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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an 05. 2022

만혼(晩婚) 예찬론

내 짝은 어디 있을까 고민하는 당신에게

그러니까 꽤나 오래전,

내가 스물아홉의 끝자락에서 서른 살 입문을 앞두고 있던 그때 나는 그렇게 우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 세상에야 코웃음 칠 얘기지만 그땐 마치 서른이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순간 고속도로를 타고 노처녀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라는 어리고도 어이없는 생각을 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 친구조차도 없었지만, 절대 평생을 비혼으로 살겠다는 다짐 따위는 요만큼도 없는 철저한 "결혼 주의자" 였었다. 과거형으로 썼으니 마치 지금은 아닌 것처럼 들릴 수 있겠으나, 지금은 빼도 박도 못하는 유부녀의 신분을 입었으니 일단 여전히 결혼 주의자임에 대해 이제부터 늘어놓으려는 참이다.




요즘은 잘 사용하지도 않는 그 무엄한 단어 '노처녀'가 되길 그리도 두려워했으면서 정확히 서른 살에 또다시 유학을 감행했으니 이 또한 참으로 이율배반(?)적이긴 하다. 어찌 보면 그저 대책 없이 무모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는 나의 노력만으로 마음대로 이뤄낼 수 없는 일이란 걸 진즉에 깨달은 현명한 판단의 결과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드라마에나 나오는 유학생 러브 스토리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서른두 살의 조금 더 나이가 든 '골드 미스'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고, 나름 폼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감히 '비혼'을 선언하지는 못하지만 왠지 모르게 혼자서도 충분히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들어앉았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어디 한결같기가 그리 쉽던가. 직장생활에 치이고 찌들어 갈수록 가득했던 자신감은 움츠러들어 갔고, '시집'을 '취집'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는 아니었으나 어찌 됐든 이 험난한 인생을 나와 함께 이고 지고 걸어가 줄 짝꿍이 필요하다는 니즈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중학교 때 친구 한 명이 무조건 출산은 서른 다섯 이전에 해야 한다며 30대 입문과 동시에 결혼하기를 절체절명의 미션으로 여기며 기어이 시집을 갔는데, 이미 서른다섯의 점을 찍은 나를 두고 아버지는 내심 가만 두면 '큰일'나겠단 생각이 드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온갖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소개받을 사람을 조달(?)하셨고, 찌든 직장인의 황금 같은 매 주말은 '선 보는 날'이 되어 버렸다.


주말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까에 대한 기대가 아닌 실망 방지 패치 장착의 날들이 이어졌다. 누군가에겐 내가 폭탄이었을 테고, 누군가들은 내게 엄청난 폭탄들이기도 했고, 또 누군가들은 손에 닿지 않을 그림의 떡이 되기도 했다. 멘털이 탈탈 털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인생이란 게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 그리도 간절히 바라고 기다릴 땐 기척도 없던 일이,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라 폭발을 일으킨 후에야 '이제 때가 왔구나'하는 것 같다. 다시는 소개 안 받을 테니 나를 좀 가만 놔두시라고 아버지께 한바탕 성질을 부린 후 고요한 장기 비수기 끝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본론에 다다르기 위한 서두가 너무도 길었다.

자, 그래서... 어찌 보면 이제 '포기'할 때도 됐지 싶을 여자 나이 서른여덟에 이미 40대에 진입했던 남편과 결혼이란 걸 하게 된 우리 부부는 지금도 가끔씩 늦은 결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예찬론답게 좋은 점부터 이야기해보겠다. 일단 나이가 많은 상태에서 가정을 이루다 보니, 내가 결혼으로 인해 하고 싶은 일을 못해봤다는 건 하나도 없다. 충분히 경험을 쌓고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본 후에 이제 건 결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었다는 데에 두 사람의 의견이 모아진다. 내가 결혼하느라 아쉽게 못해본 게 없으니 딱히 다른 생각을 떠올릴게 그다지 없는 편이다.


지긋이 챙겨 먹은 나이 덕분인가, 상대를 여유롭게 볼 수 있었다는 상당한 장점이 있었다. 보통 결혼하면 신혼초에 서로 어긋나는 점들이 자꾸 발견되고 그래서 다툼이 잦아진다고들 하는데, 사실상 우리 부부는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다르면 다른 대로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왜 화장실 변기 시트를 올렸네 내렸네 하면서 싸우는지는 사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올라가 있으면 내리면 되고, 내려가 있으면 올리면 되는 문제 아니던가. 모르긴 몰라도 분명 삶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나이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 나이 되도록 돈을 하나도 안 쓰고 다 모았더라면 정말 대단한 '자금력'을 가지고 신혼을 시작할 수 있었겠지만, 젊은 날 나 하나 간수하며 지내다 보니 사실 씀씀이도 자유로웠던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어쨌거나 그래도 벌이의 일정 부분을 모아둔 덕에 대단히 여유로운 건 몰라도 쪼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새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감사하게도 남편이나 나나 기특하게 생각은 깨어 있던 덕에 그다지 결혼 절차에 많은 돈을 때려 넣지 않았다는 점이 지금 돌아봐도 참 감사한 일이다. 결혼식날에 대해 유일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면 버진로드에서 바라봤던 남편의 모습이 잠시 떠오를 뿐, 만일 그 절차를 모두 다시 진행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남편도 나도 한마디로 '그냥 혼인신고하고 살자'라고 답을 모았다.




그렇다고 모두 좋은 점만 있을까. 유일한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만일 두 사람만 오붓하게 한 평생을 살 작정이라면 전혀 해당사항이 없지만, 우리처럼 그래도 아이는 꼭 있어야지 하는 커플이라면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불혹의 시대를 출산과 함께 열었는데, 요즘은 나이를 불문하고 난임인 경우가 비일비재 하지만, 그런 와중에 나처럼 나이까지 많으면 더더구나 쉽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어렵고 귀하게 아이를 얻었는데 늦은 나이 덕에 육아를 감당하기 위한 체력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저질이었다.


이제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니 그런 걱정은 안 할 시기가 왔지만, 그야말로 육아 전쟁 당시 나의 몰골은 '가관'이었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다고 아우성인 그 '육아'를 40대 (노) 부부가 함께 전쟁을 치렀으니, 그만큼 깊어진 '전우애'는 그야말로 보너스다. 젊고 힘이 팔팔할 때 사랑스러운 자녀를 낳아 일찍 길러내고 자유로운 인생 후반을 일찍 맞이하는 것이 백배 천배 낫다고 우리는 입을 모은다. (물론 그래도 아이는 사랑스럽고 육아는 할 수 있다. 힘이 들뿐 그걸로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이제 새롭게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어린 딸아이를 보며 드는 유일한 걱정이 있다. 아이가 충분히 본인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가 건강하게 잘 살아 있어야 할 텐데 하는 웃픈 염려이다. 아무리 100세 시대가 되었다지만 그 보편성이 꼭 내 이야기가 되란 법이 있던가. 60대에 병환으로 돌아가신 시아버님과 친정 엄마 생각을 하면 우리 부부는 아이를 생각할 때 그리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며 건강의 중요성이란 백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이제는 나의 건강과 안위가 단순히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의미로 내 가족을 위해 반드시 건강해야만 하는, 비장한 각오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2022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지 다섯 번째 날이다. 새삼 해를 또 넘기고 나니 한 때 혼자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끙끙 앓던 언젠가가 떠올라 만혼(晩婚)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실 결혼에 있어 어느 '때'가 적정하다고 정해두는 건 요즘 세상에 그다지 적정하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언제 어디서 나의 인연이 나타날지 모르니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게을리하지 말고, 나이에 쫓겨 '아무나' 선택하는 엄중한 과오를 저지르지 말기를 바라며, 자신감을 놓지 말고 본인을 한껏 사랑해주길 바란다. 결국 진심으로 스스로를 아끼는 사람만이 풍기는 매력이란 것이 분명 있으며, 그걸 알아보는 내 짝이 어디서 불쑥 나타날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너무 뻔한 얘기란 걸 잘 안다. 그러나 이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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