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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Mar 25. 2021

문화생활 봇물을 터트려준 <캣츠>

얼마 만에 찾는 공연장인가. 여지없이 서 있는 포토월 앞에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선 설레는 사람들의 얼굴, 캐스팅 보드, 박스 오피스, 작품 출연진들의 포스터가 들어선 기둥들, 저마다 각자의 이유로 분주한 그 분위기에 한껏 젖어든다. 그 모든 것이 그저 다 좋았다.

예매한 티켓을 찾아들고 문진표를 작성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이렇게 열을 재고 문진표를 제출하면서까지 이 공연을 볼 수 있게끔 기회를 마련해준 그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그저 고맙다. 혼자 그곳을 찾은 내가 얼마나 들떠있는지 마스크로 얼굴을 반이나 가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머리에 꽃을 꽂기 직전의 여자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공연이 시작되기 약 20분 전, 일찍이 오디토리움에 들어섰다. 아직은 한적한 관객석과 눈앞에 펼쳐진 무대를 바라보니 머리털이 쭈뼛대는 희열마저 느껴진다.

나는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옛 추억에 깊이 빠져들곤 한다. 자유롭게 누비던 백스테이지와 무대 위, 오케스트라 피트, 그 모든 구석구석을 한껏 느끼며 나는 그 거대한 작품 속의 일원이라는 데에 무한한 프라이드를 느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속했던 곳은 뮤지컬과는 다른 장르의 오페라였으나, 본질적으로는 그 구조가 거의 동일하기에 뮤지컬을 대하는 나의 마음 가짐은 상당히 각별하다.






몇 년 전 아이가 정말 아가이던 시절에도 '캣츠'의 내한공연이 한번 있었다. 그때 남편에게 정말 딱 한번 아이를 맡기고 육아 탈출을 하게 해 달라며 티켓을 예약했더랬다. 그런데 아이 키우는 사람은 정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을.. 갑자기 애가 감기라도 걸렸는지 컨디션이 안 좋아 애를 두고 감히 외출을 감행할 상황이 되지 않아 공연 당일 급히 지인에게 반절도 안 되는 값에 티켓을 넘겨야만 했다. 그나마 당일에 가겠다고 나선 임자가 있어 다행이지 비싼 티켓을 허공에 날려 보내지 않은 게 어딘가.

'그래... 내 팔자에 무슨 육아 탈출이며, 이 와중에 무슨 뮤지컬이냐...'

이렇게 신세한탄으로 마무리가 되었던 아쉬운 기억이 있다.


근데 올해 초 이런저런 공연 소식을 뒤적이다 보니 캣츠의 40주년 기념으로 이 코로나 와중에 한국 무대에서 앙코르 공연을 갖는다는 것이다. 어머 이건 봐야 해! 를 외치며 남편에게 통보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봐야겠다고.. 미안하지만 오후 반나절만 아이 데리고 재택근무하며 고생 좀 하소~ 를 외치며 손가락 바쁘게 예약을 마쳤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내린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는 기분도 상쾌했다. 원래 버스 울렁거려서 별로 안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혼자 외출하는 짜릿함을 한껏 만끽하고 싶었다. 참으로 인간은 이상한 것이, 짝꿍이 없던 시절에는 그게 그리도 외롭고 힘들더니만 왜 붙박이로 짝꿍이 생기고 거기다 이뻐 죽겠는 내 새끼까지 생기고 나니 어쩜 그렇게도 혼자이고 싶은 건지.. 단 몇 시간 만이라도 가뿐하게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도 소중하고 좋은 것이다. 누가 나한테 엉기지 않으면 그게 진정한 행복같이 느껴지는 건 어쩌란 말인 건지.. 참으로 인간이란..






막이 오르고 젤리클 송이 시작된다. 짜릿한 기분.. 머리털이 다 서는 것 같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온 공연장 관객석에서 나는 뭔지 모르게 너무 감격스러움을 느껴 잠시 울컥할 뻔했다. 이건 전적으로 애엄마가 된 이후로 생겨난 호르몬의 장난과 수도꼭지의 고장이긴 한데, 여하튼 난 그 정도로 그곳에 앉아있는 내 상황이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 작품이 40년이나 되었다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태 이 작품을 국내 배우들이 무대에 올렸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왜지? 그러고 보니 여태 '캣츠'의 공연은 모두 '내한공연'이었다. 무대를 바라보며 나는 또 바쁘게 분석을 시작한다. 어찌 보면 고치지 못하는 병이지만, 난 그렇게 무대를 꿰뚫어 보고 그 이면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분석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

어떤 뮤지컬 작품이던지 사실 배우들에게는 대단한 체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아하니 고양이의 몸짓을 디테일하게 표현해야 하기에 상당한 유연성이 필요한데, 거기에 단단한 근력이 뒷받침되어주어야만 하는 동작들이 많이 보인다. 게다가 댄스 넘버가 아주 많다. 하나 더 엉뚱한 나의 예측을 더하자면, 딱 달라붙는 타이즈 슈트가 아무리 배우라 할지라도 기피할만하다. 이렇게 종합해보니 이건 그냥 서양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작품이란 생각에 다다른다. 캐스팅 배우들 인터뷰 중에 왜 준비 과정에서 모두가 같이 요가를 했다는 건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무대장치 아래쪽으로 오케스트라 피트가 너무 캄캄하다. 라이브 밴드가 아닌가? 설마 지금 MR 틀어놓고 노래만 맞추는 건가? 머릿속이 바쁘다 못해 어떻게든 살펴보고 싶어 슬쩍슬쩍 엉덩이를 들썩여 보았다. 아무리 내려다봐도 그곳은 깜깜하다. 의심의 눈초리로 1막이 끝났는데 인터미션 중 어디선가 피콜로 소리가 들려온다.

아.. 저 어두운 아래쪽에 오케스트라가 있었구나.. 녹음된 줄로 오해할 만큼 연주는 매끄럽고 완벽했다.






사실 이 작품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하고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꼭 한 번은 라이브 무대를 보고 싶었던 터였다. 40년이나 된 작품이니만큼 실제 아주 클래식하다는 느낌이 강렬했는데, 시놉시스를 보면 사실 스토리는 심플의 극치이다. 고양이들이 1년에 한 번 다 같이 모여 천상에 들어갈 수 있는 단 한 마리의 젤리클 고양이를 선택한다는 내용으로 그곳에 모인 고양이 한 마리 한 마리를 소개하는 것이 극의 전체 내용이다. 솔직히 엄청난 드라마가 들어있는 건 아니다 보니 중간에 다소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눈이 내려오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구간이 있었는데 다시금 눈에 힘을 주며 정신을 챙겨야 했다.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메모리'가 유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만큼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넘버가 도입부에 젤리클 송, 2막에 마법사 고양이 미스터 미스토팰리스의 넘버 정도가 인상 깊게 다가오고 다른 넘버들은 졸음 유발 곡들도 사실 좀 있었다. 2막에서 고양이들 전체가 부르는 메모리 reprise 부분이 있는데, 이 넘버를 한국어 가사로 불러주는 노력과 센스를 발휘해주어 아주 기분 좋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다소 어이없이 여겨지기도 했던 부분은 그렇게도 유명한 메모리 넘버를 부르는 그리자벨라 역할의 비중이 너무도 적다는 것과, 그렇게도 유명한 메모리 넘버를 다소 뜬금없이 등장해서 부른다는 것이었다.


극 자체가 대단한 반전이나 플롯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중간중간 등장하지 않은 채 뭔가 큰 소음과 암울한 느낌 등으로 악당 고양이 '맥캐버티'의 존재를 암시하다가 중간에 아주 잠깐 실제 등장을 한다. 사실 이것만으로 극 전체의 드라마를 만들기에는 다소 힘이 약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전반적으로 고양이들이 선보이는 단체 군무가 아주 볼만하고,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뻗어 나가는 LED 전구 조명과 특수효과 등이 충분한 볼거리를 선사해주긴 했다.


이번 공연 연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이 시작되었는데 듀테로노미 고양이 역을 맡은 브래드 리틀이 퇴장하지 않고 계속 무대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왜 그러나 싶어 계속 지켜보니 어슬렁어슬렁 무대 위를 돌아다니다가 관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고 꼭 안아주는 시늉을 하는 등, 관객석과 소통하는 연출을 보여주었는데, 2막 시작 전에도 일찍 등장하여 무대에 앉아 실제 고양이처럼 털을 고르는 행동 등을 보여주며 깨알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아주 반짝이는 무대 연출이었단 생각이다.


이 작품은 고맙게도 시작 전 무대 촬영이 허용되었는데, 마지막 커튼콜도 친절하게 모두 촬영이 가능했다. 눈으로 꼭꼭 담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렇게 기록하는 게 병이다 싶을 정도이니 마지막을 남길 수 있게 해 준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 아닌가..

뮤지컬 캣츠 커튼콜






지난 한 해 한껏 움츠려 지내다가 올해 캣츠와 함께 공연장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 아이가 좀 자라나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기도 했고, 그간 잊고 지내던 나만의 소중한 취미를 되살리고 싶은 욕심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사실 늘 드는 생각인데, 남의 일은 뭐든지 다 재미있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어떤 일이든 정작 내 일이 되고 나면 즐겁기보다는 힘이 든다. 예전 무대 위아래를 넘나들던 시절엔 나름의 고충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 일이 참으로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왜들 그 멋진 걸 떠나왔냐 묻지만 나도 나름의 구구한 이유와 사연들이 있었더랬다. 원래 남이 하는 일은 그렇게 다 재미있고 신나 보이기만 할 테니 누군들 그 애로사항을 이해할까 싶지만, 지금 분명한 건 직업이었을 때보다 취미가 되니 훨씬 더 즐거운 것만은 확실하다. 지켜보는 재미가 훨씬 더 커졌다.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온전히 무대를 즐길 수 있는 게 너무 행복하다.


이렇게 또 혼자만의 시간을 한껏 즐기고 나니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 생동감 넘치는 무대와 함께했던 몇 시간이 다시금 삶의 활력소를 더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가끔 떠날 필요도 있고, 이렇게 예술을 즐겨야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나는 발걸음도 가볍게 다시금 버스에 올라탔다.

자 이제 집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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