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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Apr 02. 2021

<나비부인>과 <미스 사이공> 같은 듯 다른 이야기

오페라 코치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시절,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악보를 펼쳐놓고 가사 한 글자 한 글자 익히 피아노로 쳐보던 그때를 돌이켜본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인 쟈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작품으로 1904년에 이태리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그는 당시 일본에 단 한 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작품 속에 일본풍의 음악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표현한 점에 상당히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나비부인은 1898년에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로티가 쓴 단편소설에 근거한 작품으로, 푸치니는 2막으로 구성된 첫 버전을 초연에 올리고 대단한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3막으로 다시금 재구성하여 1904년 발표하고 크게 성공을 거둬 1907년 미국 메트로폴리탄에서 막을 올게 되었다. 






나비부인의 전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00년대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하는 이 스토리는 15세의 게이샤인 '초초상'(이하 나비부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당시 나가사키에 주둔해 있던 미군인 핑커톤과 중매쟁이에 의해 만남이 이루어지고, 나비부인은 그와 혼인하여 아이를 낳게 된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핑커톤은 케이트라는 미국인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되는데, 나비부인은 언젠가 그가 돌아올 것이라며 오매불망 핑커톤을 기다리며 지낸다. 어느 날 핑커톤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꽃단장을 하고 기다리지만,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난 건 핑커톤과 그의 부인 케이트.. 그들은 아이를 데려가 좋은 환경에서 키워주겠다며 나비부인을 찾아온 것이었다. 이에 좌절한 나비부인은 자신의 아이를 핑커톤 부부에게 보내주기로 결심하고, 아이를 방에서 내보낸 뒤 혼자 자결하게 된다.


미군이 주둔했던 나라에서는 아마도 흔히 일어나던 일이었지 싶다. 사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베트남전 당시 참전했던 한국 군인들도 베트남에 자손을 많이 남기고 왔다지 않던가. 남성들의 종족 번식 본능에 관한 깊은 문제까지는 들어가지 않도록 하겠지만, 어쩜 그렇게 남자는 언제나 매정하고 여자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지 그저 헛웃음을 짓게 된다. 그게 요즘 얘기라면 여자는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돌아와 처절한 복수를 마지않아야 정상인데 말이다.


나비부인 오페라를 먼저 깊이 공부하고 한참 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만나게 되었다. 대략적 스토리만 알고 관람을 했는데, 다 보고 난 뒤 드는 생각은 내용이 완전히 나비부인과 동일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또 찾아보니 사실 이 두 작품은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사이였다.

1989년에 뮤지컬 작곡자들인 클로드 미셸 쇤베르그와 알랭 부브릴이 나비부인의 플롯을 따다 만든 작품이 바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인 것이다. 미스 사이공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되었고, 1991년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영국 초연 당시 청명한 목소리의 주인공 레아 살롱가가 이 작품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미스 사이공의 배경은 베트남전 당시로, 미국 군인인 크리스와 베트남 여인 킴의 이야기이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사창가에서 일하게 된 킴을 보고 크리스가 호감을 느끼게 되는데, 크리스는 곧 미국으로의 귀환을 앞두고 있지만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가겠노라 약속하며 킴을 사창가에서 빼내어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크리스 역시 미국으로 돌아가 새로 부인을 얻었고, 킴은 크리스가 돌아올 것을 굳건히 믿으며 베트남에서 힘든 생활을 꾸려가게 된다.

사창가 포주였던 엔지니어가 미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찾아주는 일을 하게 되는데, 크리스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킴이 자신의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현부인 엘렌과 함께 베트남을 다시 찾게 된다. 킴은 엘렌을 만나 아들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지만 엘렌은 거절하고 양육비만을 원조해주길 원한다.(어찌나 현실적인지...)

엘렌은 크리스에게 자신과 킴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종용하고, 크리스는 현재의 사랑인 엘렌을 선택한다. 킴은 아들 탐에게 아버지를 따라가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말하며 아이를 미국에 보내기 위해 자신은 총으로 삶을 마감한다.






두 작품의 스토리가 구조적으로는 정확히 일치하지만, 1900년대 초반의 여성상과 40여 년 후의 여성상은 상당히 많이 다르고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나비부인은 너무나도 순종적이고 종속적인 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다, 돌아온 남편이 다른 부인을 동반하고 왔는데 머리채 한번 붙잡지 못하고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들을 데려가 키워주겠다는 그들에게 화도 한번 안 내고 보내주기로 결심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혼자 슬퍼하다 죽는다.


그나마 최소 자신의 아들이라고 '책임'을 지겠다며 데려가겠노라 찾아온 핑커톤은 그래도 양심과 인간미가 살아있는 남자이다. 미스 사이공에 등장한 크리스는 아들의 존재는 인정하되 물리적으로 양육을 맡아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킴이 아들을 잘 키울 수 있도록 경제적인 뒷받침은 자처하고 나섰으나 거기까지가 책임의 경계였던 것이다. 이들이 전형적인 자본주의형 부부였다면, 킴 역시 그에 지지 않는 행동파 신여성이었으니, 아들의 인생을 더 낫게 만들어주기 위해 스스로가 장애물이 되지 않으려 목숨을 버렸다. 무섭고도 슬픈 모성애이다.


두 작품 모두 아주 대표적인 노래라 한다면, 공교로운 건지 아니면 당연한 건지 여인들이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내용의 노래들이다.

나비부인에 등장하는 '어떤 개인 날(Un bel di vedremo)' 아마도 오페라 잘 모르시는 분들도 들어는 봤을법한 아주 유명한 아리아이다. 이 아리아에서 나비부인은 안타깝게도 핑커톤 그가 돌아오는 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그가 드시 돌아올 것을 믿는다고 노래하고 있다. 참으로 구슬프고 아름답다.


반면, 미스 사이공에서의 그리움의 노래는 참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크리스가 돌아올 것을 굳건히 믿는다며 애절하게 기다리는 킴의 노래와, 전쟁 후유증으로 괴로운 삶 속에 자면 다른 여인을 애타게 부르남편의 곁에서, 크리스의 사랑을 굳건히 믿는다며 부르는 현재의 아내 엘렌의 노래가 만나, 이렇게나 다른 서로의 동상이몽을 '듀엣'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넘버인 I still believe를 듣는 내내 관객들은 그들의 복잡한 상황과 심경에 그저 착잡함을 함께 느껴줄 뿐 딱히 도울 길은 없다.






그렇게 여성은 순종이 미덕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 하나쯤은 기꺼이 내놓는 모성애가 들끓는 엄마들이 당연하던 시대도 있었고 말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떠올려 본다. 요즘 여성들은 남자의 배신에 치를 떨기보다 그 배신에 '복수'를 내던지기도 하고, 관계의 틀어짐을 당하기보다 먼저 저지르기도 한다. 모성애는 훈장이 아니라 아이보다는 '나'가 더 앞서는 엄마들도 사실 많이 있다.


요즘 여성들의 이야기를 오페라나 뮤지컬로 담는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흔히 우리가 막장 드라마에서 접하는 기가 센 여자들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가긴 하지만, 머릿속에 음악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남자 주인공의 머리채를 한 번쯤은 잡으며 고음을 마구 내지르지 않을까..


오페라 대표 명작인 나비부인과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인 미스 사이공으로 시작해 결국은 이렇게 다소 엉뚱한 상상으로 마무리 지으며, 며시 찾아와 있는 봄 어떤 개인 날에 마음 놓고 나들이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코로나 없는 세상을 기다리는 이 애타는 마음이 아마도 나비부인과 킴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기다림은 참 애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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