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폴루닌(Sergei Polunin)이라는 발레 댄서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작은 마을 출신으로, 영국의 ‘왕립 발레 역사상 최연소 수석 무용수’가 된 인물이죠. 발레계의 전설인 누례예프의 환생이라 불린 그의 공연은 2년 전에 예매가 되곤 했다 합니다. 그의 유튜브 동영상은 2천3백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이런 세간의 관심에 힘 입어 결국 그의 다큐멘터리까지 나오게 됩니다.
영화 <Dancer>에는 자신의 필모그래피가 부담스러워서, 컨트롤 못하고 일탈하는 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습니다. 더욱 자신에게 엄격해야 할 정상의 자리에 섰을 때, 그는 온몸에 문신을 하고, 리허설에 불참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약물과 파티 등을 즐깁니다. 천재 발레리노를 포기할 수 없었던 발레단은 그를 엄하게 몰아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 세르게이는 왕립발레단을 22살에 탈단합니다. 전 세계 발레 댄서들의 꿈인 그곳을 말입니다.
영화에서 그는 말합니다. 아들의 재능을 직감한 엄마 덕(또는 때문)에 일찍 재능을 펼쳐 성공했지만, 더불어 자신의 행복한 어린 시절 또한 일찍 막을 내렸다고. 발레를 뒷받침해주기 위해 할머니와 아버지가 해외로 돈벌이를 떠나게 됐는데, 바로 그때부터 가족의 비극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힘으로 다시 가족을 불러 모은다는 목표 아래, 발레를 열심히 했다 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헤어져 살던 부모가 이혼을 하자, 결국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노력해야 할 동기부여를 상실, 발레계의 배드 보이가 됐다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입니다. 즉, 엄마는 오늘날의 영광을 있게 한 슈퍼 맘이자 동시에 트라우마를 안겨 준 인물이라는 것이죠.
영화 속에서 세르게이는 엄마의 심장에 비수를 수도 없이 내리꽂습니다. “발레는 엄마의 선택이지 내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춤추기 싫어하지만 잘하기 때문에 한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피로, 분노, 좌절감과 싸운다, 가족의 도움 없이 혼자 성공하고 싶었다, 엄마에 대한 보복으로 공연을 보지 못하게 했다” 등의 싸가쥐로 충만된 내레이션을 날려댑니다. 그렇다면 진정 이 모든 책임이 엄마에게 있는 것일까요? 발레라는 멍에를 지웠다는 이유로?
Over-split(다리가 180도 이상으로 벌어지는 것)으로 태어난 데다가, 영국의 왕립 발레스쿨에서 3년을 스킵할 정도로 발레에 재능이 있는 아들에게 발레 교육을 시킨 건, 분명 엄마의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작은 두상에 조막만 한 얼굴, 긴팔과 다리를 가진 그는 신체적 조건도 타고났습니다. 버스비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그녀가 아이를 데리고 영국행을 감행했다는 것이 무모해 보일 수는 있지만, 천재인 내 아들을 작은 깡촌 마을에서 그냥 키웠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단지 엄마는, 아이가 본인의 천재성을 감당할 깜냥으로 성장할지 알 수 없었던 겁니다. 발레는 규칙과 규범의 댄스이고, 몸을 악기 삼아 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철저한 자기 관리와 희생이 따릅니다. 문제는 발레가 어린 나이에 진로 결정을 해야만 하는 필드라는 것인데..... 내 아이가 발레에 적합한 영혼을 갖고 자라날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사실, 그는 재능에 비해 열정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고향으로 돌아가버린 것이죠. 그는 자기희생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발레를 지속할 수 없었던 겁니다.
세르게이의 몸엔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한 영화배우, 히스 레저의 문신이 두 개나 새겨져 있고, 가슴에는 자해한 상처가 깊게 남아있습니다. 그 상처와 문신을 바라보는 엄마는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상은 생각할 수 조차 없었을 겁니다. 안정을 찾은 아들의 모습에 지나간 세월을 모두 정당화시키고, 정상에서 내려온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야만 했겠지요. 엄마는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자식에 관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니까요. 그러했기에 결국 아들과 아름다운 화해를 합니다. 영화는 가족의 화합을 보여 주며 막을 내리거든요.
현재, 세르게이는 영화와 광고에 출연하면서 춤 또한 포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말을 빌자면, 춤에 최적화된 그의 몸은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어서라 합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그가 잡다한 쇼에 출연하고 있는 걸 보면, 저는 솔직히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만 세르게이 맘은 자신이 늘 있던 자리에서 아들을 응원하고 있을 겁니다. 아들을 위해 살아온 그녀의 영혼과 몸은 아들의 행복에 최적화되어 있을 테니까요.
은퇴를 위해 만든 동영상. 허지만 이 동영상은 전무후무한 조회수를 기록하며, 세르게이는 오히려 더 큰 유명세를 치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