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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an 17. 2022

뭘 좀 멕이는 거지..

진정한 리더십이란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배우고 싶은 선배님들도 계신가 하면, 도대체 뭔가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사실상 도처에 깔려 있다는 건 새삼 들춰내지 않아도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리라 믿는다. 무엇보다 조직 생활을 하며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며 배우고자 했던 부분은 출중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선배님들이었다.


대한민국 도처에는 어디를 가나 '진정한' 리더십이 실종이라며 푸념을 하곤 하는데, 그게 정말 미국 사람들처럼 책으로도 읽히고 학과정으로도 가르치지 않으니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나대는 것을 터부시 하는 문화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리더십이란 나댐의 미덕이 아니라, 진정으로 배가 옳은 방향을 향해 순항할 수 있도록 판단하고 리드하는 훌륭한 사공의 스킬을 뜻함이니, 아마도 키스를 글로 배우듯 아직까지는 리더십을 글로라도 배우려는 자들이 많지 않아서인가 싶은 뜬금없는 의문이 생긴다.




지금까지도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는 팀장님이 한 분 계시다. 물론 여러 팀장님들거쳐가며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넘치는 카리스마로 저런 게 바로 리더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해주셨던 분은 '무섭다'라고 소문이 자자하던 K부장님이셨다.


앞서 우리 팀을 이끌고 계시던 팀장님은 자상한 옆집 아저씨 같았다. 그렇다고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 하지 않으시고 넉넉한 웃음 가운데에도 끊을 건 끊고 담을 건 담아가는, 마치 프렌디(friend+daddy) 같은 대장의 이미지였다고나 할까. 그러나 회사가 돌아가는 생리를 그 누군들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으니 어떤 사유 때문인지 어느 날 우리 팀의 수장이 교체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저 수긍하고 따르는 수밖에...

 

그날부터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죄다 이런 거였다. 너네 팀장으로 오시는 K부장님 엄청 무섭다더라.. 아주 얄짤 없단다.. 큰일이다 너네 다 끝장이다.. 그분이 한때 성질 더러운 걸로는 그렇게도 악명 높았다더라.. 너네 이제 어떡할래.. 등등등.. 긴장의 연속이었다.


실제 처음 K부장님이 우리 팀으로 오셨던 날, 위에 차장님들 모두 바짝 각을 세우시는 모습이 마치 죽을 때까지 나는 구경 못해볼 군대에 온 줄 알았다. 오며 가며 얼굴은 뵀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진짜 한 인상하는 거 같다. 아니 실제 생각보다 더 인상이 무서운 분 같아 보였다. 덜덜덜..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팀장님은 단 한 번도 '버럭'의 비읍스러운 소리도 내지 않으셨고, 우리는 그저 각 잡고 고요히 할 일들을 할 뿐이었다. 폭풍전야인가.. 뭐지.. 들려오던 소문에 의하면 뭔가 한바탕 난리(?)가 날 법도 한데 불안하게 왜 조용하지..


그러나 확실하게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었다. 새로운 팀장님이 오신 날부터 우리의 점심 식사가 너무도 화려해졌다는 것이다. 직장인 하루의 꽃은 단연코 '점심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진대, 이 점심의 메뉴가 중간 단계 없이 단번에 퀀텀 점프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다.

부장님이 같이 점심 먹자고 할까 봐 미리 약속을 정한다거나 운동해야 한다며 점심시간에 도망을 가는 일 따위는 없었다. 행여 부장님이 다른 윗분들과 점심 약속이라도 생길까 봐 노심초사할 판이었다.

"밥 먹으러 가자" 이 한마디면 모두가 앞다퉈 벌떡 일어나 반기는 상황이 됐으니, 바로 점심 식사 메뉴가 한우고기, 한정식, 고급 이탈리안 등등.. 지하식당 식판 밥 정도는 감히 명함도 들이밀 수 없는 고급 메뉴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다.


무슨 식충이들도 아니고 좀 비싼 밥 사주신다고 이렇게까지 굽실댈게 뭐가 있나 싶을 수도 있지만, 점심시간에 한우 한번 구워보면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팀 예산으로 인심 좀 쓰는 거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하냐 할 수도 있지만, 모르긴 몰라도 팀장님 사비가 상당히 많이 추가 투입되고 있다는 건 예산 담당 차장님의 귀띔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이후 난 다른 팀에서 팀 비용을 사비처럼 털어 쓰시던 팀장님도 경험해봤으니 어쨌거나 K부장님이 팀원들을 위해 온전히 베풀어 냈다는 것만큼은 정말 감사할 일이었다.


밥의 리더십


2005년에 개봉되었던 '웰컴 투 동막골'에 나왔던 명대사가 있다. 인민군 장교 리수화가 촌장님께 사람들이 잘 따르게 하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주저 없이 딱 한마디 내뱉는다.

"뭘 좀 이는 거지"

역시 사람은 누구나 등 따시고 배부르면 만사 오케이라는 건 불변의 진리 아니겠나.


그날도 여지없이 맛있는 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며 우리는 앞 다퉈 훌륭한 점심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 팀장님께서 미소 지으시며 바로 그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난다.

"뭘 잘 먹여놔야 일도 부려먹지.."

잘만 먹여놓으면 금세 신나서 열심히 일하는 어쩔 도리 없는 월급 노예 1인이었으나, 어차피 해야 할 일 잘 못 얻어먹고 더불어 욕까지 얻어먹느니 기왕이면 배부른 돼지로 행복하게 일하니 왜 아니 흐뭇할까..


무섭다고 소문만 무성하던 K부장님은 지내며 보니 그 누구보다 위트 있고 고급진 유머감각의 소유자였으며,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꾸짖으시지만 잘한 일에 대해선 조용히 뭘 좀 맥여주시던, 그야말로 실제 당근을 입에 물려주시던 츤데레였다.

이태리에서 오래 주재하셨던 터라 자분자분 알려주시는 와인 이야기며 이태리의 패션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어졌다. 뭐 한때 부장님도 젊어 혈기왕성할 때야 한 성질 좀 하셨던 모양인데, 어쨌든 '더러운 성질'이라는 소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교양과 소양 가득한 신사분이셨다.


약간의 TMI를 더하자면 우리 회사는 패션회사였던 관계로 남자분들 옷차림이 정말 거의 백화점 디스플레이 수준이었다. 아마 어느 회사에서든 가슴팍에 행커치프까지 꽂은 슈트에 스카프를 매거나, 컬러 팬츠에 세련된 프레피룩을 입는 남자 직원들을 보기는 아마 쉽지 않으리라.. 그런 상황이니 여자들은 말해 뭐하랴. 회사 다닐 때 가장 소비의 비중이 높았던 아이템은 단연코 '옷'이었는데, 그나마 직원 할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버는 족족이 다 옷이 되어 날아갔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시간이 많이 흐르면 세월에 퇴색되고 종국엔 좋았던 기억만 남는 법인데, 그 시절 힘들었던 부분들은 흐릿해지고 대부분은 아름답게 기억에 고이 저장된 듯하다. 하여간 넘치는 카리스마와 더불어 잘 먹이는 리더십을 발휘해주셨던 그때 그날의 팀장님을 기억하며 참된 리더의 모습을 되새겨 본다.


반드시 그렇게 금전적으로 퍼 부우며 잘 먹여야만 좋은 리더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현재에도 내가 생각하고 적용해볼 만한 적정한 교훈으로 남겨졌다. 결국 좋은 리더란 배려와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를 따르라 악을 써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게끔 만드는 마음 씀씀이, 바로 그거 말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기본기를 갖춘 좋은 리더들이 더 많아지기만을 그저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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