔뜩 실은 카트를 끙끙거리며 싣고 바다로 달렸다. (쓰다 보니, 매일이 데자뷔 같다. 이거 어제도 쓴 것 같은데, 어제도 물놀이했는데, 그제도 한 것 같은데…..)
이틀 동안 남편 덕분에 물놀이에서 열외 되는 시간이 좀 있었는데, 이번에는 두 아이를 혼자 데리고 갔다 보니 열외는커녕 잠시 혼자 화장실 갈 틈도 없었다. 두 아이와 한 몸이 되어 파도를 타고 파도를 넘고 수영 대결을 하고 모래공을 던지고 조개껍데기를 주웠다. 두 아이가 잠시라도 티격거릴라 치면, “얘들아, 우리는 지금 한 팀이야! 엄마 혼자 너희 둘을 안전하게 잘 보려면 우리가 팀이 되어야 해!”라는 말을 연발했다. 눈치 빠른 아이들은 주말과 상황이 달아졌다는 것을 받아들였고, 나와 셋이 노는 게 어쩐지 좀 부족하긴 해도 잘 따라주었다. 그러면 되었지. 한 팀으로 재밌게 놀면 된 거지! 피곤했던 게 무색하게 우리는 오늘도 참 잘 놀았다.
새근거리는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오늘의 문장을 쓴다. 오늘의 문장은 <헤르만헤세의 나무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장이다. ‘우리 기억은 간직할 가치가 있는 것만 간직한다.‘ 떠올려보면 나는 지금 내 아이들 나이대(8세, 6세)의 기억이 거의 없다. 정말 어렴풋한 한두 장면이 떠오를까 말까인데, 그것도 기억으로 남은 것인지 엄마를 통해 들은 것을 내 기억인양 착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 나이대는 고사하고 학창 시절 기억 전체가 아주 파편적으로만 남아 있다. 그런데도 아주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 몇 가지 있는데, 대체로 엄마와 동생과 함께 갔던 가족여행에 관한 기억이다.
잠시였지만 직장 생활을 제주도에서 하셨던 삼촌 덕에 가보았던 곽지해수욕장의 물빛을 잊을 수 없다. (아마도 초등 저학년이었던 것 같다.) 여름 방학 숙제였던 ‘탐구생활’(그 시절엔 그런 게 있었지.)에 독립기념관과 광릉수목원이 나왔는데, 당시 경기도에 사셨던 이모와 이모부가 조카의 방학 숙제라는 말에 시간을 내어 데리고 가주셨던 기억도 선명하다. (이건 고학년이었던 것 같다.), 매년 휴가철이면 엄마와 동생과 함께 고생을 무릅쓰고 다녔던 뚜벅이 배낭여행들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 시기에 우리가 다닌 여행지는 대부분 전라도였는데, 차가 없던 우리는 생고생을 했지만 덕분에 정말 잊지 못할 장면들이 숱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어떤 일은 기억에 각인되고 어떤 일은 기억에서 삭제되었는데, 각인된 기억 중 상당수가 여행과 관련된 것들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 닿았던 기억은 애써 기억하려 마음먹지 않아도 깊은 곳에 간직되었다. 그런 일들은 뇌에서 이미 ’ 간직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은 이후 삶이 팍팍한 순간마다 꺼내어 바르는 효과 좋은 연고가 되었다. (심지어 닳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연고다!)
겨우 여섯 살, 여덟 살인 두 아이에게 이 여행이 어떻게 남을지 알 수 없다. 내 경우에 빗대어보니 결코 기억하지 못할 시간일 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그 시절과 달리 사진도, 동영상도 풍부하니까 좀 더 오래 기억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매일 저녁 그림일기까지 쓰게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끝내 도착한 곳이 헤르만헤세의 문장이다. ‘우리 기억은 간직할 가치가 있는 것만 기억한다.‘ 아이들에게 지금 이 시간이 충분히 가치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의 기억에 남겠지. 8월 제주의 물빛이든, 우리가 함께 뛰어든 파도든, 내리쬐는 볕을 맞으며 걷던 모래사장이든, 킥보드를 타던 숙소 마당이든, 남매끼리 윗옷을 벗고 나란히 춤을 추던 숙소 거실이든. 그게 간직할 가치가 충분하다면.
나에게 이 여행은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싫어하던 여름을 좋아하게 된 여행, 제주의 동쪽 바다를 도장 깨기 하듯 돌아본 여행, 두 아이와 24시간을 살 부대끼며 울고 웃은 여행, 평생 해본 그리고 해볼 물놀이를 다한 여행,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상을 누려본 여행. 비울 것을 비우고 채울 것을 채우려 애쓴 여행, 매일 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누려본 여행. 어떤 장면을 떠올리더라도 간직한 기억의 조각들이 줄줄이 딸려 나올 것이다.
우리의 이 여름은 간직할 가치가 충분하다. 이 모든 순간을 오래 기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