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어도 괜찮아

by 마마뮤

나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그러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잖던가. 내 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만큼은 도저히 잘(?) 해낼 재간이 없어 결국 아이가 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학교 근처 피아노 학원에 아웃소싱을 했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오빠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쫓아다니다가 스스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엄마에게 조른 케이스였다. 이른 나이부터 음악 교육을 접했던 나는 결국 전공까지 이르긴 했으나, 그렇게까지 진로를 정하지 않더라도 음악 교육이 주는 여러 장점을 스스로 체험했기에 아이에게도 일찍 가르치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그러나 전적으로 나의 게으름 때문인 건지, 아님 주워들은 풍월이 있어서였는지, 아이가 관심을 보이기까지는 억지로 시키지 말자는 생각이 강하게 있다 보니 결국 꼬마가 스스로 배우겠다는 선택을 한 올해에 이르러서야 처음 피아노 학원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그래도 지 어미의 DNA는 무시를 못하는 건지, 천부적 자질까지는 전혀 모르겠으나 아이가 꽤나 흥미를 갖는다. 아주 열정적이진 않아도 잘 치고 싶다는 욕심만큼은 그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라 나름 다행이다 싶었는데, 하루는 학교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기 자랑(?) 행사를 영상으로 함께 봤다고 한다. 근데 거기서 피아노를 치는 형님들이 꽤나 여럿 있었던 모양이다. 그걸 보고 와서는 자기도 그렇게 피아노를 잘 연주하고 싶다며 갑자기 피아노에 대한 열의를 내뿜기 시작했다.


"엄마~ 나도 그렇게 피아노를 잘 치고 싶어 졌어.. 그래서 피아노 배우는 게 더 재미있었어..."

피아노 학원을 돌아 나오며 아이가 하는 말이다. 그렇게 일찍이 피아노 배워보자고 얼르고 달래고 구슬려봐도 통하지 않더니, 스스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또 외부의 긍정적 자극을 통해 동기부여가 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아이는 기다려주는 게 답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천성이 그리 극성 엄마는 절대 되지 못하려나보다. 나 스스로에게는 너무 극성맞아 어릴 때 엄마가 간혹 혀를 끌끌 차곤 하셨는데, 그때 진을 다 빼서인지 아님 정말 늙은 엄마라 그런 건지 아이에게는 사실상 무척 관대하다.

그 이면의 실상이란 솔직히 내가 귀찮기 때문이다.

물론 그저 놔두기만 한다면 그건 방치가 되겠지만, 아이에게 적절한 가이드는 주되 좀 알아서 하고 알아서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이 가득한, 정말이지 난 이 야무진 엄마 사람이다.


며칠 전 피아노 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한창 계이름을 공부 중인 아이가 영 속도가 느린 모양이다. 선생님이 우리 꼬마가 다른 아이들 대비 배우는 속도가 느리다며 나를 붙잡고 한참 푸념을 늘어놓으셨다. 물론 여러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으로 어떤 생각에서 나오는 말인지 짐작은 가지만, 내가 왜 우리 아이는 더디냐며 클레임을 건 것도 아닌 데다가 느리게 배우더라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할 뿐 사실 얼마나 빨리 진도를 나가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데 왜 그리 빨리 나가지 못해 안달을 하는지 나로서는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더구나 '다른 아이들 대비'라는 비교 문구가 내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했다.

내심 속으로 뿔이 난 나는 집에 오며 아이에게 일부러 더 단단히 일러줬다.


"천천히 배워도 괜찮아! 빨리 배우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네가 제대로 알고 넘어가는 게 제일 중요한 거야.. 그리고 걱정하지 마! 엄마가 오늘 다시 가르쳐줄게! 엄마가 그거 전문가야..!"


그날 저녁 아이를 붙들고 음표를 반복적으로 그리며 계이름을 적는 연습을 시켰다. 순간순간 욱 하며 올라오는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들을 꾹꾹 눌러가며 겨우 엄마표 쪽 과외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내가 그거 안 하고 싶어서 학원에 보낸 건데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하는 현타가 왔지만, 그래도 내 새끼가 어디 가서 누구보다 더디다는 말은 죽도록 듣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의 자존심 포인트를 건드려 버린 건 엄마가 공부 좀 시키라는 선생님의 고난도 기술이었던 걸까..




갈수록 배우는 난이도가 높아져가니 아이가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교 후 피아노 학원을 향하는데 웬일인지 안 가고 싶다는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잘하고 싶은데 너무 어렵고, 그래서 그만두고 싶은데 또 잘하고도 싶으니 그만둘 수가 없다는 거다.

일단 당장 코앞에 시간 약속을 해놓고 갑자기 안 간다고 하는 건 너무 무례한 일이니, 오늘만 열심히 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엄마랑 이야기 나눠보자며 아이를 학원에 들이밀었다.


끝나고 나오는 아이 얼굴이 웬일인지 신이 났다. 덩달아 선생님 목소리도 한 톤이 올라가 있다. 상황을 듣자 하니 엄마랑 집에서 공부를 해서 이제 잘한다며 과제로 해야 할 분량보다 더 많이 해냈다는 것이다. 엄청난 칭찬을 퍼부어주자 하늘로 승천한 아이의 광대가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그래.. 그렇게 잘하고 싶었구나... 좋아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기특하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요즘 세상에 엄마 노릇 하기 정말 힘들다.

왜 엄마에게는 조금이라도 편안함을 쥐어 주라 할라 치면, 왜들 눈치를 주는 것 같고, 왜들 불편해하는 것 같을까. 왜 엄마가 당연히 나서서 뭔가를 해줘야 한다고들 여기는 걸까. 이게 단순히 나의 피해 의식이라고 치부하기엔 사회적으로 엄마에게 부여하는 기대치가 천근과도 같단 생각이 든다.


왜 사사건건 모든 것에 '엄마표', '엄마의 노력'이 따라붙어야 하는 걸까. 마는 낳아주고 길러주고 사랑해주면 그게 전부 아닐까. 나는 아이의 인생에 자꾸 엄마를 욱여넣으려는 이 현상이 참 별로다. 아마도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 눈에는 내가 무던히도 아이 일에 방관하는 엄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역할은 한 발 뒤에서 지켜보고 아이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지, 아이의 모든 배움과 모든 관계의 순간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조금 도움을 줌으로써 아이가 좋은 성과를 얻고 그리도 좋아하는 걸 보니 마냥 뒷짐 지고 바라만 보는 것도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왜 아이가 부진한데 엄마가 아무것도 안 하세요 처럼 들리는 무언의 압박은 사양하고 싶다. 그 부진함 속에 좌절을 경험하는 것도, 또 그 감정을 딛고 일어나 현재의 한계점을 뛰어넘어보는 경험도 모두 온전히 내 아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방향키를 제시하고 아이가 주저앉을 때 손 내밀어 일으켜 등 떠밀어주는 조력자 엄마이고 싶다. 엄마는 필요할 때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능 램프의 요정이 아니니까 말이다.


조금 늦게 간다고 세상 어떻게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걸 너무도 깨닫는 나이가 되고 보니, 아이에게도 자신만의 속도로 가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다.

까짓 피아노 지금 좀 더 잘 친다고 이 아이의 삶에 무슨 영향이 있을라고... 밝고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는 그 식상한 멘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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