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일 전 일요일 나는 다시 혼자만의 문화생활을 즐기고 왔다. 개인적으로는 벌써 세 번째 만남이 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관람하고 왔는데, 아무리 같은 작품에 같은 프로덕션이라도 출연진이 다르면 그때마다 와닿는 감동이 제각각이라 이번에도 역시 새로운 감흥을 누릴 수 있었다.
기록하는 글의 힘을 이제야 느끼며 살아가는 중이라, 10여 년 전 내가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어떤 배우께서 내게 그리도 감동을 전해줬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점이 다소 아쉬울 따름이다. 이번에도 주역을 맡으신 배우들이 하나같이 쟁쟁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류정한 배우님의 지킬을 꼭 보고 싶어서 두 말할 필요 없이 류 배우님이 출연하시는 날짜를 콕 짚어 선택했다.
지킬 앤 하이드는 뮤지컬 계에서는 명실상부 최고의 작곡가인 프랭크 와일드혼의 손에서 탄생하여 워낙에 유명한 넘버들이 가득한 작품이지만, 대한민국 사람 중 대다수가 아마 지킬 앤 하이드는 몰라도 '지금 이 순간'이라는 넘버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특히나 유명한 곡이다. 극의 초반부에 사실상 극이 전환되는 시점에 등장하는 결정적인 하이라이트 부분이라 배우들에게 있어선 상당히 긴장되는 순간 이리라 생각된다.
이 날 류 배우님은 노래를 조금 눌러서 부른다는 느낌이 들긴 했는데, 너무 고음 지르기 전 긴장을 하신 건지, 워밍업이 덜 됐었는지, 아니면 혼신의 연기에 집중하다 보니 그랬는지, 어떤 이유에서건 안타깝게도 정말 중요한 '그때 그 순간' 약간의 음 이탈이 나고 말았다. 아뿔싸.. 하필 '지금 이 순간'에서... 하필 그 순간에...
그러나 너무도 노련한 베테랑 연기자이신 만큼 그 이후로도 한치의 흔들림이 없이 집중하여 연기를 이어가신 걸 보며 그야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건 간에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아티스트들의 norm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연주자들이 레퍼토리를 선정할 때 너무 많이 알려진 곡은 기피하는 이유가 있다. 모두가 알기 때문에 그만큼 듣는 귀의 기대치가 높고, 그걸 알기에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상당히 클 수밖에 없는 데다가, 그런 심리적 부담이 존재하면 연주 시 외려 실수를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음악이란 그 어떠한 규격 안에 정해진 룰을 적용하여 평가할 수 있는 게 전혀 아니라 누가 어떻게 해석하고 연주하느냐에 따라 모두 제각각이고, 또 듣는 사람의 취향도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남들로부터 '평가' 받아야 하는 것은 아티스트들의 숙명과도 같다. 그러나, 특히나 감수성이 예민한 아티스트들에게 있어 그 평가란 결코 익숙해지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러시아의 거장 라흐마니노프조차도 그가 작곡한 교향곡이 혹평을 받자 우울증에 걸릴 정도로 마음고생을 했다니 말이다.
예전 내가 피아노 전공 학도이던 시절, 스승님은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남들의 평가에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그 평가란 결국 그 사람의 의견일 뿐, 그 해석이 절대적인 정답이라고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번 들으면서도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냐며 속으로 생각하곤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수도 없이 그렇게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만 했다.
아들러 심리학에선 인정 욕구를 부정하라고 말한다.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는 얼마나 남의 이목을 인식하고 살아가며 또 남이 세워둔 잣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 노력하며 살고 있던가.
이렇게 '남'이 기준이 되는 삶은 너무도 익숙한데, 어째서 우리는 '남'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에는 그리도 인색한 걸까.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
누군가의 신발을 신어 보라, 즉, 내가 저 사람의 입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보라는 서양인들의 속담이다.
Collins 사전에서는 덧붙여 설명하기를, 그러니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그 상황에 대해 좀 더 관대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살아가는 매 순간 동안 나는 얼마나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보고 있을까. 다소 화가 나는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한 템포 띄고 생각해본다면 분명 그럴만한 상대의 사정이 있었을 터인데, 너무도 쉽사리 이해의 문을 닫고 나만의 생각을 펼치기 일쑤 아니던가. 더구나 나의 생각을 너무도 쉽고 빠르게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보니, 울컥 쏟아내고 돌아서면 하필 그 순간을 참아내지 못해 후회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런 생각에 이르고 보니 차라리 솔직하고 진지한 뜻을 전하기 위해선 종이를 꺼내 한 글자 한 글자 편지를 써내리던, 그다지 오래전 같지 않은 그 오래 전이 좋았단 생각이 든다. 글은 생각을 한 번씩 걸러주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할 수 있고, 좀 더 실수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류 배우님의 실수를 지적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다만, 그 순간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생각하다 보니 의식의 흐름이 어느덧 내가 무대에 올라가던 시절로 이끌었고, 나의 삶에 있어 '남'이라는 기준을 어디에 세워야 할지 문득 떠올려보게 되었다.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기준'이란 건 오롯이 나에게 있어야 한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내일의 '나'가 되는 것이 우리 인생 궁극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지 않나. 다만 좀 더 '남'을 배려하고 이해해보는 노력을 한다면 '나'와 '남'이 가장 짝이 잘 맞는 신발 한 켤레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발이 편안해야 온 몸이 편안하듯, 조화를 잘 이룬 신발 한 켤레로 세상을 잘 받쳐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번 공연은 작품의 본질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보다는 무대 위에서의 배우들 상황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류 배우님 외에 주연 배우 중 한 명의 노래 실력이 영 기대에 못 미쳐서 상당히 실망감을 느꼈었지만 다시금, 나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자 생각해보며 그 배우가 스스로의 기준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길 빌어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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