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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Aug 29. 2021

하늘에 버스가 날아다니는 나라 미국

  미국 유학시절 나름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기 짝이 없는 그 거대한 나라에서 좌충우돌 겪은 시행착오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공항에서의 경험만큼 기가 막힌 사연들이 또 없지 싶다.

미국은 땅덩이가 어마어마하게 큰 만큼 사실상 우리나라처럼 촘촘하고 잘 짜인 대중 교통망을 모든 곳에서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야말로 그물처럼 얽히고설켜 사방을 가로지르는 교통수단이 있으니, 바로 국내선 비행기 네트워크다.


동부에 있던 나는 방학이면 서부 외갓집에 가느라 국내선을 이용하기도 했고, 각종 잡 콘퍼런스(Job Conference)에 참석하기 위해, 또는 기업 면접을 위해 국내선을 이용해 다른 도시로 이동할 일이 아쉽잖게 여러 차례 있었다.

국내선은 국제선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를 비행하는데, 한 번은 창밖을 내다보고 난생처음 접하는 광경에 혼자 눈 크기가 확장됐던 기억이 난다.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로부터 도대체 몇 미터쯤이나 떨어져 있는 건지 도저히 가늠이 안 되는 하늘 한 복판에는 사방으로 긴 꼬리 자국을 남기며 쌩쌩 날아가고 있는 국내선 비행기가 수도 없이 많은 것이었다. 멀리 보이는 작은 비행기들이 사방을 향해 쉴 새 없이 날아가는 모습에도 놀랐지만, 빠른 줄은 알았으나 그렇게 빠를 줄은 몰랐던 비행기의 속도를 보고 한번 더 놀랐었다.

물론 그렇게 수많은 비행기가 하늘길을 가로지르고 다니자니 당연히 막중한 책임의 관제탑 컨트롤이 있는 거겠지만, 진짜 그렇게 정신없이 날아가는 비행기들이 단 한대도 같은 고도상에 놓이지 않게끔 한다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겠거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안태워주나요?


그래도 해외에서 오래 거주했던 1인으로 사실 비행기 아쉽게 많이 타봤지만, 이런 일은 미국에서 난생처음 겪어봤다. 몇 년 전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에서 인권을 무시한 인종차별 문제로 아주 시끄러운 일이 발생했었는데, 바로 '오버 부킹'에 관한 일이다. 당시 오버부킹으로 인해 이미 탑승 중에 있던 동양인 의사를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폭력을 행사하며 비행기에서 끌어내려 상당한 논란 일으킨 사건이 발생했었다.


나는 아마도 방학을 맞아 외갓집으로 향하던 길이었을게다. 보통 국제선 탑승 시 넉넉잡고 3시간 전에는 꼭 공항에 도달해야만 하는 습관 때문에, 국내선이라고 크게 다른 규칙을 적용하지 않았던 나는 그래도 시간적으로 아주 많이 여유를 두고 카운터에 당도했다. 체크인을 하려는데 쌀쌀맞기 짝이 없는 항공사 직원이 쏘리 하지만 자리가 다 찼으니 다음 비행기를 타라는 것이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당연히 이유를 따져 물었으나, 딱히 속 시원한 답변은 얻지 못했다. 그냥 자리가 다 차서 어쩔 수 없다는 답이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있던 동부지역은 사실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면전에서 동양인을 무시하는 태도가 분명하던 곳이었다. 여러 차례 물어봐야 어차피 답정너, 자리가 없으니 다음 비행기를 타야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옵션이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비행기를 한번 타보면, 우리나라 공항 직원들과 항공사 승무원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새삼 감사함을 크게 느끼게 될 것이다)


단순히 다음 비행기를 타면 끝나는 문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있던 도시는 좀 작은 규모이다 보니 주변 큰 도시의 허브(Hub) 공항으로 가서 갈아타야만 원하는 도시에 갈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칫 연결편의 탑승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조급함에 이러한 사정을 '불친절한' 직원에게 설명하니 전산을 조회해보고는 문제없이 탈 수 있을 테니 걱정 말란다. 말하자면, 다음 비행기를 타고 도착과 동시에 바로 튕겨나가 다음 비행기를 향해 눈썹을 휘날리며 뛰라는 의미였다. 네네 누구 말씀이라고 토를 달겠습니까. 그저 알았다 하고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오버부킹이란 취소와 노쇼(No show)에 대비하여 원래 좌석수보다 10% 정도 초과 예약을 받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100% 좌석이 채워졌을 때 발생하는 이러한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들의 대책이란 그저 당당하게 승객에게 자리 없음을 통보하고 다음 비행기 좌석을 내주는 친절(?)을 베푸는 것이 고작이다.

다른 나라 공항에선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내 경험 내에서 이런 일은 그저 미국에서나 가능한 이상한 현상이라고 할 수밖에...




내 이름은 도대체 언제 불러주나...


한 번은 시카고 허브 공항에서 생긴 일이다.(2007년경) 앞서가는 미쿡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한 내가 모질이라 그런 건지 뭔지,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캐리어를 끌고 체크인 카운터로 갔다.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카운터 직원들이 캐리어에 붙일 태그(tag)를 잔뜩 들고 계속 사람들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어떤 시스템인지는 당최 모르겠으나 아마도 나도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면 내 이름을 불러 주려나 보다 생각하고 기다렸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 이름은 불러주지 않는 게 영 이상하다.

원래 줄을 서서 기다리면 체크인 카운터에 차례대로 가서 절차를 거쳐 보딩패스를 받는 것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프로세스 아니던가? 그런데 도대체 왜 여기선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으며, 내 이름은 왜 안 불러주고 있단 말인가...


하도 이상해 주변에 있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저기 한편에 줄줄이 서 있는 자동 체크인 시스템에서 각자 알아서 체크인을 해야만 한단다. 그런 후에 카운터 직원들은 짐칸에 태울 짐에 태그를 붙이는 작업을 위해 호명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원참, 그럼 그 내용을 친절하게 안내판 좀 세워 놓으면 어디가 덧난다더냐. 영문도 모르고 기다리던 나는 너무 놀라 뒤늦게 자동화 기계에 뛰어갔건만, 이미 체크인 타임에 늦어 버렸단다. 그래서 나는 어이없이 비행기를 놓쳐 버렸다. (한숨)




한바탕의 소동 끝에 다음 비행기에 자리를 얻었는데, LA 공항까지 가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다. 내가 원래 타려고 했던 비행기는 또 다른 도시로 향하는 비행 편이었는데, 어이없이 놓치는 바람에 내 예약이 전체가 바뀌게 된 것이다. 다음에 타게 된 비행기는 기억도 나지 않는 또 다른 어떤 도시 향는 비행기였다.

(동쪽에서 서쪽 한번 가는데 비행기를 두 세번 갈아타야 하는 나라라는 게 새삼 놀랍다)


이런 예상치 못한 변경 사항이 종종 발생하다 보니, 국내선 이용에 있어 체크인 캐리어가 분실되는 사례는 너무도 빈번하다. 나의 예약은 갑자기 바뀌었지만 내 짐은 분명 애초의 예약대로 다른 비행기에 올랐을 테니 말이다. 이 사실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던 나는 천신만고 끝에 LA에 도착했을 때 내 짐은 그곳에 오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한숨)

외갓집에 머무를 예정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어디 호텔에라도 투숙했더라면 내 짐이 하나도 없이 그 하루를 어떻게 보냈어야 했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 어쨌든 짐 분실이 그다지 큰일도 아니라는 듯 분실 접수를 시키니 다음날 현관문 앞에 누군가가 친절하게(??) 캐리어를 가져다 놓고 갔다.


그런 대 혼란의 끝에 평화로운 방학 기간을 보내고 다시 동쪽으로 돌아갈 날이 되었다.


아차, 내가 미국 국내선을 타야 한다는 사실을 몇 주간 잊고 있었구나..
그래 여기 미국이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그게 이상한 거지!!


시간에 맞춰 체크인을 하러 가니, 내 예약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단다. 올 때 비행기를 본의 아니게(?) 놓쳤던 그 한심한 사건으로 인해 내 예약이 변경되면서 돌아가는 비행 편 예약은 아예 캔슬이 됐단다. 다시 예약을 했었어야지~ 라며 그걸 왜 모르냐는 듯 되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갈 때의 예약이 변경되었다고 해서 돌아갈 때 비행 편 예약이 홀라당 취소가 돼버릴 거란 사실은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다른 비행사 항공편으로 옮겨 탄 것도 아니고, 자기네 항공사 다른 비행 편을 이용했을 뿐인데, 돌아가는 표까지 모두 취소된다고?  상황이 납득이 안 가는 나의 공황상태는 차치하고, 로마에 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할 뿐, 당최 체계적이지 않고 뭔가가 다 주먹구구 같아 보이는 미국 비행 시스템에 이의를 가져봐야 나는 그저 그 문화를 흡수하지 못한 이방인에 불과했다.




자고로 사람은 발이 땅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하늘에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수도 없이 많은 비행기를 보고 놀란 점을 돌이켜 본다면, 그 많은 비행기들이 한치의 시간 오차도 없이 딱딱 맞춰 도착하고 출발하고 가 사실상 어느 정도는 불가하다는 것을 그냥 알 수 있다.

국내선 이용 시 비행기 연착은 그리 낯선일이 아니었다. 그저 숨 쉬며 공기를 마시듯 일어나는 일상 다반사였고, 미국인들은 그것을 그러려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동쪽에서 서쪽 한번 가는데 비행기를 두 번은 갈아타는 게 정상인 나라에서, 늦어지는 비행기 때문에 연결 편과의 시간이 안 맞을까 봐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일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세상에 공항은 그렇게도 나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곳이었다. (미국 국내선 공항 한정)


한 번은 학회 참석 차 타 도시에 다녀왔는데, 그때 마침 우리 학교 동기들이 같은 비행기에 잔뜩 탑승 중이었다. 저녁 8시인가에 착륙을 했어야 하는데 기상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것이다. 비행기는 내리지 못하고 공항이 내려다 보이는 하늘에서 같은 궤도를 그리며 뱅뱅 돌고 또 돌았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뺑뺑이 타는 거도 안 좋아하던 나인데, 세상에 하늘에서 이렇게 뱅뱅 돌아야 하는 상황이 왜 나에게!!  과연 무사히 땅에 발을 붙일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도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돌다가 기름 다 떨어지면 어쩔 거냐며!!

물론 머릿속엔 갖은 영화 장면이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천만 다행히도 비행기는 정확히 한 시간을 하늘에서 돌다가 무사히 땅으로 내려왔다. 자고로 사람은 발이 땅바닥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지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이 어이없는 에피소드들이지만, 그래도 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에서 서서히 이동 중이었는데, 그렇게나 많은 국내선이 이동하는 나라의 활주로는 어떨까? 당연히 퇴근 시간 러시 아워(Rush Hour)를 방불케 할 만큼 많은 비행기들이 줄을 서서 이륙을 기다린다. 그러다 간혹 착륙 활주로를 가로질러 지나가기도 했는데,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창밖을 보니 하늘에서 비행기가 줄줄이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내 옆구리에 와서 들이받을 듯이, 떠있는 비행기를 그렇게까지 가까이에서 본 일이 있었던가 싶게 내가 탄 비행기의 옆구리 방향에서 끊임없이 착륙하는 비행기들은 정말 장관이었다. 석양빛과 어우러지는 연속된 비행기의 헤드라이트 불빛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 장식처럼 아름답기까지 했다. 물론 그 순간, 저 비행기가 옆구리를 들이받진 않겠지 내심 걱정하며 다이하드 4 영화 장면을 떠올렸던 건 안 비밀이다. (비행기에 불이 붙는 장면이 너무 생생하게 남아서.......)





유학 시절 이런 일련의 공항 사건들만으로도 충분히 질려서(?) 소위 미제(美製) 영향을 잔뜩 받고 자란 나조차도 미국이란 나라에 학을 떼고 돌아왔다. 누가 와서 살라고도 안 했지만, 내 결코 그 나라에 환상을 품지 않겠노라 다짐까지 했으니 말이다.


여행을 떠날 때의 공항은 그저 설렘이 가득한 장소이다. 친절한 공항 직원들과 눈길을 끄는 멋진 제복에 상냥한 우리나라 승무원 언니들은 그저 모든 비행의 경험을 한층 더 유쾌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평을 늘어놓고 진상을 피우는 승객들도 많다던데, 그런 분들 정말 진심으로 미국에 가서 국내선 한번 이용해보셔야 할 것이다.(벌칙으로!)


지금도 돌이켜보면 이를 꽉 물게 되는 웃지 못할 미국 공항에서의 사건들인데, 그 조차도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나니 어쨌든 이렇게 또 지난 세월의 무용담이 되어주었다. 원래 누구나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되기 마련인데, 다양한 해외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라 한다면 우리나라 공항 서비스는 그야말로 최고라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금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좀 가봤으면 좋겠다. 여행이 주는 설렘을 언제쯤 맛볼 수 있으려나..        





**사진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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