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극’을 통한 세대 간의 소통과 화합
내가 유홍영이라는 연극인을 처음 주목한 것은 1987년, 한 아동극 무대에서였다. 당시의 아동극은 엉성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오태석 사단 출신의 번듯한 배우가 아동극 무대에 섰다는 사실에 기분 좋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그가 타이틀 롤을 맡았던 <노예와 사자>는 여타 아동극과는 완성도의 차원이 아예 달라서, 나는 거기서 한국 아동극의 희망을 봤었다. 그리고 내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그 무대에 있던 유홍영이 아직도 아동극의 발전과 변화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는 현재 한예종 교수인 최영애와 함께 최초의 교육 극단인 ‘사다리’를 창단한 바 있고, 아동극단으로서는 최초로 전용 극장(사다리 아트 센터)까지 만들었으며, ‘국립극장 어린이 청소년 연구소 소장’도 지낸 바 있다. 그러나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다시 대학로로 돌아갔다. 그 이유는 본인이 활동할 수 있는 그 날까지 모든 능력을 쏟아붓고 싶은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는 이를 가족극의 활성화라고 말한다. 이미 연극에 평생을 바쳐온 그가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니, 그의 열정에 절로 존경심이 인다.
1988년 ‘사다리’를 창립한 이후 유홍영은 줄곧 아동극을 위해 살아왔다. 그는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특히 나는 극단 가제노코와의 협업에 주목한다. 교육극을 표방하는 아동극에서 빠질 수 없는, 놀이적 요소를 창의적으로 극에 접목시켜 명작을 만들어내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유홍영 또한 연극의 놀이성에 주목하는 사람이니, 너무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그 결과 일본의 노장, 켄 나카지마와 공동 연출을 했던 <만남>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호평을 받았고, 5년 동안이나 공연이 이어지게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이 작품을 할 때, 아이들과 배우가 직접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아이들과 노는 척이 아닌 진짜로 같이 노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대학로에서 거리 마임 공연을 하던 때였는데, 제가 풍선을 불어서 한 아이에게 손으로 건네줬습니다. 물론 마임으로 표현한 것이었죠. 그런데 그 아이가 아빠와 손을 잡고 그 장소를 떠나며 풍선 잡은 모양을 한 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있지도 않은 풍선을 잡은 채로 말이죠. 그 순간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의 아동극에 녹아있는 놀이적 요소는 아이들에게 강하게 어필되는데, 이는 마임이스트였던 그의 이력에서 비롯된다. 그가 극단 생활을 하던 시절, 작품이 없을 때 작품을 만들어 길거리에서 마임을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때 유홍영은 아이들과 교감할 기회를 갖게 됐고, 아동극에 관심을 두게 된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아이들의 놀이와 마임이 굳건히 연결돼있으며, 아이들이 얼마나 마임에 빠르고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연을 놀이로 이해하고 즐거워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유홍영에게 깊이 각인됐다고 하는데, 사실 연극만큼 놀이적 요소가 많은 예술이 또 어디 있을까? 연극과 놀이가 영어로 모두 play라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아동극이라 하면 아이들만 극장에 들여보내고 어른들은 밖에서 기다리는 거로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많아요. 즉 우리나라 연극계는 성인극과 아동극으로 나뉘어서 단절되어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아동극은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보고 토론하는 과정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특히 문화생활을 함께 한다는 것은 대화와 관계의 질을 달라지게 하거든요.”
그는 온 가족이 함께 보고 같이 대화할 수 있는 가족극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이중섭 그림 속 이야기>를 발표한다. 이중섭의 그림에 담긴 가족에 대한 사랑과 절실한 그리움을 무대 위에 구현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마임, 인형극 등을 가미해 재미까지 추구한 이 작품은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았고, 이에 힘입어 초등학교 순회공연을 하게 된다. 그때 공연을 본 아이들에게 감상평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했는데, 그는 아이들의 통찰력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사실 모든 아이는 강한 직관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틀에 박힌 학교 교육과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우리의 전래 놀이 속에 숨어있는 씨앗들이 지금 아스팔트에 갇혀 발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와 아빠, 아이들 3대가 어울려 놀이하는 모습을 꿈꾸며 작품을 만듭니다. 수많은 학자가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요. 그러나 놀이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노는 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극을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시도로서, 그는 우리의 전래 놀이와 이야기를 무대로 끌어들인 바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이들 3대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써 선택한 것이라 한다. 음악 놀이극인 <꼬방 꼬방>은 전래 동요와 놀이로 구성했고, <호랑이 이야기>와 같은 구전 동화도 무대에 올렸으며, 솟대 놀이와 실뜨기 같은 사라져 가는 토속 놀이 또한 무대 위에 부활시켰다. “놀이는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할 때 더 신나고, 같이 봐주는 사람이 있을 때 더 발전하는 힘이 있다”라는 유홍영의 말처럼, 그가 무대에 올린 놀이는 모든 세대에게 감동과 웃음을 줬다. 그리고 그에게는 더 신명이 나서 다음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한다.
이런 놀이와 이야기는 조부모 세대에게는 친숙하며, 부모 세대는 접한 바 있고, 그리고 어린이들은 본능적으로 놀이란 것을 좋아하니, 그들이 모두 함께 극을 관람한다면 쉽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세대 간의 벽을 조금이라도 허무는 것이 바로 자신이 바라는 세상이라고 유홍영은 말한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볼 때 대부분 가족은 함께 극장을 찾는다. 그러면 가족 간에는 영화에 관한 공통 화제가 생기고, 이는 자연스럽게 대화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유홍영은 자신이 만드는 ‘가족극’이 바로 이런 대접을 받길 바란다. 그렇지만 그의 말을 빌자면, 한국 아동극의 현실은 그가 아동극에 첫발을 디딘 30년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한다. 아직도 아이들만 극장에 들여보내고 부모들은 극이 끝난 후 아이를 데리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온몸의 맥이 풀렸다. 당시 학생이던 내가 경험했던 수십 년 전의 상황이 현재에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니! 그때, 아이들을 극장에 들여보내고 쇼핑을 하러 가는 엄마들을 보며 내가 한 결심은 ‘내가 엄마가 되면 아이와 함께 극을 관람하겠다’라는 것이었고,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은 아이들이 성인이 된 지금도 공연과 전시를 함께 보고 대화하는 것을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관객들의 자세에 변화가 없다 하니, 마음이 몹시 씁쓸해진다. 유홍영이 자신의 꿈을 '멀고 긴 안목'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40년에 가까운 유홍영의 연극 인생 중 삼십 년을 바쳐온 아동극, 이젠 뚜렷하게 가족극의 활성화라는 목표까지 세운 그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듯하다. 변화 없는 한국 아동극계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의 꿈은 요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가족극’이 행복하게 끝을 맺는 대단원이 되길 바란다. 연극에서의 대단원은 늘 행복한 결말로 귀결되진 않지만, 유홍영의 연극 인생에서만큼은 그가 원하는 세대 간의 소통과 화합이 실현되길 바란다. 그가 말하는 ‘가족이 문화생활을 함께 함으로써 향상되는 관계의 질’을 나는 몸소 체험해봤기에, 더욱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도움 말씀과 사진을 제공해 주신 유홍영 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