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Aug 26. 2024

[12일 차]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이른 아침, 남편이 육지로 돌아가고 동생과 조카가 제주로 왔다. 한 달 살이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지인들이 우리가 제주에 있는 동안 와보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진짜 제주에 방문한 사람은 동생네가 유일하다. 역시 이곳은 일상과는 꽤 거리가 있는 곳이라는 게 실감 난다. 제주는 마음만으로 선뜻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바다에서 놀아본 경험이 별로 없는 조카를 위해 오늘도 우리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어제도 종일 바다에서 놀았으면서 꼭 처음 노는 아이들처럼 신이 났다. 둘이서도 신나는데 셋은 말해 뭐 해! 네 시간 동안 겨우 우유 하나씩을 마시고는 물에서 나올 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며, 저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잠시 생각했다. 아무런 스트레스가 없으니 체력도 좋은 걸까. (역시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군.)


동생과 조카, 두 사람이 왔을 뿐인데 작은 집의 온도가 훌쩍 높아졌다. 아이들의 시끌벅쩍한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저녁 내내 작은 집을 울렸다. 아이들은 흑돼지 삼겹살을 구워 밥을 해먹이고, 나와 동생은 회를 사 와 술을 한 잔 마셨다. 이토록 소란스럽고 충만한 저녁이라니.




세 살 차이인 동생과 나는 어렸을 때 참 많이 싸웠다. 오죽했으면 엄마가 “전생에 원수가 만났니? 도대체 왜 이렇게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라는 말을 수시로 했다. “엄마가 죽고 나면 세상에 너희 둘뿐인데 제발 좀 사이좋게 지내라!“라는 말도. (이제 이 말을 내가 우리 집 두 아이에게 한다. 세상 모든 형제, 자매, 남매는 원래 그런 것인가.)


동생과 나는 외모가 닮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는데, 우리는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웬수(?)끼리 닮다니?! 외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성격은 정반대였다. 나는 외향적이고 활발했고 동생은 내향적이고 조용했다. 그러니 서로를 이해할 폭은 좁고 미워할 거리는 차고 넘쳤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거와 달리 외모보다 성격이 더 닮았다. 좋아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위로받는 일도 비슷하다. 동생과 있으면 하루가 너무 짧게 느껴진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된다. 동생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엄마에게 고마운 일은 차고 넘치지만 평생 함께 할 동생을 낳아주신 것, 그게 가장 고맙다.


오늘의 문장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이다. 동생을 만날 때마다 내 생은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단 한 사람. 내가 무슨 일을 해도 응원해 줄 사람, 내가 아플 때 가장 먼저 달려와줄 사람, 내가 기쁠 때 나보다 더 기뻐해줄 사람. 내게는 이미 그 단 한 사람이 있다. 내가 태어나 네 살이 되던 해에 나를 찾아온 내 동생.


그러고 보니 동생의 생에서는 내가 없던 순간이 없구나. 그동안은 좋은 언니였던 적보다 나쁜 언니였던 적이 더 많았던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이다. 살아가는 동안, 동생도 나를 단 한 사람으로 믿고 의지하며 기쁨과 슬픔을 두루 함께 해주면 좋겠다. 남은 생에서는 언제나 좋은 언니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11일 차] 깊이 상상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