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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Apr 05. 2021

<지킬 앤 하이드>로 보는 인간의 선과 악

개인적으로 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과는 좀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남편을 처음 소개받기로 하고 주말에 만나자 약속을 잡았는데, 다시 일정을 체크하다 보니 글쎄 정확히 만나기로 한 그 시간에 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을 보러 가기로 예약을 해둔 것이었다. 너무 죄송하지만 다른 일정이 있었던걸 깜빡했다며 일주일만 약속을 미뤄도 되겠냐고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는데, 사실 만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알아들을까 봐 내심 이 만남이 틀어질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의외로 선뜻 그러자며 시간을 다시 잡았더랬다. 나중에 만남이 이어지며 그 사연을 털어놓았더니, 도대체 그 뮤지컬이 뭐가 그리 대단하길래 본인보다 우선순위였냐며 비죽대기에 그 이듬해 공연에 둘이 함께 관람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다며 남편이 더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이 작품은 1886년 발표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이야기'(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Mr Hyde) 스토리를 근거로 만들어져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초연되고 1997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하기 전 미국 전역에서 먼저 막을 올렸다. 국내에는 2005년 처음 소개되어 지난해 2021년까지 무려 여덟 번에 걸쳐 막이 올랐으니 국내에서의 인기가 대단함을 알 수 있는데, 실제 브로드웨이에서의 반응보다 국내에서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뒀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가장 키포인트라 한다면 선과 악을 모두 지닌 인간의 다중성에 관한 것이다. 지킬의 아버지는 정신 분열증을 앓고 있는데, 지킬은 악마가 아버지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그는 어째서 인간은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분리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고자 한다. 그는 이 약물을 테스트할 수 있는 실험 대상자를 자신이 소속된 병원 이사회에 요구하지만 이는 신의 영역을 넘보는 반인륜적 행위라며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직접 실험 대상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약물을 투약하기에 이르는데 실험은 실패하고 만다. 선과 악을 분리했어야 할 약이, 지킬의 가장 어두운 면 만을 지닌 에드워드 하이드라는 인격체를 분리해 깨워내게 된 것이다.


지킬이 스스로에게 약물을 투약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부른 넘버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아주 대단히 위험하고도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내용인데, 이 곡이 결혼식 축가에 많이 불리는 게 참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작품을 다 아는 입장에서 이 심각한 내용의 노래를 결혼식장에서 마주하게 될 때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곤 하는데, 어찌 보면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발을 내딛는 커플의 그 순간이 그야말로 생사를 가를 만큼 심각하고 결연한 의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면에서는 어찌 보면 일맥상통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저 행복에 겨운 신랑 신부는 곧 죽어도 결혼식장에서 왜 그런 결연함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전혀 없을 테니 그 상황이 어찌 코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살아보면 바로 알게 될 거라며 굳이 이 곡을 축가로 선택해준 분의 사려 깊음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작품에서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바로 지킬이라는 인격체와 또 다른 하나의 인격체인 하이드를 표현해내는 남자 주인공의 1인 2역 연기일 텐데,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넘버가 있으니 바로 'Confrontation'(대립)이다. 지킬과 하이드 두 인격체가 서로 주도권을 다투며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표현하는 곡인데, 지킬과 하이드를 반쪽씩 분장하고 순식간에 두 인격체를 바꿔가며 노래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킬링 포인트이다. 살다 보면 뭔가 나의 내면의 생각도 이렇게 좋은 쪽과 나쁜 쪽으로 갈라져 부딪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는데, 간혹 이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이드라는 인격체인 상태에서 그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지킬로 돌아와 그 사실을 깨닫고는 도망친다. 흔히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 다중인격자가 등장하곤 하는데, 사실 그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않으니 서로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는 않는다. 간혹 범죄를 저지르고도 절대 본인이 한 일이 아니라고 한사코 결백을 주장하는 경우가 등장하는데, 지킬과 하이드의 경우에는 지킬이 그 어두운 면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해 절망하게 된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접해 들은 다중 인격체가 아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함과 악함을 과장되게 부각해 악한 마음이 극대화되었을 때 그로 인해 저지를 수 있는 우매한 인간의 실수를 극적으로 보여주려는데 더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지킬은 하이드의 존재를 성공적으로 제거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 그 악한 인격체는 가장 행복해야 할 그의 결혼식장에서 다시금 깨어났고 또 다른 생명을 앗아간다. 이러한 어두운 존재는 결국 지킬 그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잠재울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선과 악 양쪽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분리될 수 없기에 늘 공존하고, 그저 우리는 그 무게중심이 선한 쪽에 머물도록 저울을 기울이는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도덕성을 중시하고 바른 인성을 키우기에 노력하는 게 아니겠는가...






지킬 앤 하이드에는 정말 유명한 넘버들이 많다. 아마 뮤지컬에 '뮤'자 몰라도 오며 가며 들어봤을 법한 곡들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지킬이 극 초반부에서 약혼파티가 끝난 후 친구들과 술집에서 총각파티를 하게 되는데, 이때 만나게 된 거리의 여자 루시라는 인물이 있다. 지킬이 하이드라는 인격체로 살인을 저지른 게 바로 루시인데, 그녀가 지킬에게 크게 호감을 느껴 사모하는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가 바로 'Someone like you'(당신 같은 사람)이다. 또한 지킬의 약혼녀 엠마가 부르는 넘버 'Once upon a dream'(한때는 꿈에) 역시 많이 불리는데, 이 곡은 실험에 실패한 지킬이 혼자 실험실에만 틀어박혀 괴로워하고 있을 때 엠마가 찾아와 부르는 넘버이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면, 루시와 엠마 두 여인이 지킬을 향한 각자의 사모하는 마음을 담은 'In his eyes'(그의 눈 속에)가 있다. 이런 주요 넘버들은 미리 한 번씩 들어보고 귀에 익히고 관람하게 되면 극을 몇 배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된다. 잘 모르는 음악과 내용들을 한꺼번에 머리에서 처리하려면 사실 이해도 잘 안 되고 재미도 못 느껴 자칫 꿈나라행이 될 수도 있지만, 내용을 미리 알고 들어 봐 익숙한 음악이 등장할 때 느껴지는 희열은 아주 각별하기 때문이다.


2021년 하반기에도 이 작품이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래전 자칫 남편과의 소개 자리조차 사라지게 만들 뻔했던 이 작품을 전 남현 남편과 함께 봤던 것도 벌써 아주 오래전이 되었는데 올해 다시 한번 만남을 가져보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그동안 명불허전 지킬 조승우로부터, 류정한, 홍광호, 전동석 등 그야말로 뮤지컬 계 반짝이는 스타 배우들이 모두 이 배역을 거쳐 갔는데, 올해는 또 어떤 지킬이 인간 내면의 번뇌를 멋지게 무대에 올려놔줄지 기대해보게 된다.






<이미지 출처: Google 서치, 2016년 연합뉴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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