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질(조은)
[2024 시 쓰는 가을] 아홉 번째 시
동질(조은)
이른 아침 문자 메시지가 온다
-나지금입사시험보러가잘보라고해줘너의그말이꼭필요해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봐도 모르는 사람이다
메시지를 삭제하려는 순간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가 보인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신도 사람도 믿지 않아
잡을 검불조차 없었다
그 긴장을 못 이겨
아무 데서나
꾸벅꾸벅 졸았다
답장을 쓴다
-시험꼭잘보세요행운을빕니다!
출처: <생의 빛살>
날씨가 도무지 11월이라 믿기 어려운 날들입니다. 이렇게 따뜻해도 되나 싶어요. 수 년째 사라졌던 가을이 돌아온 것만 같아 기껍다가도 이토록 따뜻한 11월은 아무래도 기이해서 두렵기도 합니다. 정말 지구가 많이 아픈 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도 들고요. 그래도 청명한 하늘과 붉게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는 기쁨은 꽤 크네요.
오늘 드리는 시 ’동질(조은)‘은 이해하기 매우 쉬운 시입니다. 시는 정서를 다루는 ’서정‘의 문학이지만 ’동질‘같은 시에는 서사가 있지요. ‘나’라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상상해 보면, 머릿속에 그 장면이 고스란히 그려집니다.
시 안에는 문자를 잘못 보낸 ‘모르는 사람’, 잘못 보낸 문자를 받은 ‘나’, ’나‘의 시선에 닿은 ’절박한 젊은이‘ 이렇게 세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잘못 도착한 문자 한 통이, 마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절박한 젊은이’가 보낸 것인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입사 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응원이 필요하다는 문자를 보낸 ’모르는 사람‘과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생명처럼 잡고 있는 절박한 젊은이‘는 ’나‘의 과거를 소환합니다. ‘나’ 역시 두 사람처럼 응원이 필요했던, 온몸으로 절박함을 드러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시의 제목처럼, ‘나’는 두 사람과 ‘동질’감을 느끼고 잘못 도착한 문자에 진심 어린 답장을 씁니다. ‘모르는 사람’은 입사 시험에 통과했을까요? 결과까지는 알 수 없지만, 시험장에 들어서기까지 응원의 말이 담긴 휴대전화를 부적처럼 꼭 쥐고 있는 모습은 쉽게 그려집니다. 아마 그 사람, 최선을 다했을 거예요.
얼마 전 이태원 참사의 기록을 다룬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를 읽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어준 분들이 바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라고 합니다. 참사 발생의 이유도, 대상자도, 지역도, 구체적인 사건 경위도,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면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남은 가족들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같은 일이 되고야 만 일이지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누구도 쉽게 건넬 수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누구도 쉽게 내밀 수 없는 연대의 손을 내민 것은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동질감은 결국 깊고 넓은 공감을 가능하게 합니다. 상대와 내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어요. 함부로 대할 수 없고, 모른 척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이든, 절박함을 느껴본 사람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이에게 쉽게 등을 보일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을 알기에, 그 마음에 공감하기에, 끝내는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 순간 과거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지금의 너에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같은 거대한 참사에 더 이상 동질감을 느끼는 이들은 나오지 않아야겠지요. 그런 참사가 다시 발생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정말 너무 괴롭습니다. 다만 일상적이고 흔한 절박함에는 더 많은 이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이를 공감으로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적이고 흔한’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이 결코 가벼운 절박함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몇 번쯤은 겪는 절박함 있잖아요. ‘동질’이라는 시에 나오는 ‘입사 시험’ 같은 절박함이나,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이들의 절박함, 꿈을 찾아 헤매는 절박함, 생활에서 오는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절박함 같은 것들이요. 그런 절박함은 누구나 지나가는 길목이니까, 내가 먼저 지나왔다면 지금 그곳 주변을 헤매는 이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응원을 건넬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어요.
이번 주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시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주입니다. 아마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절박한 집단을 고르라면 수능을 준비 중인 아이들이 아닐까 해요. 이들의 절박함에 이미 그 시험을 치른 자로서 진심 어린 응원의 말을 보내고 싶습니다.
“얘들아, 그동안 정말로 고생했어요. 남은 시간 아프지 말고, 지금껏 준비한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잘 치르기를 기도할게! 시험 꼭 잘 봐. 행운을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