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뮤 Apr 08. 2021

어서 돌아와 무대로 <레베카>

나는 무서운 영화 보는 것을 극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가를 즐기려고 보는 영화에 굳이 시간과 돈을 들여 자청하여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 좀 어리석단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스릴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일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스트레스가 된다.

그런 내가 유독 무대에 올라오는 스릴러나 호러물을 즐겨보는 건 다소 아이러니하다. 아마 어쩌면 무대 위에서 연출할 수 있는 '무서움'의 한계를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긴 하다. 영화 속 영상은 너무도 사실적으로 특수효과 처리하는 경우가 많지만, 무대 위에서의 연출은 그야말로 그것이 연출이라는 걸 여실히 알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 같은 쫄보 관객에게는 딱 안성맞춤인 것이다.


스릴러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은 대놓고 무섭다기보다 뭔지 모르게 으스스하고 분위기가 싸하고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사실 난 제대로 본 그의 영화가 없다. 그런데, 그가 제작한 영화 '레베카'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뮤지컬 레베카가 올해 무대에 오를 예정에 있다.

뮤지컬 레베카는 대프니 뒤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를 원작으로 하는 독일어 기반의 오스트리아 작품이다. 원래는 소설이 원작이지만 앞서 언급했듯 히치콕 감독 영화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2005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되었고, 국내에는 2013년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꾸준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흥행작이다.


이 작품에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제목은 레베카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레베카는 단 한 번도 실제 등장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인물은 '나(ich- 독일어 이히)'라는 1인칭 주어로만 등장할 뿐 실제 이름이 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녀가 맥심 드 윈터와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저 드 윈터 부인 정도로만 불려진다. 이 작품 속의 하이라이트라 한다면 단연코 댄버스 부인이 아닐까 싶은데, 어떤 배우가 댄버스 부인을 맡느냐에 따라 국내에서는 살짝 다른 해석을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신영숙 배우님 같은 경우는 엄마처럼 레베카를 아끼던 보모와 같은 역할로 해석을 했고, 옥주현 님 같은 경우는 레베카와 다소 연인과 같은 관계처럼 해석을 했다고 한다. 이런 차이를 듣고 보니 올해는 어떤 배우가 그 유명한 '레베카' 넘버를 열창해줄지 기대하게 된다.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맥심 드 윈터는 힘든 나날을 보내던 가운데 몬테 카를로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순수한 여인 '나'를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지고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 후 자택 맨덜리로 함께 돌아온다. 행복할 것만 같았던 맨덜리에서의 나의 삶은 생각 같지가 않다. 맨덜리의 집사인 댄버스 부인이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나에게 경계심을 보이고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댄버스 부인이 죽은 레베카를 자신의 전부라 여기는데, 여전히 그녀가 살아서 숨 쉬고 있다고 믿고 있기에 레베카의 자리를 빼앗은 나를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댄버스 부인의 그치지 않는 괴롭힘으로 인해 나는 심각한 우울증에까지 빠지게 되고, 결국 '나'는 맥심에게 있어 레베카는 벗어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랑이기에 결코 '나'를 사랑할 수 없다며 그를 떠나려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맥심의 숨은 반전이 드러난다. 레베카의 완벽한 미모와 미소에 많은 남자들이 넘어갔고 맥심 자신도 그중에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결혼에 이르렀으나 결혼 후 레베카는 매우 교활하고 음탕한 본색을 드러내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사촌과도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맥심과 레베카의 사이는 상당히 좋지 못했고, 둘 사이의 다툼 가운데 원작 소설에서는 맥심이 레베카를 살해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영화로 제작될 당시 심의에 걸려 말다툼 중 맥심이 레베카를 밀쳤는데 그녀가 머리를 부딪쳐 사망한 것으로 재구성되었고, 뮤지컬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었다.


레베카의 죽음에 얽힌 복잡한 비밀들을 알게 된 '나'는 맥심과 맨덜리를 지키기로 작심하지만 레베카의 죽음에 대한 수사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가 말기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었단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된다. 그녀는 레베카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다는 배신감에 절망하게 되고 결국 맨덜리 저택에 불을 지르고 최후를 맞게 된다.

사실 이 부분이 많이 의아했다. 이 작품을 쭉 따라오다 보면 댄버스 부인의 레베카에 대한 충성심이 해도 해도 너무 과하다. 레베카가 솔직하지 못했던 일이 그렇게까지 절망스럽다니.. 그게 저택에 불을 지를 만큼 분노를 일으키다니.. 뭔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그녀가 살아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힐 정도로 단순히 레베카에 대한 충성심이 크다고 보기엔 댄버스 부인의 행동과 대사들이 지나친 부분이 많이 보인다. 앞서 옥주현 님 캐스팅 언급에 다소 연인과도 같은 관계로의 해석을 이야기했는데, 사실 레베카에 대한 댄버스 부인의 태도 자체를 동성애로 바라보는 해석이 많다고 한다. 또 그렇게 동성애적 코드를 적용하고 바라봤을 때 작품 곳곳의 불편함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언제나 그렇듯 미리 음악을 들어보고 익힌 다음 공연을 접하게 되면 그 재미가 훨씬 더하게 되는데, 스릴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할 만큼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어젯밤 꿈속 맨덜리'는 정말 꿈결 같다. 약간 폭풍전야의 고요라고 표현을 해야 어울릴듯한 음악이다. 개인적으로 '나'와 맥심의 듀엣 '하루 또 하루'를 너무 좋아하는데, 참고로 2017년 뮤지컬 어워드에서 엄기준 님과 옥주현 님이 이 듀엣을 부르는 바람에 작품을 익히 관람해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댄버스 부인 역으로 너무나 확실히 각인이 된 옥주현 님이다 보니, 맥심과 댄버스 부인이 이 스위트 한 듀엣을 함께 부르는 모습이 그려져 안 웃을 수가 없었다는 후문인 것이다.


레베카는 올해 말 찬바람이 불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왠지 으슬으슬 추워지는 날에 딱 어울리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부디 그즈음이면 지금보다는 더 안심하고 공연장을 찾을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미지 출처: 구글 서치>

이전 08화 예쁘면 살인자도 스타가 되는 도시 <시카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