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킴 Nov 06. 2018

철대문 아저씨와 내 마음속의 빙봉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기억의 구슬을 관리하는 방(주인이 오랜 시간 찾지 않으면 구슬을 폐기 처분함)에서 막 구출된 기억입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이미 기억의 쓰레기 처리장에 버려진 것을 다시 주워왔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오래된 추억의 한 조각입니다. 그러나 그냥 묻어버리기엔 안타까운 과거이기에 애써 회상해 봅니다.


<인사이드 아웃>에 나오는 기억을 저장하는 방

국민학교 1학년의 겨울 방학, 저는 ‘국군 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 쓰기’라는 숙제를 혼자 해냈습니다. 정성스레 편지를 쓴 뒤, 받는 사람의 주소는 방학 숙제에 쓰여있는 대로 “국군 장병 아저씨께”라고 적었어요. 그런데 이 수신인이 불확실한 편지는 한 군부대로 배달됐고, 편지에 감명받은(그렇게 추정되는) 한 국군 아저씨가 제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저씨와 저와의 인연이 시작됐는데, 얼마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고, 어떻게 연락이 끊겼는지 도무지 기억나질 않네요.


아저씨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건 두 가지, 이름이 ‘문대철’이었고 경상도 분이었다는 겁니다. 집이 대구라고 편지에서 읽었던 것 같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셨던 기억이 나거든요. 그리고 아저씨의 이름은 재미난 추억이 있어서 문대철이 분명하다고 확신해요. 장난기 많았던 제가 어느 날, 문대철이라는 이름을 거꾸로 하면 철대문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 후 줄곧 아저씨를 놀렸습니다. 심지어 편지 봉투에 이름을 철대문이라고 써서 보낸 적도 있는 데, 그 일로 해서 아저씨는 부대원들한테까지 철대문이라고 놀림을 받게 됐습니다. 지금 추억을 더듬으니, “아무리 튼튼한 철대문이지만 그래도 문 잘 닫고 주무세요~”라고 제가 까불면서 편지를 마무리 짓곤 했던 기억이 나네요.



추측건대, 아저씨는 자상한 성품에 순수한 감성을 가진 분이셨던 같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막 2학년이 된 제가 아저씨의 편지를 재미있게 읽었었거든요. 20대 청년이 2학년짜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편지로 대화를 했다는 것은 분명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다는 방증이겠지요. 게다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까지 가끔 그려 보내주셨던 것도 흐릿하게나마 생각납니다. 그중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시험지에 펜으로 그린 코끼리였는데, 사실 이 코끼리도 제게 까맣게 잊혔다가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코끼리인 빙봉을 봤을 때 소환됐습니다. 어린아이의 환상 속 친구인 빙봉을 스크린에서 본 순간, 아저씨의 코끼리가 생각나 얼마나 마음이 아리고 슬펐던지요! 솜사탕으로 말린 몸을 흐느적대며 춤을 추는 빙봉은 술 취한 듯 휘청대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던 아저씨의 코끼리와 닮았습니다. 그래서 편지의 다른 그림들을 제치고, 코끼리만 제 기억의 수면 위로 올라왔을 겁니다.


이렇게 흐릿한 대부분의 기억들과 달리, 선명하게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휴가를 나가면 저를 찾아오겠다고 하신 아저씨께서 약속을 지키신 그날의 일입니다. 교실 창문 너머로 아저씨의 밤톨 같은 짧은 머리가 보였고, 아저씨는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사진 속 내 모습을 찾느라 두 눈이 분주하셨습니다. 그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저씨를 반갑게 맞이하시며 반 아이들에게 소개까지 해주셨습니다. 아저씨를 ‘북한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고마운 분’으로 소개하고, 고마운 국군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열심히 써서 보낸 저를 칭찬해주셨습니다. 교실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진과 ‘반공 방첩’ 내지는 ‘ 멸공’이라는 글자가 붙어있었던 시대였으니, 저는 본의 아니게 애국하는 어린이가 된 것이었죠.



그날, 담임 선생님께서 아저씨와 저를 학교 앞 찻집으로 데려가 차를 사주셨던 기억도 선명하네요. 큰 문구점 옆에 찻집이 있었다는 사실과 머리 좋아지는 차라며 두향 차(땅콩 차)를 시켜주신 것까지, 지금 다 회상됩니다. 아저씨의 방문은 정말 제게 있어서 획기적 사건(?)이었음이 분명한가 봐요. 이렇게 뇌리에 진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말이죠. 찻집에서 나눈 대화는 생각나지 않지만, 미소 띤 밝은 표정의 선생님과 군복이 아닌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던 아저씨의 모습과 차분한 목소리, 그리고 아저씨의 손에 들려 있었던 제게 줄 선물 상자 등을 기억합니다.


선생님과 헤어진 뒤, 아저씨와 함께 엄마한테 갔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다른 세상이었네요. 혈기 왕성한 청년이 2학년짜리 초딩 여자아이를 데리고 가는 걸 방관한 선생님이 웬 말입니까. 그러나 그때 선생님은 아저씨를 전혀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동화 같은 이야기는 학교며 동네에 죄다 퍼졌는데, 모두 감동을 하고 부러워할 뿐, 편지로만 만난 청년과 어린아이가 손을 잡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한 사실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도저히 이해 안 갈 일이었지만, 그때 어른들이 주목한 것은 저의 안전이 아니라, 아저씨와의 펜팔을 가능케 한 겨우 2학년짜리의 지적 능력(?)과 어린아이와 편지로 우정을 쌓은 젊은이의 순수함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시대를 살아온 제가 정작 내 아이들을 기를 땐, 타인에 대한 신뢰보다 경계를 앞서 가르쳤던 생각을 하니 서글픈 생각이 드네요.



과거를 회상하다 보니, 딸아이가 공룡시대라고 놀리는 그 시절의 순박함이 그립습니다. 물론 그때도 흉악한 범죄가 있긴 했지만, 지금보다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상상치도 못할 일을 제가 추억으로 가진 것이지요. 제 이야기를 현재로 옮겨와 본다면, 아저씨가 나타난 순간 담임 선생님은 당장 엄마한테 카톡을 보낼 것이고, 엄마는 혼비백산해서 학교로 달려오시는 서사가 성립될 것이 분명하겠죠. 그래서 한 청년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던, 그 시절이 더욱 향수를 자극합니다.



이젠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 몇 조각의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철대문 아저씨!


아저씨 덕분에 과거를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수십 년을 잊고 지내다 다시 이렇게 아저씨를 추억하니, 좌절하던 영화 속 빙봉의 모습이 생각나 마음 아픕니다. 얼굴은 잊었지만, 아직 흐릿하나마 떠오르는 편지지 위의 멋진 글씨체와 짧은 머리, 그리고 그려주신 코끼리로 아저씨를 추억하겠습니다. 그러면 제 마음속의 빙봉은 영화에서 처럼 사탕 눈물을 흘리며 사라지지 않아도 되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이메일의 시그네이쳐를 지우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