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9월 초의 제주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과 쨍한 햇살이 함께인 덕분에 바다에서 놀아도 숲에서 놀아도 다 좋은 날이다. 몇 번의 태풍 소식이 있었지만 무사히 지나가 주어서 맑고 밝은 날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어제 서우봉에서 본 초록 물결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제껏 제주를 몇 번이나 왔어도 이상하게 인연이 닿지 않아 가보지 못했던 비자림에 갔다. 천년 숲이라는 별칭만으로도 뭔가 굉장한 숲일 것 같았다. 한 바퀴를 다 도는데 한 시간 삼십 분 정도는 걸린다는 말에 두 아이가 지치지 않고 걸어줄지 걱정스러웠다. 특히 여섯 살 둘째는 입구에서 이미 조금 떼를 부린 터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가는 데까지라도 가보자는 심정으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호기롭게 출발했다.
숲으로 들어서자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건 크고 굵은 나무들과 초록빛 풀잎들, 들리는 건 낯선 곤충과 새들의 소리뿐이었다. 우리 말고도 걷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초록빛 숲에 압도당한 건지 모두가 조용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도 말소리를 줄이고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에 집중했다. 처음 얼마간은 “엄마, 좀 힘든데?”, “엄마, 아직 더 가야 해?”라며 힘든 티를 내던 아이들도 어느샌가 숲에 동화되어 조용히 걸음을 내디뎠다.
“엄마, 우리도 맨발로 걸어도 돼?”
몇몇 어른들이 맨발 걷기를 하고 있었다. 붉은빛 흙길을 맨발로 걷는 어른들을 보며 아이들도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래도 된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선뜻 신발을 벗어서 손에 들고 걷기 시작했다. 신고 벗기 쉬운 신발을 신은 아이들이 부러웠다. 숲에 온다고 양말에 운동화를 챙겨 신고 온 나의 준비성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양말에 운동화라도 다 벗고 같이 맨발로 걸어볼까 했지만 내 손에는 이미 주렁주렁 짐이 많았다. 자유롭게 맨발 걷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대리만족했다.
비자림 숲은 뭐라고 해야 할까, 내 부족한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온통 초록빛으로 뒤덮인 숲 속에는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천 년을 살았다는 비자나무들이 즐비했다. 크고 굵은 줄기를 오랫동안 지켜온 나무들을 보며 내 삶을 생각했다. 적막하지 않은 고요함이 주는 평화 속에서 이제껏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가만히 짚어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온 이번 제주 여행이 내 삶의 전반과 후반을 가르는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씩씩하게 잘 걸었다. 작은 손에 제 신발 두 짝을 든 채로. 아이들의 걸음 속도에 맞추다 보니 숲의 오솔길까지 다 돌고 나오는데 두 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힘들다고 투정하지도 않고 안아달라, 업어달라 보채지도 않았다. 대견한 마음을 가득 담아 기념품 가게에서 아이들이 사고 싶다는 작은 기념품을 하나씩 사주었다.
많이 걷고 온 터라 금세 잠자리에 들 줄 알았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우리 집과 담을 대고 있는 집에 여행 온 아이 한 명과 공용 마당에서 만나 아홉 시까지 킥보드를 타며 놀다 들어왔다. 일기를 쓰고 잠자리 독서까지 하고 나니 열 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그럼에도 침실에서는 여전히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가 난다. 여행이 아이들의 마음과 몸의 체력을 동시에 키워주는 모양이다.
푸르름 속에서 마음의 눈을 밝힌 하루의 끝, 오늘의 문장을 쓴다. ‘변화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제주에 오기 전 여러 가지로 힘든 일들이 많았다. 관계에서 오는 고민도 있었고, 앞으로 삶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일상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두 아이의 일상을 지켜야 하는 엄마였기에 애쓰고 버티며 지냈다. 제주 한 달 살기가 오랜 꿈이긴 했지만, 지금 이 시기에 한 달 살기를 결정한 것은 다분히 충동적인 일이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긴 여행을 하고 싶다, 지금이 마지막 휴직일 테니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 원하는 숙소에 원하는 날짜가 예약 가능일로 공지되었다, 등등. 그럴듯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사실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한 달간 여행을 가겠다고 했을 때, 지인들이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와, 좋겠다!”였다. 하지만 이내 “근데 혼자서 애 둘을 한 달간 본다고? 괜찮겠어?”라는 두 번째 반응이 돌아왔다. 괜찮지 않을 것 같지만 가보는 거라고 웃으며 답했지만, 당시의 나는 일상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았다. 여행을 준비할 때의 나에게 두 아이 육아 정도는 아무 문제가 아닐 만큼, 여러 고민이 크고 깊었다. 그 고민에서 한 걸음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숨 쉴 구멍이 생길 것 같았다.
제주에서 보낸 열일곱 번째 밤이 깊어간다. 이곳에 와 열일곱 번의 밤을 맞는 동안, 허투루 보낸 날은 하루도 없었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매일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밤이면 그날 발견한 문장을 썼다. 일상에서 도망쳐온 이곳에서, 낮에는 비일상의 삶을 만끽하고 밤이면 일상의 고민을 끄집어 올려 더 깊이 생각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다시 마주해야 하는 문제들을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에서 출발한 생각은 ’나는 이제껏 어떻게 살아왔던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확장되었다.
도피했다고 생각했지만, 여행의 절반을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일상에서 도망치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곳에서 그토록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리 없다. 변화가 필요했고 용기를 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용기가 조금씩 빛을 보는 것 같다.
모든 변화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편안하고 익숙한 일상이든, 힘들고 버거운 일상이든, 일상에 변화를 주는 일은 용기를 내어야 가능하다. 익숙한 일상은 안주하기 쉽고 버거운 일상은 포기하기 쉽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변화를 시도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 스스로가 미운 날들이 오래 이어졌었다. 여전히 내가 마음에 쏙 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변화를 주기 위해 용기를 낸 나는 칭찬해주고 싶다. 도망쳐왔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도망쳐온 곳을 되짚어 생각하고 또 생각한 나를 도닥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