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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Aug 18. 2021

그때를 아십니까

멀티플렉스 세대는 모를 단관 영화관에서의 플렉스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 조차도 맘 놓고 못 간 지가 한참이다. 예전 젊어서 한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빠지지 않고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영화관 아닐까 싶다. 사실 딱히 거창한 계획이 없을 때도, 아님 거창한 계획을 세웠을 때도, 언제나 '뭐할까' 리스트에 '영화관'은 빠지지 않고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멀티플렉스 형태의 영화관이 자리하기 시작한 게 아마도 90년대 말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92년에 한국을 떠나기 전, 중학교 시절만 해도 영화관이라 하면 그저 대한극장 또는 피카디리, 이렇게 단관 형태의 영화관들 뿐이었다. 그렇기에 영화는 '큰 맘'을 먹어야 보러 가는 것이었고 그 자체로 대단한 행사였더랬다.


영화관 벽에는 지금처럼 디지털 프린터로 멋지게 뽑혀 나온 영화 포스터는커녕, 포스터물감으로 일일이 그림을 그려 붙여 놨었는데 실제 주인공들과 닮은 듯 아닌 듯, 그래도 상당히 흡사하게 잘들 그리는 찐 실력자들이 많으셨던 것 같다.


그러던 시절 미국 외가에 다녀오셨던 엄마 말씀이, 미국은 희한하게도 영화관이 여러 개가 한 건물에 있어 영화를 보다 아닐 말로 지루하면 옆에 상영관에 들어가 다른 영화를 봐도 무방하더라는 얘기를 해주셨었는데, 그러한 멀티플렉스 형태의 영화관이란 말로만 들어서는 머릿속으로는 잘 그려지지 않던 막연한 모습이었다.




과도기 시절 우리나라엔 그리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존재하지 않았던 탓도 있겠으나, 우리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도 영화 보는 걸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제대로 어린 시절을 '기억'하기 시작하는 그 언젠가부터 가능만 하다면 엄마는 오빠와 나를 데리고 영화관에 가시곤 했다. 우리에게 좋은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일념도 물론 있으셨겠으나, 본인의 갈급함을 채우는 목적도 상당히 컸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영화를 보러 가고는 싶어도 줄줄이 달린 두 녀석들을 어디에 맡길 수도 없으니, 그냥 꼬마들을 주렁주렁 달고 영화관으로 향하는 수밖에... (아이를 키워보니 그 마음을 잘 알게 됐다)


내가 아직도 그 컴컴한 영화관에서 바라봤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는 영화가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과 '십계'이다.

나는 영화를 찾아다니며 볼 정도의 마니아는 아닌데, 그러다 보니 한번 본 영화는 다시 안보는(?) 습성이 있다. 그런 와중에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유일한 영화가 있으니 그건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음악이 워낙 좋기도 하지만, 어쩜 그렇게 여러 번을 봐도 재미있고 설레는 건지..(폰 트랩 대령 역할의 故크리스토퍼 플러머 아저씨가 너무 멋져서!)

크리스토퍼 플러머 아저씨는 지난해 고인이 되셨지만 그렇게 영화 속에 멋진 젊은 시절을 '박제' 해놓으셨으니, 영화배우들은 그런 면에선 참 좋겠단 생각도 든다.

역시 이 영화가 질리지 않는 이유는 명불허전의 음악들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데, 지금껏 영화보다는 뮤지컬에 더 열광하며 쫒아다니는 내 취향을 생각하면 왜 그리 여러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지 이유가 분명해진다.


'십계'를 보러 갔을 때도 나는 불과 유치원생 정도밖에 안됐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에 그 영화가 엄청나게 길어서 심지어 중간에 휴식 시간도 있었다. 영화 중간에 엄마가 아마도 무언가를 사러 매점에 잠시 가셨는데, 어떤 아저씨가 출입문을 잠그는 것을 보고 나는 엄마가 자리에 못 돌아올까 봐 뒤를 돌아보며 안절부절못하던 생각이 난다. 물론 엄마는 무사히 자리로 돌아오셨지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내가 느꼈던 불안감은 마치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만큼의 엄청나고 큰 일이었던 것 같다. (옆에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있는 아무 생각 없는 오빠가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 시절엔 영화 등급 제한을 엄격히 안 했던 걸까? 아니면 새나라의 어린이들은 충분히 성숙하니 그 정도쯤은 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걸까. 그도 아니면 아예 제대로 된 체계라는 게 없었던 걸까.

내가 기억하는 중 지금껏 가장 황당해하는 영화 두 가지가 있는데, 한 번은 아빠가 오빠와 나를 데리고 가셨고, 다른 한 번은 엄마가 나만 데리고 영화관을 가셨다.


아빠가 우리를 데리고 보러 간 영화는 'U-보트' 였는데, 지금까지도 다 때려 부수는 전쟁 영화를 보면 너무도 재미있다 하시는 못 말리는 우리 아지는 기어코 그 영화를 보겠다는 일념 하에 아무 생각 없는 어린이 둘을 데리고 영화관 나들이를 감행하셨다. 사실 나는 단 한 장면도 제대로 보지 않고 지겨움으로 몸을 빌빌 꼬며 몸부림을 쳤던 기억만 생생하다. 뭔지는 몰라도 유보트가 잠수함인 것만은 확실히 기억할 뿐...


엄마가 나를 대동하고 보러 가셨던 영화는 바로 '인도로 가는 길'이었다. 그래도 이건 내가 좀 컸을때여서 대충 내용 기억이 나는데, 영국 식민지 시대 영국 귀부인이 인도에 가서 인도인과 삘릴리 삐리리 뭐 그렇고 그렇단 이야기였다. 당시 내 정신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였는데, 천만 다행히도 당시 엄격했던 심의 덕분(?)에 내가 못볼꼴이 등장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등급 관리를 잘 안 했던 이유가 바로 이 장면 심의로 다 편집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나마 우리 가족이 완전체 4인으로 영화관 나들이를 했던 기억이 생생한 작품은 바로 '슈퍼맨'이다.

슈퍼맨을 미국 방송(당시 AFKN)에서 만화로나 간간히 접할 수 있었는데, 원더우먼도 나오고 배트맨도 나오는 섞어찌개판 카툰을 접했던 로서는 슈퍼맨 아저씨가 뭔지 알 수 없는 우주정신세계를 넘나드는 스토리 자체가 이해 불가였고, 다만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면 나이아가라 폭포에 추락하는 아이를 슈퍼맨 아저씨가 날아가 구해줬다는 것뿐이다.




이렇게 그 시절 영화관에서 봤던 장면들을 조각조각 떠올리다 보니, 이것도 추억이구나 싶지만 이다음에 내 아이 역시 열심히 데리고 다녔던 영화관이며 뮤지컬 공연을 띄엄띄엄 기억이나 할까 싶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헛웃음)

그렇지만, 내 아이도 지금의 나처럼 그 어떤 한 장면과 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엄마 아빠와의 추억을 이야기하게 될 테니, 아이가 기억을 할 수 있든 없든 좋은 시간들을 많이 만들어줘야겠단 생각이 든다.

다만,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한 세상 탓을 하며 집안에 갇혀 지내는 날이 허다하게 많아졌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겠지.. 영화관 가서 캐러멜 팝콘과 치즈 팝콘을 반반으로 사서 단짠단짠 즐겁게 와그작거리며 영화 한 편 재미나게 보고 싶다.





* 이미지 출처: 구글 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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