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킴 Feb 13. 2019

빅토르 최와 우리의 ‘LETO’

최루탄과 화염병이 전쟁을 치러대던 캠퍼스, 소위 짭새라고 불리던 스파이가 숨어있던 강의실, 시내 곳곳에서 빈번하게 행해지던 검문 등, 영화 <1987>에 묘사된 우리의 과거는 현실 그 자체였다.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지던 구호를 배경음 삼아 수업을 받았고, 그러다 최루가스가 날아들면 앞다투어 학교를 빠져나가곤 했었다. 그때 너무 많은 젊음이 꺾였고, 상처 받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러시아인들의 빅토르 최에 대한 식지 않는 열기와 추종은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단지 그가 자랑스러운 한국계라서가 아니라, 우리도 그처럼 억압의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 <레토>에서 그려낸 구소련과 빅토르 최는 우리의 과거와 닮아있다.



우리가 민주화를 열망하던 1980년 대에, 빅토르 최는 적국의 음악이라 불리던 록 뮤직에 흠뻑 심취해있었다. 서슬 퍼런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감히 사악한 자본주의의 산물인 록 뮤직에 빠져 산 것이다. 그는 비틀스, 도어즈, 롤링스톤즈, 데이비드 보위 등을 롤 모델 삼아 자신의 음악을 완성했는데, 그들의 아류가 아닌 자신의 색을 가진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의 음악은 록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매우 서정적이며 멜랑콜리한 면 또한 있다. 게다가 반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시적 가사는 포크 송에 가까우며, 창법 또한 기존 록커들과 달리 읊조리듯 노래한다. 포크 송 싱어들은 가사를 들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그런 창법을 구사하는데, 그는 록을 그렇게 노래했다. 그래서 노래에 울분을 담았을지라도 절규하지 않고, 한을 담아 천천히 뱉어내듯 불렀다. 게다가 기타 또한 일렉트릭이 아닌 12줄짜리 통기타를 사용했으니, 그의 음악이 독창성을 갖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 차이는 U2의 <Bloody Sunday>와 Free의 <Wishing Well>을 빅토르 최의 <혈액형>과 비교해보면 명백히 드러난다. 백문이 불여일청!



U2와 Free 모두 반전과 평화를 노래했지만, 빅토르 최의 음악에는 그들과 다른 무엇이 있다. 자유가 박탈된 구소련의 음울한 분위기, 백인이지만 지리상 동양권에 있는 러시안들이 가진 묘한 정체성, 소수민족으로 살아야 했던 빅토르 최의 고독감과 이를 주체하지 못했던 젊은 열정 등을 자양분 삼아 완성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들의 정서를 담은 음악에 하고 싶은 말을 실어주니, 구소련의 청춘들은 빅토르 최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금기의 것이라는 점이 더욱 그의 음악을 열망하게 만들었을 테고. 금지곡이 된 들국화의 음악에 심취하며 분노하던, 80년대 우리들의 화난 청춘들처럼 말이다.


과거 우리는 문화 전반에 걸쳐 많은 통제를 받고 살았었다. 정부는 수없이 많은 음악에 금지곡이라는 낙인을 찍어댔고, 공산권의 뮤지션이기 때문에 빅토르 최의 음악은 접할 기회조차 없었다. 같은 예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발레가 빛났던 영화, <백야>에 짧게 삽입된 러시아 곡이 당시 큰 화제를 일으켰는데, 당연히 그 음반은 구할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뭔가를 지나치게 금지하면, 길티 플레져를 누리고 싶은 욕망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결국 그 노래는 어둠의 경로를 타고 카세트테이프를 거치고 거쳐 퍼져나갔었다. 그때 나도 어렵게 구하긴 했는데, 너무나 여러 번 복제된 탓에 잡음과 음악이 반씩 섞여 있었던 기억이 난다. 구소련의 젊은이들이 의료용 엑스레이를 복제 음반으로 만들어 음악을 듣곤 했다는 걸 보면, 빅토르 최와 80년 대의 우리의 청춘은 같은 갈증을 안고 살았던 것이다.



억눌린 젊음을 담은 영화 <레토>의 뜻은 러시아어로 여름이다. 감독은 사계절 중 가장 싱그러운 여름을 영화 제목으로 함과 동시에 흑백으로 색감을 제한했다. 생명이 피어나는 봄이 어린아이 같은 이미지라면, 싱싱한 생명력이 있는 계절인 여름은 젊음을 상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 청춘들을 '여름'으로 지칭한 감독은 이들을 흑백의 스크린에 가두었다. 색감이 거세된  영화 속의 건조한 세상은 자유를 열망하는 젊은 열기와 더욱더 대조되는데, 이는 암울했던 우리의 과거를 소환시킨다.


우리에게도 흑백의 장막에 갇힌 시기가 있었다. 민주주의를 열망했고, 인생의 여름을 내던진 젊음들 덕분에 1987년의 6월 항쟁을 이뤄냈지만, 정권 교체에 실패한 수치스러운 역사를 만들었지 않은가. 그래서 잠시 희망의 색을 띠었던 세상이 다시 흑백으로 변해버린, 그때를 기억한다. 이 시기에 빅토르 최와 그가 이끄는 밴드 ‘키노’는 소련 최초로 해외 공연을 하고, 앨범은 밀리언 셀러가 되는 업적을 이뤄내지만, 그는 곧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다른 공간에서였지만, 그와 우리의 과거는 묘하게 맞물려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빅토르 최와 독재타도를 외치던 우리의 젊음이 어떻게 죽음을 당했는지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다. 그와 우리의 연결고리는 아직도 진행형인가 보다.


사회문제에 전혀 관심 없던 나를, 한심한 청춘으로 바라봤던 친구가 생각난다. 나의 운동화와 청바지가 여공들의 한 달 월급이 넘는다며, 의식을 깨우려던 친구! 그 아이와 나는 이질감에 서로를 멀리했고, 오랜 시간 찾지 않았다. 1987년에 수없이 집회에 참여하고 구호를 외쳐대며 자신의 여름을 바쳤을 그 친구, 어디에선가 잘살고 있길 바란다. 그녀의 인생은 여름을 지나 아름다운 가을날에 머물러 있기를........


                                                          빅토르 최 <뻐꾸기>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아동극을 지켜온 유홍영이 꿈꾸는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