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 그것도 아주 무섭게 말이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1학년 때부터 동네 친구들과 함께 등교를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나처럼 매일 아침 아이와 학교에 다녀주는 부모님은 안 계셨던 시절이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학교길에 몹쓸 일을 당한 초등학교 여학생의 뉴스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무리 익숙한 길이라도 아이 혼자 내보내는 게 영 불안해 어쩔 수 없이 부모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야만 한다. 심지어 집 앞 놀이터조차도 혼자 내보내질 못한다. 그래서 놀이터 벤치에는 늘 보호자가 함께 나와 앉아 있어서 본의 아니게 자리 쟁탈 눈치전이 대단할 때도 있다.
이렇게 아이들의 세계에 어른이 깊숙이 관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내게 정말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고민이 있는데, 바로 아이들의 '친구 관계'이다. 감사하게도 딸아이가 워낙 변죽이 좋아 학교를 가는 첫날부터 친구가 생겼다며 좋아했기에 딱히 아이의 인간관계에 관해서는 내가 우려할 부분이 전혀 없다. 반 친구를 넘어 이젠 다른 반 친구들까지 사귀어 가며 온 동네방네 반장 노릇을 다 하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아이의 좋은 사회성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이 그렇던가. 당연히 사귐이 어렵고 소극적인 아이들도 상당수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 엄마들이 나서서 친구들 만들어주려는 노력들이 대단하다.
아이가 친하게 지내기에 인사하며 지내게 된 어머님들과 전화번호 교환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반 아이들 엄마 단체 카톡방에 들어가 있게 됐다. 많은 대화가 오가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궁금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니 어쨌든 필요한 부분이란 생각은 든다. 그런데, 아이들의 교우 관계에 본인을 적극 대입시킨 몇몇 어머니들이 반 모임을 결성하기도 하고, 심지어 벌써 같이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도 있단다.
나는 이 부분에서 참 많은 고민이 생긴다.
두루두루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여행을 함께 갈 정도의 관계라면 그저 두루두루 아는 정도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내게도 여행을 제안해주신 어머님이 계셨는데 천만 다행히도(?) 개인 스케줄이 잡혀 있어 정중히 거절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교우 관계를 빌미로 뭔가 엄마들의 커뮤니티 형성이 목적인 건가, 아니면 정말 아이들을 위해 나는 조금 불편해도 감수해야 하는 엄마의 숙제라고들 받아들이는 건가. 그리고 언제부터 아이의 친구 관계가 엄마의 과제가 되었단 말인가?
우리 엄마는 나를 정말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셨다. 어릴 땐 그저 나를 방치하는 건가 섭섭한 때도 많았는데, 돌아보니 모든 걸 스스로 하게끔 놔두셨던 엄마 덕분에 나는 독립적이고 강인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때문에 나 역시도 내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자 한다. 되도록 아이가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해보는 경험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고, 그것이 혼자 힘으로 어려울 때야 내가 나서서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히 맞는 일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아이의 친구 관계란 당연히 아이 스스로 헤쳐나가는 일이지 거기에 엄마가 깊숙이 관여해야 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때로는 올바르지 않은 관계가 형성되거나 뜻하지 않게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 불상사들도 생길 수 있기에 주의 깊게 친구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전지적 관찰자 시점인 것이다.
하나 있는 아이를 키우며 이제 처음 학교에 보냈으니 내게도 모든 것이 첫 경험이다. 그러나 그간 들어온 이야기들도 많고 먼저 아이들을 키워본 지인들을 통해 이런저런 조언도 많이 담아 두었다. 예전에 한번 이런 고민도 들어본 적이 있다. 아이들끼리는 친한데 엄마들끼리 관계가 불편해서 고민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친하면 그뿐이지 그 관계에 왜 엄마가 얹혀서 괜한 불편한 관계를 초래하는지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이해는 잘 안 된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관계에 엄마라는 필터가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위 정말 어울려서는 안 될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대해서는 통제가 들어가야 하겠지만, 단순히 엄마들끼리 생기는 갈등 관계로 인해 누구랑은 놀지 말라며 엄마가 관계를 컨트롤하고 선을 긋는 것은 정말 큰 문제가 아닐까. 현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인간관계 조차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박탈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로 인해 마땅히 배워야 할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못 배우고 있는 건 아닐까.
변죽 좋은 아이를 가진 엄마가 하는 배부른 소리라 할지도 모르겠다. 사회성 좋은 덕분에 엄마가 나서서 친구들 만들어 주려는 깜찍한(?) 노력을 안 해도 되니 아이한테 고마울 따름이다. 어쨌든 아이가 조금은 내성적이라 걱정이 될지라도, 사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성장해 가며 나름 관계의 해답을 찾고 자신의 길을 정리해 간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유상종이라는 말도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분명 각자의 생긴 대로, 자기의 성격대로 서로 잘 맞는 친구들 알아서 찾게끔 되어 있다. 그 모든 것들은 사실 경험에서 배우는 것들이 아니던가. 엄마들이 아이들의 경험을 빼앗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관계는 그저 아이들이 알아서 하게 놔두면 좋겠다. 아이의 사회적 관계를 나의 사회적 관계로 동일시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니까 말이다. 나와는 다른 독립적인 인간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