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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Mar 26. 2021

<위키드> 도로시가 오즈에 도착하기 전 일어난 일들

자라면서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못 들어본 사람은 왠지 없을 것 같다. 가끔 TV에서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고  책으로도 접했던 것 같은데,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희한하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혼돈이 잘 되었던 것 같다. 하여간 이 세상 이야기와는 뭔가 좀 다른 다소 기괴한 스토리라는 점에서 충분히 어린아이들에게는 헷갈릴 수 있다고 본다.  워낙 뮤지컬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나이지만, 여태 본 중에서 '위키드'는 그야말로 최고로 손꼽는 작품 중 하나인데, 워낙 스토리도 탄탄하고 음악도 완벽한 데다 엄청난 무대와 의상으로 볼거리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미리 내용을 다 파악하고 가야 공연이 훨씬 더 재미가 있다고 거침없이 주장하는 바이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스포일러만큼은 용서가 안 되는 분들 일지라도 위키드를 관람하기 전 최소한 오즈의 마법사와의 관계도 정도는 파악하고 가면 훨씬 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여태 국내 공연 중 2013년과 2016년 두 번에 걸쳐 관람을 해봤는데, 첫 관람 시 오즈의 마법사와의 상관관계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봤기에 사실 처음 보는 작품의 전반을 이해하는 가운데 연관성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그 연관성을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하고 기억해내 설명해준 남편 덕분에 아~ 그렇구나~ 를 외칠 수 있었다.



So much happend before Dorothy dropped in

                                 

도로시가 등장하기 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브로드웨이 홈페이지에 가면 적혀있는 내용이다. 일단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 스토리가 시작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키드의 주인공인 초록색 마법소녀 엘파바는 먼치킨 랜드 영주의 딸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초록색 피부를 가지고 있어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라나 세상에 대한 적대감을 가졌다. 게다가 이 초록색 피부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하지만 그녀의 본래 심성만큼은 착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다.

이러한 엘파바가 바로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사악한 '서쪽 마녀'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의 집이 토네이도에 휩쓸려 오즈로 떨어졌을 때 그 떨어진 집에 마녀 한 명이 깔려 죽는데 이 죽은 마녀가 바로 엘파바(서쪽 마녀)의 여동생 네사로즈이다. 도로시는 네사로즈가 신고 있던 빨간 구두를 신고 오즈를 헤매게 되는데, 나중에 서쪽 마녀가 도로시를 잡아간 이유는 바로 동생의 구두를 되찾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서쪽 마녀는 도로시가 뿌린 물에 녹아 모자만 남기고 사라지게 된다.


앞서 죽은 엘파바의 여동생 이야기가 언급되었는데, 좀 더 설명해 보자면 네사로즈는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동쪽 마녀'이다. 네사로즈는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선천적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엘파바가 구두에 마법을 걸어 동생을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녀가 걸음을 걸을 수 있게 됨으로써 일어난 또 하나의 사건이 있다. 학교에서의 인기녀 글린다를 좋아하는 보크라는 남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먼치킨 랜드에서 온 먼치킨이란 작은 인종이다. 글린다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상황임에도 보크는 그녀에게 댄스파티에 파트너로 함께 가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를 떼어버리려는 글린다의 수작으로 인해 보크는 네사로즈와 댄스파티에 함께 가게 되고, 이를 계기로 네사로즈가 그에게 반하고 만다.

그는 후일 먼치킨 랜드의 영주가 된 네사로즈의 비서가 되어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그녀의 수족 노릇을 하게 되는데, 엘파바의 마법으로 그녀가 걸을 수 있게 되자 이제는 네사로즈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며 좋아한다. 그때 들려온 글린다의 약혼 소식을 접하고는 보크는 자신의 마음(heart)은 여전히 글린다에게 있다며 그녀에게 가려 하자, 화가 난 네사로즈가 언니 엘파바의 마법책으로 마음(heart)을 얻는 주문을 걸지만 이 주문이 심장(heart)을 뽑아버리게 된다. 재빨리 엘파바가 심장이 필요 없는 양철 인간으로 만들어 죽지 않게 해 주었는데, 바로 이 양철 인간이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그 양철 나무꾼이다. 'heart'라는 영어 단어가 마음과 심장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담고 있기에 가능했던 워드 플레이인 것이다.


글린다가 이미 언급되었으니 이어서 그녀의 이야기를 간략히 살펴보겠다. 글린다는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착한 '남쪽 마녀'이다. 엘파바와는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는데 경쟁적인 적대 관계로 만났지만 결국엔 최고의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글린다는 이렇게 '착한' 마녀로 불리고, 엘파바는 '사악한' 마녀로 구분되는데 바로 뮤지컬 위키드(Wicked-악질, 사악한)가 엘파바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의 제목이 된 연유이기도 하다.


글린다에서 연결되는 또 하나의 인물이 있으니 바로 피예로이다. 그는 큰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진 서쪽 나라의 왕자인데, 글린다의 연인으로 후일 그녀와 약혼까지 이르게 된다. 그는 별로 생각이 없는 날라리의 모습이었지만, 엘파바와 함께 우리에 갇힌 아기 사자를 구해주면서 엘파바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후에 엘파바가 쫓기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그녀와 함께 도망을 치게 되는데 그녀가 잡힐 위기에 처하게 되자 엘파바를 도망치게 하고 자신이 투항하여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는 옥수수밭에 장대로 매달리는 형에 처해지게 되자 엘파바가 그를 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변신시키게 되는데, 그가 바로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그 허수아비이다. 그리고 앞서 위에서 언급되었던 엘파바와 피예로에 의해 구조된 '아기 사자'는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겁 많은 사자이다. 그는 겁이 많아서 스스로 탈출하지 못했던 것으로 오즈의 마법사에서 표현된다.


마지막으로 살펴봐야 할 인물이 있으니 바로 '오즈의 마법사'이다. 그는 두 작품에서 모두 '오즈의 마법사'로 등장하는데, 오즈의 권력자이지만 실상은 기계장치나 조금 다룰 줄 아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중년 남자이다. 엘파바가 만나러 찾아왔을 때 그녀의 마법을 이용해 큰 힘을 얻으려고 계략을 세웠지만 이를 눈치챈 엘파바가 마법책을 가지고 달아나게 되면서 엘파바가 쫓기는 상황에 놓인다. 엘파바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2막에서 글린다에게 권해준 초록색 약병이 엘파바가 엄마의 유품이라며 가지고 있던 약병과 똑같다는 점을 통해 관객들이 오즈의 마법사와 엘파바의 관계를 바로 알아차리게 만들어주는 '명백한' 힌트를 던져준다.

그는 달아난 엘파바를 잡아들이기 위해 마담 모리블(학교 학장)을 시켜 엄청난 토네이도를 일으키게 하는데, 이 토네이도가 바로 도로시의 집을 오즈까지 날아오게 만든 그 토네이도이다. 후에 자신이 선동하여 '사악한' 마녀로 만들고 결국 죽게 만든(죽었다고 생각하는) 엘파바가 자신의 친딸이었음을 깨닫고 좌절하여 오즈를 떠난다.


한 가지 더 마무리에 얹어볼 포인트가 있다면, 도로시가 서쪽 마녀에게 물을 뿌렸을 때 뾰족한 마녀 모자만 남기고 사라지게 되는데, 이 모자는 위키드에서 글린다가 댄스파티에 쓰고 오라며 엘파바에게 선물한 바로 그 모자이다. 사실은 이 모자로 인해 엘파바가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글린다가 미안한 마음에 엘파바에게 진정한 친구로서 다가가게 만들어주는 매개물이다.






위키드는 화려한 의상이 정말 대단한 볼거리인데, 무려 350여 벌에 달하는 의상비에만 40억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기 위해 소요된 비용 중 지극히 일부임이 분명할 텐데, 의상비만 듣고도 입이 떡 벌어졌다. 그 화려함을 극도로 들어내는 장면이 바로 2막의 에메랄드 시티 장면일 것 같은데, 여기서 나오는 'One short day' 넘버가 아주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초록색을 아주 좋아하다 보니 여기 등장하는 온갖 초록빛 계열 화려한 의상들에 정신을 온통 빼앗겼던 기억이 난다.

출처: 구글 서치

무엇보다 주인공 엘파바의 넘버 중 'Defying Gravity'는 진성으로 3옥타브 E6(미)까지 소화해야 하는 초고난도 음역인데, 2003년 이 작품의 초연 당시 주연을 맡았던 이디나 멘젤이 이 역할을 통해 토니상을 수상했다. 사실 이디나 멘젤은 겨울왕국에서 'Let it go'를 불러 수많은 아이들이 레디꼬~레디꼬~를 외치게 만든 장본인으로 국내에서는 더 유명하다. 국내 공연에서 옥주현 님과 차지연 님의 엄청난 가창력으로 이 노래를 들었었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짜릿했더랬다. 현재도 막이 올라 공연 중에 있는데, 다시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






위키드와 오즈의 마법사 두 가지 작품 간의 연결관계를 주욱 늘어놓았는데, 사실 이 내용을 들여다볼 때마다 어쩜 그렇게 긴밀하고 묘하게 다 이어져 있는지 놀라게 된다. 이런 각본을 써 내려가는 능력자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위키드를 보면 '선과 악'이란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인지 아니면 외부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착한 마녀와 사악한 마녀라는 타이틀도 그들의 본질과는 크게 상관없이 처해진 환경에 따라 그렇게 '몰아간' 타이틀이기 때문이다. 사악하다고 규정된 엘파바는 본래 정의롭고 착한 심성을 지녔고, 글린다는 실제 착하지 않다기보다는 그녀의 예쁜 외모에서 비롯된 인기와 선입견으로 인해 실상이 어떻건 간에 단번에 '착한 사람'으로 규정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보이는 모습만으로 판단하려 하지 않던가.. 이렇게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남긴 채 위키드에서도 사라져 버리고, 오즈의 마법사에서도 사라져 버린 그 초록마녀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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