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뮤 Feb 22. 2021

<명성황후> 그녀의 인생을 잠시 만나고 왔다.

벌써 20여 년 전이 되어간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그만큼 오래전 나는 오페라 레페티터의 길에 입문했었다. 나름 나만의 타당한 이유들로 다른 길을 선택해 또 다른 삶을 엮어 왔지만, 나는 언제나 무대 위아래를 누비던 그 시절을 못내 잊지 못한다.

국내에서는 오페라 무대에 대한 수요가 워낙 적은 게 현실이라 자주 좋은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오페라와는 사실상 동일한 포맷의 종합 예술인 뮤지컬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기회가 되면 열심히 보러 다녔다. 실제 국내에서는 뮤지컬이 대중화에 성공하여 잘 안착하였고, 그만큼 찾는 관객도 정말 많은 듯하다.


어쨌든 그쪽에 전문성을 가졌던 사람이다 보니, 그저 남들이 무대를 관람하는 관점과는 상당히 다르게 무대를 바라보곤 한다. 유명한 배우가 나와서 연기를 잘했는지, 그 사람이 노래를 얼마나 잘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나는 주로 오케스트라 연주가 조화로웠는지, 무대 장치와 연출은 자연스러운지, 노래하는 사람들과 오케스트라의 발란스가 잘 맞았는지, 이런 전반적인 디테일에 하나하나 눈과 귀가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세세한 부분을 귀 기울이며 나는 혼자만의 희열을 느끼곤 한다. 무대 뒤를 바쁘게 쫓아다니던 그때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다시 불러들이는 유일한 나만의 추억 소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명성황후 25주년 기념 공연을 관람하고 왔다. 이 작품이 벌써 25년이나 된 것을 나는 이제야 만나보게 되었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고 한다. 이전 버전과는 비교할 길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그 달라졌다는 부분들이 상당히 훌륭해 보였다. 아주 최소한의 무대 소품들과 함께 LED 패널에 쏘아 올리는 다양한 장소의 변화들이 입체적으로 표현이 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대 장치를 직접 만들어내야만 했던 게 다소 고전적이라 한다면, 이렇게 그래픽 만으로도 좀 더 입체적인 공간 연출이 가능하니, 이 얼마나 무대 예술에 놀라운 혁신인 건가. IT 강국 대한민국의 창작예술 무대다웠다.


이런 신기술과 어우러진 우리 전통의 한복이 무대 위에서 보는 재미를 꽉 채워줬다면, 그야말로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자아내는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조화는 놀라움의 극치였다. 사실 악기 구성이 너무 궁금해 오케스트라 피트를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지만, 들리는 소리로 악기 편성을 추측해보는 수밖에... 2막에서 이어진 명성황후 솔로 넘버에서 구슬픈 음색을 자아내는 국악기 피리와의 앙상블이 오래도록 귀에 남아있다.


이 작품은 뮤지컬이라 정의되어 있으나 사실 전체적 느낌이나 스타일이 상당히 오페라에 가까워 보였다. 그 차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사실상 두 장르가 동일한 포맷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뮤지컬이 좀 더 대중음악의 성격을 지향하는 반면, 오페라는 그야말로 클래식 그 자체라 하겠다. 김소현 배우님과 손준호 배우님 부부의 캐스팅 일정으로 관람했는데, 성악을 전공하신 두 분의 발성 느낌이 이번 명성황후 작품에서 제대로 빛을 발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각색을 통해 이전에는 성스루(sung-through) 방식이었던 것을, 대사를 삽입하여 그 흐름을 더 명확하게 하였다고 한다. 사실 한국어 공연이라는 이유로 자막이 제공되지 않는 터라, 출연자들의 명확한 딕션에 의존해 노래를 알아 들어야만 했는데, 만일 대사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로만 구성이 되어 있었더라면 사실상 내용을 매끄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대사를 통한 자연스러운 내용 전달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다.


몰입하여 보다 보니 극이 클라이맥스에 달할 때는 울컥함을 금할 수 없었다. 일게 일본 무사라는 자들이 한 나라의 국모를 향해 '여우 사냥'이라 외치며 궁궐을 초토화시키고 왕후를 시해하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더 크게 와 닿는 장면 이리라. 그저 글로써만 접해오던 내용을 시각화하여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오름을 느꼈다.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사실상 모두가 멈추어야 했던 때, 공연계도 여지없이 모든 것이 얼어붙는 시간이었다. 마스크가 생활화되고 우리는 이런 삶의 형태에 이미 너무 익숙해졌기에 올해는 조금씩 조심스러운 시도들을 하는 모양새다. 올해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있는 공연계에 일정이 잡힌 멋진 뮤지컬 작품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 자리씩 띄어 앉는 관객석이 너무도 당연해진 지금이다 보니, 티켓이 일찍 매진되는 사례도 많은 듯하다. 공연을 제공하는 입장에서도 큰 손해이지만, 좀 더 많은 관객이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을 보내는 생동감 넘치는 라이브 공연장의 분위기를 한껏 누리지 못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아쉬움이 큰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대가 재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은 충분히 칭찬할 만하다. 코로나 세상에 아직 이런 문화생활은 감히 명함을 내밀 시도조차 못하는 나라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혼자 공연을 보러 간다. 남편이 남자 친구이던 시절부터 둘이 잘 다니곤 했는데, 아이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 사실상 이 모든 문화적 혜택과는 거리를 두며 지내야 했다. 그나마 아이가 조금 자란 후에는 함께 어린이 뮤지컬이라도 즐길 수 있어 그에 만족했던 터였다. (사실 애보다 내가 더 즐거워했던 것 같다)

이제는 아이가 조금 자라나니 잠시간의 해방이 가능해졌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게 너무나도 소중할 따름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감격스러웠던 탓일까. 명성황후 시해 장면 직후 이어지는 마지막 '백성이여 일어나라' 씬에서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며 울컥했다. 너무도 몰입하여 보고 있었나 보다. 갑갑한 코로나 시국에 갇혀만 지내 쌓여온 그 무언가가 한꺼번에 밀려 올라오는 듯, 뭔지 모를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공연장 천장 위를 바라보았다. 세자 역할의 어린이 연기자가 '어이할꼬'를 구슬프게 노래하는 모습이 눈물샘을 자꾸 건들었다. 내가 엄마 사람이 된 이후로는 그냥 이런 상황에선 자제가 되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내 아이의 모습을 투영하게 되기도 하고, 오로지 엄마이기 때문에 경험해버린 복잡 다난한 우주의 모든 감정들이 꽤나 자주 몰아쳐 주체를 못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주말 마티니(matinee) 공연이 끝나고 뿌연 하늘에 해가 아직도 떠있긴 한 건가 싶은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소 포근했던 주말, 근본적으로 코로나라는 족쇄에 갇혀 모두가 답답한 생활을 하는 중이지만, 날씨가 춥지 않으면 그렇게도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니 깨끗한 공기를 원한다면 뼈가 시리는 추위를 반겨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맑은 공기가 있다한들 그게 무슨 소용인가. 세상을 마주하는 우리의 얼굴엔 언제나 마스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사람들 모이는 곳에 가면 당장에라도 바이러스에 걸려들 것처럼 절대 엄두도 못 내고 지난 한 해를 보내버렸는데, 또 막상 공연장을 찾아 나서보니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일도 아닌 듯 느껴진다. 물론 그 누구도 방심해서는 안되지만, 이렇게라도 상황에 적응을 하고 또 그에 맞는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우리는 인간이기에, 마스크 덕에 답답할지언정 그저 우리가 누리던 것들을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냐 싶다. 좀 걷고 싶었지만 뿌연 하늘을 바라보다 얼른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주말에 잠시 마주했던 명성황후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전 01화 문화생활 봇물을 터트려준 <캣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