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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Mar 25. 2021

<몬테 크리스토>가 선사해준 희열

다소 얼어붙었던 뮤지컬 공연계가 올해 들어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시작의 한가운데에 바로 몬테 크리스토가 있었는데, 나도 이 작품은 전에 본 적이 없었던지라 설레는 맘으로 예매를 서둘렀다. 캐스팅 멤버에 따라 관객이 몰리는 정도가 크게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뒤늦게 예매 전쟁에 뛰어든 것 치고는 운 좋게도 몇 자리 남아 있는 평일 공연에 카이 님과 옥주현 님이 주연을 맡은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2008년도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고 국내에는 2010년에 소개가 되어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공연은 10주년을 기념하는 시즌이었다. 이 작품은 몬테 크리스토 백작 소설에 근거했다기보다는 2002년에 각색되어 제작된 영화 몬테 크리스토와 더 근접한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공연 현장을 200% 즐기기 위해 나는 반드시 사전에 스토리 라인을 다 파악하고 음악을 미리 들어본다. 만약 처음 접하는 작품이라면 이 과정은 필수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번 예습을 하고 가면 관람할 때의 몰입도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사전 지식 없이 공연장을 찾았다가는 애꿎은 티켓값이 나의 꿀잠과 맞바뀔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사실 영화관을 찾을 때는 극도로 '스포'에 대한 경계를 보이게 되지만, 이런 무대극은 영화와는 다르게 미리 내용을 파악하고 음악도 들어보고 어느 정도 익숙해야 관람이 몇 배 즐거울 수 있다는 점을 많은 분들이 알게 되면 좋겠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마주한 무대에는 전체 LED 패널로 멋진 배가 항해하는 듯한 모습과 타이틀이 띄워져 있었고 마치 몬테 크리스토가 항해하던 그 배 위에 승선한 듯 극장 내에 흘러나오고 있는 바닷물 철썩대는 소리와 함께 그렇게 점차 극 속으로 빠져들 준비를 시켜주고 있었다.






최근 공연을 보러 다니다 보면 이렇게 신생 작품일수록 최신 기술력이 무대 위에 한껏 담긴다는 부분에 많이 놀라게 된다. 사실 무대라는 것도 조명과 특수효과의 움직임 및 소품 하나하나부터 거기에 출연자들의 의상까지 모두 하나의 프로덕션, 즉 생산물(산출물)로 명명되게 된다. 그래서 애초에 그 무대의 모습 전체를 고안해낸 사람이 고유 권한을 갖게 되며, 이는 함부로 카피하거나 동의 없이 외부로 공개되어서도 안된다는 철칙이 있다. 그렇기에 관객들이 처음 오디토리움에 들어섰을 때 멋지게 펼쳐진 무대를 보는 순간 카메라를 꺼내 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나 촬영을 허락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라이선스 무대'라고 홍보하는 작품들은 해외에서 고안된 작품 무대를 '그대로' 가져와 국내 무대에 옮겨 놓는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작품을 전 세계 어디에서든 그 나라 언어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이다. 간혹 시작 전에 무대 촬영을 허락해주는 경우도 있어서 나는 입장 전 안내원들에게 반드시 촬영 가능 시점을 확인한다. 그냥 무턱대고 사진을 찍어대다 제지당하는 무안함을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몬테 크리스토는 극장 내에서의 촬영이 일체 불가했고 커튼콜 조차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 좀 아쉬웠다.


LED 패널이란 건 정말 놀라운 일을 많이 만들어냈다. 요즘은 무대의 막을 옛날처럼 커튼이나 롤다운되는 스크린 같은 걸로 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LED 패널을 오르내리는 막으로 활용해 각종 그래픽으로 입체적인 무대그림을 연출해 내는 것이다. 몬테 크리스토의 도입부에도 이 패널을 활용한 그래픽과 자막을 통해 스토리 도입 백그라운드를 훨씬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런 기술이 아니었다면 그 내용을 무슨 수로 표현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만약 일일이 그 백그라운드 내용을 무대 위 극으로 다 연출해야 했더라면 이야기가 시작부터 다소 지루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에드몬드 단테스는 순수하기 짝이 없는 성실한 청년이었을 뿐인데, 주변 인물들 각자의 필요와 욕심으로 인해 감옥에 투옥되어 오랜 세월을 고통 속에 살게 된다. 세상 이렇게 억울한 인생이 어디 있겠나. 그는 애초 왜 자신이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 영문을 모를 따름이다. 그러던 중 탈옥을 꿈꾸며 숟가락으로 땅굴을 열심히 파온 파리아 신부와 만나면서 그 꼬인 인생의 실마리를 잡아가게 되는데, 파리아 신부는 그에게 글과 무술을 가르치며 점차 무지했던 그의 생각을 일깨우기 시작한다.


극의 도입부에는 에드몬드가 곤경에 빠지게 된 배경 스토리들이 하나둘 씩 펼쳐진다. 에드몬드가 항해 도중 병을 얻게 된 선장을 치료받게 하기 위해 엘바 섬에 잠시 정착하게 되는데, 그곳에 유배된 나폴레옹이 마르세유의 친구에게 편지를 전달해줄 것을 부탁하고, 이를 선박회사의 회계사 당글라스가 목격하게 된다. 선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배를 성공적으로 진두지휘하여 귀향한 에드몬드는 선장으로 임명되는 영광을 얻게 되고, 당글라스는 그의 출세를 시기하게 된다.


에드몬드의 약혼녀인 메르세데스를 짝사랑해온 에드몬드의 친구 몬데고는 질투에 눈이 멀어 당글라스와 결탁하여 에드몬드를 스파이 혐의로 누명을 씌워 고발하게 되고, 에드몬드는 행복한 결혼식장에서 체포되고 만다. 체포된 그를 심문하던 검사 빌포트는, 나폴레옹이 편지를 전달하려던 사람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무고한 에드몬드에게 큰 죄명을 씌워 살아 돌아오기 힘들다는 감옥에 투옥시킨다.


감옥에서 파리아 신부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하나둘씩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는 가운데, 그토록 믿었던 사람들의 탐욕과 위선, 배신 때문에 감옥에 오게 되었단 사실을 깨달으며 복수를 다짐하게 된다. 감옥에서 그렇게도 의지하던 파리아 신부는 땅굴을 파던 중 사고로 세상을 뜨게 되는데, 죽기 전 보물이 가득한 몬테 크리스토 섬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자신이 들어갈 시체 자루에 대신 들어가 탈출할 것을 권하게 된다.


극은 극이기에 다소 과장된 스토리이긴 하지만,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겪게 되는 크고 작은 감정의 손상들이 누구나 있지 않나 싶다. 이렇게 복수를 할 정도의 일이야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극에서 에드몬드는 그야말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그대로 실천에 옮기게 된다.



■ 탐욕, 위선, 배신을 그대로 돌려주겠다.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


에드몬드가 선장의 직함을 받으며 승승장구할 때 이를 끝없이 시기하던 한 사람, 바로 선박회사의 회계담당 당글라스이다. 그는 에드몬드를 스파이로 몰았고, 곤경에 빠트렸다. 그런 후 선박회사를 갈취하여 회사의 주인이었던 Morrel(모렐)을 빈털터리로 만들고 만다. 에드몬드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으로 돌아와 모렐에게는 재산을 나누어주고, 당글라스는 몰락을 시키는데 그 방법이 참 흥미롭다. Lerrom(레롬)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당글라스를 혹하게 하고 그의 전 재산을 투자하게 만든 후 회사를 파산시켜 버리는데, 이 Lerrom이라는 이름은 Morrel의 스펠링을 정확히 역순으로 적으면 되는 이름이다. 일어난 일을 거꾸로 되돌려놓는다는 의미를 담은 워드 플레이가 돋보이는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당글라스의 '탐욕'에 대한 복수로써 그의 전 재산을 빼앗아 버림으로 그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게 만들어버렸다.


다음은 에드몬드가 잡혀왔을 때 그를 심문하던 검사 빌포트이다. 그는 당초 에드몬드의 결백을 믿어주며 풀어주려 했으나 나폴레옹의 편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향하고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자기가 쌓아온 모든 명예를 무너뜨릴 수는 없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갑자기 돌변하여 에드몬드에게 중죄를 덮어 씌운다. '위선'을 저지른 것이다. 빌포트 역시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 설립한 회사에 투자를 하게 되는데, 그 자금이 모두 불법 비자금이었음을 밝혀낸다. 그토록 청렴결백한 공무원임을 자처하며 명예롭게 살아오던 그의 위선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불법을 저지른 죗값으로 그는 처형을 당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예전의 친구 몬데고의 차례이다. 에드몬드의 약혼녀 메르세데스를 흠모하던 그는 사랑을 빼앗기 위해 당글라스와 모의하여 친구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메르세데스가 그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배신'에 분노하여 사실상 가정을 파괴하기 위해 몬데고가 많은 잡부 여성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도록 유인했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을 져버렸다고 생각한 메르세데스가 여전히 에드몬드 자신을 잊지 못하고 그에게 돌아오길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며 지난 일을 잊고 모두 용서하려고 하지만, 몬데고는 자신을 파멸로 이끈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죽이려다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결국 마지막은 화해와 사랑이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마침내 메르세데스와 오해를 풀고 화해와 용서, 그리고 둘만의 사랑을 재차 확인하며 극은 마무리에 이른다. 드라마틱한 복수극으로서의 엔딩이 다소 뻔하게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결말이었으나 어찌 보면 대다수의 주인공이 죽으며 막을 내리기 일쑤인 무대극에서 사랑이 아름답게 결실을 맺었으니 그리 뻔하다 할 수도 없는 흐뭇한 마무리였다.






몬테 크리스토에는 정말 주옥같은 넘버들이 가득이다. 음악이 그야말로 소름 돋는 순간의 연속인데, 그중에서도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을 현장 라이브로 들었을 때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비교적 신생 작품이다 보니 다소 오래된 뮤지컬 작품들 대비 악기 구성이나 장르 부문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특히 이 넘버는 일렉기타의 사운드가 압권인데, 오케스트라와 일렉기타의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의 절묘한 조화로움으로 인해 듣는 내내 긴장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동공은 커지고 머리털은 다 서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무대에 또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오케스트라 피트였다.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는 무대 아래쪽으로 반쯤 들어가 위치하게 되는데, 이번 무대는 피트가 무대의 연장선상으로 완전히 커버되고 음악감독님(지휘자)만 무대 앞쪽 사각형으로 오픈된 공간에 빼꼼 나와 보이는 형태였다. 단순히 그렇게 위치했을 뿐만 아니라 극 중 지휘자님과 교감 연기가 오가며 깨알 유머를 선사해주기도 하는 점이 참 위트 있는 연출이었다.


에드몬드가 시체 자루에 들어가 감옥에서 탈출을 하고 바다에 떠다니다 해적선에 의해 구조되는데, 이 해적선 장면이 또 볼거리 가득이다. 해적 선장 루이자 역에 김영주 님 캐스팅이었는데 '진실 혹은 대담' 넘버에서 그녀의 풍성한 목소리에 락 스타일 창법이 더해져 제대로 걸 크러시를 표현해 주었다. 오페라처럼 한결같은 창법이 아닌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 수 있는 것이 바로 뮤지컬의 무한 매력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 시국에 공연장을 찾는 건 사실 많은 고민이 뒤따르게 했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문화생활을 쫒아 공연장을 찾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쩌다 우리가 당연하듯 누리던 이 모든 생활들이 이처럼 고민스럽고 어려운 일이 돼버린 건지.. 처음 접해본 몬테 크리스토 뮤지컬이 시작부터 끝까지 재미와 희열을 선사해줬던 터라 어스름히 노을이 지려는 이른 저녁 시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경쾌하게 해 주었다.


연인과 손잡고 공연장을 찾은 젊은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나의 옛 모습도 잠시 떠올려본다. 나도 남편과 공연을 보러 다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같이 가자 하면 비싼데 그냥 혼자 다녀오라는 쿨하기 짝이 없는 현실 남편이다. 못내 아쉬운 티를 과장되게 내보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그것도 공연을 보며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얼마나 신나 하는지 그는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해주는 걸까.. 평생 엄마 껌딱지 할 것처럼 떨어지지 않아 아이를 집에 두고 외출을 할 수도 없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엄마가 문화생활 즐기고 올 수 있도록 쿨하게 인사해주는 딸아이의 성장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기꺼이 아내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허락해주는 남편에게도 역시 감사한 마음이다. 이렇게 강렬했던 몬테 크리스토 백작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아름답던 메르세데스의 넘버를 흥얼거려보며 나는 다시 서둘러 엄마가 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이전 02화 <명성황후> 그녀의 인생을 잠시 만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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