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은 영화관이 아닙니다.

레베카 보다가 분노한 이유

by 마마뮤

2주일 전 금요일 오후 나는 또다시 공연장을 찾았다. 이번엔 충무아트센터에 처음 가본 건데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장소에 덩그러니 서 있는 극장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마도 내가 그쪽 동네가 익숙지 않아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레베카는 그야말로 올해가 시작될 때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작품인데 드디어 그 화려한 막을 열었다. 워낙 댄버스 부인 역으로 옥주현 님의 인기가 대단하여 티켓 예매가 오픈되자마자 실로 자리 쟁탈전은 가히 전쟁 뺨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일찍이 그 전쟁에 뛰어들지 않겠노라며 명불허전 신영숙 배우님 출연 날을 단도직입적으로 찍었건만, 그래도 선택을 하는 족족이 이미 다른 분이 선택하신 자리라며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좌석들로 인해 성공적으로 예매 완료를 맞이하기까지 어찌나 심장이 쫄깃했는지 모른다. 세상에 언제부터 이렇게 뮤지컬 티켓 예매가 난데없는 자리 쟁탈전이 되었단 말인지..


신영숙 배우님은 댄버스 부인 그 자체였다. 워낙 스토리 전개 자체가 탄탄하여 그 흐름이 전혀 어색한 곳이 보이지 않는 작품인데, 신 배우님이 이끌어 가는 그 어두운 긴장감으로 삽시간에 스토리 속에 몰입하게 되는가 하면, 그런 심각함 속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깨알 유머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결과적으로 상당히 '재미있다'로 종결되는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사실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본 것도 아니고, 독일어 공연을 본다 해도 자막으로 전달되는 뉘앙스의 한계가 있을진대 기대 없이 툭툭 튀어나와 웃음을 부르는 농담들은 아마도 한국 관객들을 고려하여 현지화된 부분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공연이 시작되면서부터 내 눈에 유독 걸려드는 것들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늦게 온 사람들'이었다. 어느 공연을 보러 가든 간에 단 한 번도 실패 없이 꼭 늦게 입장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한국인들의 '코리아 타임'도 문제가 있지만, 공연이 시작된 이후에는 입장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강력하게 적용하지 않는 것은 그저 우리나라의 문화라고 받아들여야 할지, 그저 좋은 게 좋은 거고 그까짓 거 대충 좀 합시다라는 뿌리 깊은 한국인들의 정서임을 그저 이해해야 하는 건지, 나는 항상 그 부분에 대해 마음에 불편함이 찾아온다.


무대는 TV나 영화관 같은 영상매체가 아니다. 모든 것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라이브의 형태이고, 그러기에 매 순간이 어쩜 늘 새로운 긴장으로 새롭게 채워지는지도 모르겠다. 공연이 일단 시작되면 무대 위의 아티스트들은 아무리 무대에 집중하고 있다 하더라도, 관객석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소동이 자칫 집중을 저해하는 방해 요소가 되기 십상이다. 설사 배우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늦게 들어와 어두컴컴한 곳에서 자리를 찾아 헤매며 이미 관람 중인 관객들의 시야에 방해가 되는 것은 또 어떻단 말인가. 이러나저러나 누군가에게는 폐를 끼치는 행위이고, 배우에게든 관객에게든 리스펙트가 없는 행동이다.




예전 호주에 살고 있을 당시의 일이다. 오라비의 절친이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시드니에 왔는데, 그렇게 날아온 친구 녀석에게 제대로 호주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던 오라비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 오페라 티켓을 예약해 두었다. 친구 부부와 극장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어떤 사정이 생겼는지 친구 부부가 공연 시작 전에 당도하지 못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오라비는 혼자서 공연장에 입장을 했고, 뒤늦게 도착한 친구의 부부는 너무도 당연하게 밖에서 하염없이 대기해야 했다. 왜냐하면 공연이 시작된 후에는 그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절대 입장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인터미션 때나 입장을 하게 된 친구 부부는 1막을 모두 놓친 채 이해할 수 없는 반쪽짜리 오페라를 관람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보며 뭐 그리 융통성 없이 빡빡하냐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제발 생각을 좀 바꿔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라이브로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조금이라도 존중의 마음이 있다면, 마치 영화관에 늦게 입장하듯 뒤늦게 나타나 관객석을 두리번대며 왔다 갔다 하는 매너 없는 행위는 제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러한 방침은 극장 측에서 좀 더 철저하게 시행을 해줘야 서로가 불편하지 않은 공연 문화가 조성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공연장 매너에 관해서는 이것 말고도 할 얘기가 참으로 많지만, 앞서 예전에 써 내렸던 뮤지컬 관람 상식 사전에 이미 다 담았기에 참고적으로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리고 싶다.




여하 간에, 내가 극장을 찾았던 날 신영숙 배우님과 에녹 배우님, 그리고 박지연 배우님의 조합은 정말 완벽했다. 이 작품의 음악을 담당한 실베스타 르베이가 신영숙 배우님을 두고 전 세계에서 '가장 댄버스 부인다운 목소리'라며 극찬을 했다니 그녀의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에 대해 더 말할 게 뭐가 있을까. 무대 장치는 클래식하지만 참으로 스마트했고, 생동감 있게 맨덜리 저택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무대였다. 극 전체에 4번에 걸쳐 등장하는 '레베카' 넘버는 그야말로 소름! 머리털이 쭈뼛쭈뼛 다 서는 감동이 가득했던 날, 그 에너지를 받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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