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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킴 Oct 18. 2018

이메일의 시그네이쳐를 지우며

이 메일 꼬랑지에 붙는 시그네이쳐, 사용자의 직업과 직위를 드러내는 그것을 주부인 내가 갖고 있었다. 내 스스로 프로페셔널 홈메이커(professional homemaker)라는 타이틀을 박아버렸던 것이다. 1999년 캐나다로 이민온 이후, 각종 서류에 내 직업을 하우스와이프로 적고 싶지 않아서 홈메이커로 기재해왔는데, 그것도 부족해 이 메일에 프로페셔널 홈메이커라고 나 자신을 지칭해버렸다.



프로페셔널 홈메이커를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살림 전문인’ 내지는 ‘주부 9단’ 정도 되려나? 영어에는 주부를 지칭하는 말이 하우스와이프(housewife)와 홈메이커(homemaker) 두 가지가 있다. 하우스와이프는 좀 오래된 표현으로 다른 직업 없이 집안일만 하는 주부라는 뜻이고, 홈메이커는 살림에 전념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주부를 인정해 주는 용어이다. 즉, 홈메이커라는 표현이 생겨난 것은 현대에 들어와 주부의 위상이 높아지고 가사 노동의 가치가 재조명됨에 따라 주부라는 직업의 전문성이 강조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는 단지 집안일을 단순 노동 이상으로 간주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책임 또한 더 커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든 가치 부여가 되면 부담 또한 동반되는 법 아닌가. 이렇게 살짝 의미심장한 단어인 홈메이커에 나는 프로페셔널이라는 무게까지 얹어버렸다. 이왕 주부로 살기로 한 거, 프로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프로페셔널 홈메이커라는 타이틀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는가? 과거를 돌아보건대,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남편의 수입을 쪼개고 또 쪼개서 살뜰하게 살림했고, 풍성한 식탁이며 집안 인테리어 등의 삶을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부분은 내 노동력으로 충당했었다. 그 결과, 양 손목에 심줄이 늘어나고 오른쪽 등갈비(이렇게 부르니 좀 끔찍하게 들리긴 하나) 두 개가 살짝 어긋나 있는 상태이지만, 이를 산업재해로 쿨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솔까말, 직업병 있는 사람이 한 둘이겠는가. 아무튼 그 결과 두 아이 잘 커서 집을 떠났고, 남편은 내 곁에서 아직도 잘 크고 계시고, 15년째 우리집에 기거하고 계시는 강쥐옹께서도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제 은퇴하기로!


나는 지금 주부로서의 삶을 아예 접겠다는 게 아니라, 프로의 자리에서 내려오겠다는 소심한 선언을 해보려 한다. 매일 아침 도시락을 들고 출근하는 남편이 버젓이 있는데, 벌써 주부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은 직무유기가 될 테니까. 다만, 이제부터는 거창한 타이틀 아래 내몰린 나 자신을 강박으로부터 쉬게 해주려 한다.



사실 예전에 비해 노동의 양이 반의반도 안되는 규모의 살림을 하면서 프로페셔널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보살펴주던 아이들이 성인이 됐으니, 자의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세월에 밀려서도 은퇴할 시기가 됐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무지막지했던 집안일이 차지하던 자리를 내가 좋아하는 문화생활이며 독서로 채워 넣으며 살아보려고 한다. 지난날의 나는 머리에 비해 몸을 너무 많이 쓰고 살아왔고,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해 산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날 위해 해주려 한다. 그래서 나는 북 클럽에 가입했으며, 남편과 영화 <퍼스트 맨>을 관람했고, 크리스마스 때 집에 올 딸과 함께 관람할 발레 티켓을 질렀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하다.


온 집안을 윤이 나게 닦고, 가족의 식탁을 내 정성으로 채우고, 페인트칠까지 직접 해가며 살았던 때도 물론 행복했지만, 이젠 굳이 프로 주부로 살 이유가 없는 데다, 망가진 몸으로 극성떨며 사는 것 또한 무리가 있기에 이제 내게 휴식과 더불어 몸이 아닌 머리를 쓰며 살기를 허한다. 그래서 오늘 나는 이 메일에 있는 나의 시그네이쳐를 지워버렸다.


굳 바이~ 프로페셔널 홈메이커 마마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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