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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Mar 29. 2021

<팬텀> vs <오페라의 유령> 같지만 다른 이야기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했던 게 대략 2009년도였던 것 같다. 그 새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다니.. 그냥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티켓을 사들고 공연장으로 향할 수 있었던 자유로운 싱글의 시절은 어언 옛날이야기이고, 강산이 한번 변하는 만큼의 시간이 지나 이제 내 아이가 엄마손을 많이 타지 않아도 되는 때가 되어 나도 조금은 자유롭게 공연을 즐기러 다니게 되었다. 내가 육아에만 치어 지내던 그 기간 동안은 사실 어떤 작품이 새로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는지조차 소식을 모르고 지냈는데, 얼마 전 뮤지컬 '팬텀'이 막을 올린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바로 예매를 했다. 그게 '오페라의 유령'인 줄로만 알고...


아마 나처럼 착각하는 분들이 심심찮게 계시지 싶다. 나는 오페라의 유령을 하도 오랜만에 보니 아마도 그새 제목도 손보고 프로덕션을 리바이벌 한건 지도 모르겠다 하며 별수롭지 않게 "내 맘대로" 생각을 했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팬텀'은 프랑스의 추리작가 '가스통 루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오페라의 유령'과는 동일한 스토리의 또 다른 작품이다.


오페라의 유령과 얽힌 작품이 또 한 가지가 있다. 2011년 늦은 여름휴가차 방문했던 호주 멜버른에서 오페라의 유령 다음 이야기(시퀄-sequal)인 'Love never dies'를 관람했었는데, 당시 그 작품이 그다지 재미있다고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는 한 번도 막이 오른 적이 없는 듯한데,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이번 '팬텀'의 국내 공연을 관람 함으로써 오페라의 유령 시리즈는 모두 섭렵한 이 되었다.






'팬텀'이라는 작품에 대해 궁금증이 올라와 백그라운드를 찾아봤다. 이 작품은 단 한 번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적은 없으나 전 세계적으로는 1000회가 넘게 막을 올렸다고 한다. 뮤지컬 팬텀이 브로드웨이의 문턱을 넘지 못한 사연이 또 구구하다.

1983년 뮤지컬 제작자인 홀더는 전년도 토니 어워즈에서 뮤지컬 Nine으로 최고의 작품상을 받은 작곡가 예스톤과 코핏을 찾아 루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을 작곡해줄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왜 하필 호러 스토리로 뮤지컬을 만드냐며 그저 웃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독특한 시도가 될 것 같다며 제안을 받아들이기에 이른다. 작품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영국에서 동일 작품을 베이스로 한 '오페라의 유령' 제작 계획을 밝히게 된다. 제작자 홀더는 미국 내에서의 뮤지컬 제작에 관한 저작권을 가진 상태였기에 영국에서의 동일 작품 발표는 문제 삼을 수 없었다. 다만 문제가 된 것은, 이들이 작품을 거의 마무리하고 브로드웨이에 올리기 위해 투자자를 모으던 중, 1986년 영국에서 메가 히트를 친 오페라의 유령을 브로드웨이에 올리겠다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발표였다. 이로 인해 브로드웨이 투자자들이 '팬텀'에 대한 투자를 거둬들이게 됐다고 한다. 이 비운의 작품 '팬텀'은 몇 년 뒤 스크립트를 수정하여 1990년 NBC 방송국의 4시간짜리 미니 시리즈로 팔리게 됐고, 그 이듬해 1991년 공식 명칭 '팬텀'을 달고 텍사스 휴스턴의 비영리 뮤지컬 단체인 'Theater under the stars'에 의해 마침내 뮤지컬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은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 작품의 그늘에 가려져 이렇게 다소 서러운 대접을 받은 작품이었다니 그 출발점이 놀라웠지만, 어찌 됐건 칠전팔기로 끝끝내 일어선 불굴의 작품임은 분명해 보인다. 국내에서는 2015년에 소개가 되었는데 당시 팬들의 반응은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양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7년에 이어 2019년부터 매 해 무대에 올려지는 것을 보면 국내에서는 상당히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텀'과 '오페라의 유령'은 사실상 같지만 완전히 다른 두 작품인데, 팬텀이 다루는 이야기의 시점이 많이 앞서 있기 때문에 '프리퀄'의 역할을 한다. 팬텀에서는 오페라의 유령 도입 초반부에 스토리 백그라운드 정도의 수준으로 상당히 압축 요약해 다뤄진 부분을 아주 상세하게 1막 전체의 이야기로 풀어놓았다. 텀의 1막이 파리의 오페라 극장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마치 바통을 이어받듯 오페라의 유령은 그 유명한 파이프오르간의 웅장한 사운드로 압도시키는 서곡과 함께 극장의 떨어진 샹들리에가 제자리를 찾아 올라가는 것이 극의 시작을 알리는 사인이다. 샹들리에 하나로 한 작품에선 떨어지고 다른 작품에선 올라가고 절묘하게 연결이 되는 것 같아 상당히 흥미롭다.

프리퀄(prequal)-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이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팬텀은 2막부터 오페라의 유령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간다. 오페라의 유령에선 에릭(팬텀)의 캐릭터는 그야말로 유령과 같고 기괴한 신사로만 표현이 되었다면, 팬텀에 등장하는 에릭은 파괴적인 이면에 담긴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해 관객들에게 좀 더 감정이입을 불러오게 하는 그러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팬텀의 2막에선 상당히 독특하게도 '발레'가 등장하는데, 에릭의 탄생비화가 밝혀지는 장면에서 이를 모두 아름다운 발레와 카리에르의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오페라에 발레가 등장하는 건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일이지만, 뮤지컬에서 만나는 발레라니 상당히 새롭고 독특했다. 어찌 보면 장르는 뮤지컬이라 규정되었어도 스타일이나 창법 등에서 오페라적인 색깔이 강하게 나타나는 작품이다 보니, 이러한 장르를 넘나드는 구성이 사실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오페라의 유령은 제목마저 오페라가 들어가는 바람에 사실 많은 분들이 그냥 오페라인 줄 아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팬텀과 오페라의 유령 두 작품을 놓고 비교하자면, 팬텀이 훨씬 더 '오페라적인 감성'을 많이 담고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인지 실제 주연배우들도 성악 전공자 출신들을 많이 배치한 것 같다. 팬텀의 홍보 내용 중 작품을 보는 내내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라더니, 그야말로 실제 오페라 하우스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와 상황들이 극 중에 짤막 짤막하게 묘사가 되어 상당히 보는 재미가 있었다.






팬텀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감정은 사실상 오페라의 유령이 안겨줄 수 있는 감동보다 훨씬 더 깊었다. 에릭이라는 불쌍한 하나의 인간이 왜 팬텀의 삶을 살게 되었는지, 그의 안쓰러운 탄생 비화와 함께 밝혀지는 안타까운 그 아버지의 심정이 또다시 나의 모성애 버튼을 건들고 말았다. 세상으로부터 아들을 감추고 싶기도 했고, 또한 세상으로부터 아들을 지켜주고 싶기도 했던 그 복잡한 심경이 조금은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발점이 불륜이었다는건 용납할 수 없지만...) 아들을 향해 방아를 당겨야만 했던 그 순간의 비극에 울컥하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감정이입이 되어 쉽사리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상시 착용해야만 관극이 가능한 이 시국에 함성은 자제해달라는 안내가 계속 있었지만 숨죽여 무대를 바라보던 관객들은 이 상황을 모두 잊은 듯 그렇게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쳤다. 깊이 다가온 감동을 어떻게든 표현해야만 했던 것이다. 바이러스도 양심이 있다면 그런 우리의 격한 감정을 넘어서까지 마스크를 뚫고 나오지는 않았으리라 믿어볼 뿐..


왠지 팬텀이라는 존재의 삶을 좀 더 인간적으로, 좀 더 친구처럼 다가가 알게 된 느낌이었다. 금요일 밤 12시 지하철 역을 벗어나오니 가게들은 영업을 모두 종료하여 거리는 적막할 지경이었다. 마치 팬텀이 활보했을 것 같은 그 고요한 밤거리를 걸으며 나는 다시 그 무대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주 괜찮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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