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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Apr 07. 2021

예쁘면 살인자도 스타가 되는 도시 <시카고>

올해 곧 뮤지컬 시카고가 막이 오를 예정에 있다.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사실 놀라운 점이 많았다. 1920년대 온갖 범죄가 만연하던 시카고를 배경으로 하는 가운데 뮤지컬의 스토리 자체가 실제 사건에 근거했다는 점이 와 닿지 않을 정도로 좀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극도로 화가 나면 그 화남의 대상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미칠 수 있으나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미모의 범죄자들은 충동적이었고, 그 충동적 감정에 충실했으며, 상대에게 총을 쏘고도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끝까지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믿었고 그렇게 한결같이 무죄를 주장했으며, 세상은 이들의 겉모습으로 판단하고 그 대단한 거짓말 쇼를 믿어준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러하다. 시카고 유명 극장의 보드빌(Vaudeville) 배우인 벨마 켈리는 자신의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는 총으로 살인을 저질러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살인을 저지르고도 무대에 올라 'All that Jazz'라는 유명한 넘버를 부르는 가운데, 관객들로 하여금 또 다른 여주인공 록시 하트의 범죄 현장을 목격하게 만들어준다. 무대에 설 날만을 학수고대하며 코러스를 전전하던 록시 하트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프레드 케이슬리와 내연관계를 이어오다 일방적인 이별통보에 화가 나 그를 총으로 살해하기에 이른다. 순박하고 착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남편 에이모스는, 강도가 침입해 정당방위로 살해를 저지른 것뿐이라는 록시의 거짓말을 믿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려 한다. 그러나 록시의 거짓말은 곧 들통이 나고 그녀는 쿡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되게 된다.

※ 보드빌(Vauedeville) - 춤, 노래 등을 곁들인 가볍고 풍자적인 통속 희극 (출처-구글 사전)






이 작품은 1975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는데, 가장 오랫동안 공연한 미국 뮤지컬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흥행 보증수표라 인정받는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2000년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재즈풍의 노래들로 구성이 되어 있어 화려한 무대 볼거리보다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 및 댄스 퍼포먼스가 주효한 볼거리인 작품이다.


살인을 저지르고 수감된 두 여인, 벨마와 록시를 둘러싸고 이들이 감옥에서 언론을 쥐락펴락하며 화제의 중심에 서 있게 되는데, 이것이 가능하도록 적극 밀어주는 타락과 부패의 아이콘들이 있었으니, 바로 쿡 카운티 교도소를 관장하는 마마 모튼과 사랑과 박애로 잘 포장했으나 실상은 돈만 밝히는 속물 변호사인 빌리 플린이다. 마마 모튼은 돈만 찔러주면 온갖 편의를 봐주고 눈감아 주는 부패한 인물인데, 여기에 삼박자를 더한 또 하나의 인물이 있으니 범죄자들의 각색된 이야기를 그대로 전파하는 당대의 기레기, 바로 메리 선샤인이다. 사실 그녀가 이 시카고 스토리를 제공한 장본인이라 알려져 있는데, 범죄를 은폐하는데 일조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이 스토리로 뮤지컬을 제작하지 못하게 막았다는 후문도 있다.


이 스토리들이 사실에 근거했다고 하니 한번 생각해보자면, 죄수가 재판을 받으러 나가는데 배심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름다워 보이는(도무지 범죄를 저지를 것 같지 않게 생긴) 옷을 고르고, 머리를 하고, 또 상황 연출을 위해 뜨개질까지 한다니, 아니 이게 아무리 100년 전 미국의 모습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괴리감이 느껴지는 게 맞는 건가 싶다.

시카고는 19세기 말부터 일리노이 미시간 운하를 끼고 미국 서부와 동부 사이에 낀 아주 중요한 교통 중심지로 떠오르며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과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1920년 즈음에는 정부가 알코올음료의 생산과 판매를 법적으로 금지시키는 바람에, 이 법으로 인해 갱스터의 시대가 열렸다고 전해진다. 갱스터들은 길거리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했고, 이로 인해 총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건 하나도 이상할 일이 아닌 상황이었다고 하니, 이 작품은 이러한 현상과 맞물려 어느 정도로 총기 살인이 빈번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관련 내참고: 위키백과)






록시는 그다지 스마트하지 못한 캐릭터인데, 그녀의 스토리가 신빙성 있어지도록 주도하는 변호사 빌리와의 기자회견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다. 'We both reached for the gun'(우리는 둘 다 총을 잡으려 했지) 넘버에서, 록시는 변호사가 짜준 각본을 그대로 외워 기자들을 상대로 앵무새처럼 읊어주게 되는데, 이 장면을 묘사하기 위해 록시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고, 빌리가 그녀를 등 뒤에서 조종하며 그녀의 립싱크를 하며 노래한다. 아주 기발한 연출이 아닐 수 없다. 입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도 노래를 부르는 빌리 역의 열연이 관전 포인트이다.


이 미모의 관종 범죄자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더 세상에 화제가 되게 하려 온갖 부정부패와 거짓을 동원하게 되는데, 록시는 기자들이 또 다른 치정 사건으로 눈을 돌리자 다시금 자신이 화제에 오르기 위해 임신을 했다며 거짓말을 한다. 모든 일은 뱃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일어난 일이라며 동정표를 구하게 되고,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와 연기에 홀딱 넘어간 배심원들은 그녀가 무죄임을 인정하고 드디어 록시는 자유의 몸이 된다.

그녀는 화려한 스포트 라이트와 관심이 몰려올 것을 기대했으나, 그녀의 재판이 끝남과 동시에 사람들의 이목은 또 다른 살인사건으로 향하게 되고, 록시는 그 어떤 일말의 가책도 없이 그저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사람 '첫인상'이라는 부분이 참 중요한 건 사실이다. 요즘 세상도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저 잘생기고 예쁜 사람에게 일단은 호감을 느끼게 되기 마련인데, 소위 이런 외모 지상주의가 극도로 만연했던 시대가 바로 이 시카고 작품 속 세상인 것이다. 이 스토리와 맞물린 당시 다른 무고한 피의자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녀는 그저 못생겨서 계속 불리한 상황에 놓이다가 벨마와 록시처럼 아름답게 꾸미고 재판장에 나타나자 배심원들에게 호감을 얻고 동정을 얻음으로써 결국 그녀가 무죄임을 밝힐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언젠가 오래전 어떤 의류 브랜드의 광고 카피처럼, 역시 옷차림도 전략인 것이다. 이렇게까지 겉모습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세상이었다니, 인간의 이성과 논리는 도대체 언제부터 진화하게 된 걸까.. 불과 100년 전 세상의 모습이 너무도 허무맹랑하게 다가올 따름이다.






이렇게 풀려난 벨마와 록시는 둘이 힘을 합쳐 무대에서의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녀들에게는 '시카고 최고의 살인자 출신 두 미녀'라는 타이틀이 마치 훈장처럼 주어지고 사람들은 그녀들의 쇼에 열광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을 통해 보면 사람들은 정말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대로만 믿으려 하고 내 생각대로 상황을 왜곡시키려 들지 않던가. 그로 인해 사실 알게 모르게 만들어 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썩은 구석이 어디 한둘일까 싶은 생각에 씁쓸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분명 사회의 어두운 면을 유쾌한 극과 음악으로 잘 풀어낸 훌륭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미국 스토리이다 보니 우리에겐 크게 공감대가 생길만한 구석이 별로 많지 않지만, 어찌 됐건 브로드웨이에서 최장수 기간 동안 최다 공연을 빛내고 있는 작품이니, 뮤지컬을 봐야겠다 싶으면 꼭 한 번쯤 선택해봐도 좋을 작품이다. 배우들의 춤과 노래가 계속 펼쳐지는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직접 보드빌 쇼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구글 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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