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아침부터 지인들에게 메시지가 왔다. 하나같이 오늘 제주에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담고 있었다. 이제 나의 지인들은 일기예보를 보다 제주 소식이 나오면 나를 떠올리는구나. 생각해 주는 마음이 좋았고 염려해 주는 마음이 기꺼웠다.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만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게 이곳에서의 나를 외롭지 않게 한다는 걸 그들은 알까. (몰랐다면 알아주세요. 진심입니다.)
태풍이 오기는 오려는 지 아침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하늘은 푸르고 해는 쨍한데 확실히 바람이 달랐다. 고향인 부산의 태풍도 꼭 이런 모습이었다. ‘그래, 맞아. 바다의 태풍은 이런 모습이었지.’ 바람이 세질수록 비 냄새가 진하게 묻어나기 시작했다. 곧 비가 쏟아지겠다고 생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세찬 비가 쏟아졌다.
오전은 집(이제는 숙소라는 말보다 집이라는 말이 더 편해진 공간이 되었다)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하며 보냈다. 다행히 비는 계속 내리지 않았고 오다 말다 반복했다. 잠깐 나가서 쌓인 쓰레기를 버리고 점심도 먹고 오려고 외출 준비를 했다. (제주에는 공용 쓰레기 처리장이 곳곳에 있다. 쓰레기를 모아서 공용처리장에 가서 직접 버려야 한다고 한다. 아마 공동주거공간에는 쓰레기 처리장이 따로 있겠지만, 단독주택이나 숙박 시설 등은 모두 공용처리장을 이용하는 듯하다.)
함덕 해수욕장 근처의 쓰레기 처리장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직 8월 성수기이긴 하지만 태풍 소식에 평일이기까지 해서인지 식당이 조용했다. 맛집으로 알려진 곳이라 평소에는 꽤 기다려야 하는 곳인데, 너무 수월하게 들어가서 따뜻한 밥을 먹으니 괜히 횡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근처에 있는 작은 책방 한 군데에 들러 아이들의 그림책을 샀다. 언제쯤 아이들과 함께 책방에 가서 각자의 책을 보고 각자의 책을 고를 수 있을까. 아직 몇 년은 더 있어야겠지. 아쉬운 마음도 깔끔하게 포기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나마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책방에 가자는 말을 반가워해 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책방에서 나오며, 제주에 처음 온 날 집을 찾아가는 길에 보았던 도서관에 들르기로 했다. 여행이 아닌 일상을 사는 경험이 주는 특별함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제주에 와서 관광지를 둘러보지 않고도, 물놀이를 하지 않고도, 분위기 좋고 사진이 잘 나오는 감성적인 카페에 가지 않고도,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다는 것.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첫날, 제주에서의 한 달이 몹시 안정적으로 잘 흘러가리라 직감했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여름 햇살이 내리쬐든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생긴 셈이니까.
제주도민이 아니어도 책 대출이 가능하다는 말에 바로 회원가입을 했다. 아이들에게 다섯 권씩 책을 빌릴 수 있다고 했더니, 저희들이 두 권씩 빌리고 엄마는 한 권만 빌리라고 했다. 서점에서도 저희들 책만 샀는데, 아이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책에 있어서만큼은 완벽한 패자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에 아이들 말대로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골라온 그림책을 열다섯 권쯤 읽어주었더니 각자가 그중에서 두 권씩을 빌리겠다고 했다. 나도 시집을 한 권 빌려 나오려던 찰나, <시의 언어로 지은 집>이 눈에 보였다. 역시 자식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더니. 아이들은 엄마 책이라며 반가워했고 그런 아이들을 보니 책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해 먹고 각자 일기를 썼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가 오늘 사온 책 <긴긴밤>을 잠자리 책으로 읽어주었다. 매일 한 챕터씩 읽어주기로 했는데, 오늘 이야기는 코뿔소 노든이 어린 시절에 코끼리 고아원에서 살다가 코뿔소 무리를 찾아 고아원을 나오는 것이었다.
“엄마, 노든은 코뿔소 무리를 만났을까?”
“그러게. 내일 뒷이야기를 읽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궁금한데…”
“자, 그러니 얼른 자고 내일을 맞이하자!”
아이들이 자는 방에 불을 꺼주고 진한 뽀뽀를 스무 번쯤 한 후 식탁에 앉아 글을 쓴다. 오늘의 문장은 <월든>(데이비드 소로우)에 나오는 문장,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이다. 월든을 처음 읽었을 때가 벌써 몇 년 전이다. 그때 내 삶은 여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두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여백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심지어 코로나까지 심각할 때라 거의 가정보육을 도맡아 하고 있었으니. 쉴 새 없이 먹이고 입히고 치우고 씻기고 재우고…그러다 보면 하루가 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소진되는 느낌이 힘들어 미친 듯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운명처럼 <월든>을 만났다.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라는 문장은 <월든>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들까지 써야 완벽할 듯하여 독서노트를 꺼내 인용해 본다.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여름날 아침에는 간혹, 이제는 습관이 된 멱을 감은 다음 해가 잘 드는 문지방에 앉아서 해 뜰 녘부터 한낮까지 한없이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런 나의 주위에는 소나무, 호두나무와 옻나무가 자라고 있었으며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정적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중략)
이런 계절에는 나는 밤사이의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정말이지 이런 시간들은 손으로 하는 그 어떤 일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공제되는 시간들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을 초과해서 주어진 특별수당과도 같은 것이었다.
-<월든> 중
그 당시 정말 간절하게 여백을 원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정적’이 필요했다.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때때로 무력해졌던 것은 더는 내가 ’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라‘지 않는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나의 에너지와 시간으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으나, 그만큼 ’나‘의 자아는 쪼그라들고 작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매일 밤 책을 읽고 글을 썼던 것은, 내 삶의 ‘월든’을 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고독과 정적’의 시간을 찾아 잠을 줄였고, ‘해가 잘 드는 문지방’같은 공간을 찾아 가족 모두가 잠든 밤이면 식탁에 자리를 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나아졌다.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라지는 못했으나, 느티나무처럼 아주 서서히 자라났다.
제주살이 7일 차, 태풍을 핑계로 고요한 하루를 보냈다. 파도를 타고 물보라를 가르던 어제까지와 달리, 가까운 서점을 돌아보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긴 시간 책을 읽어주었다. 긴 여행일수록 여백이 필요하니까. 이 여백이 그저 ‘공제되는 시간’이 아니라 ‘특별수당’ 같은 시간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남은 생에서는 이 제주 여행 자체가 ‘여백‘의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과거의 내가 여백을 찾아 책과 글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그리하여 서서히 자라났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여백을 누리며 또 한 번 서서히 자라나는 중이다.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라는 두 아이와 함께.
지금 받고 있는 두둑한 특별수당을 잘 간직하고 싶다. 그래서 매일밤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은 금새 잊힐 테니까. 사는 게 팍팍하다 못해 퍽퍽한 순간이 오면, 차곡차곡 쌓아둔 특별수당을 꺼내어 나에게 이토록 아름다운 여백의 순간이 있었음을 떠올려야지. 그리하여 또 한 번 새로운 여백을 찾아내보자고 스스로를 보듬고 응원해 주어야지.
이제야 제주에 비가 쏟아진다. 내일도 여행에 여백을 두어야 할 것 같다. 전혀 아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