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이다는 베르디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를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2000년 3월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는데, 작사에 '팀 라이스'와 작곡에 '엘튼 존'이라는 든든한 명성을 이미 안고 시작한 나름의 금수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원래 이 작품의 원 저작권자인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에서 수정된 무대를 내놓기 위해 국내에서는 5연을 끝으로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 공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었는데, 이번 5월 무슨 연유에서인지 극적으로 국내에서 다시 막을 올리게 되었다. 아마도 많은 뮤지컬 팬들에게는 한 시절을 풍미했던 아이돌 가수 옥주현 님의 뮤지컬 무대 데뷔작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오페라 '아이다'를 모티브로 삼아 애초 애니메이션 뮤지컬 영화로 제작하려 했으나 '엘튼 존'이 뮤지컬로 제작하자는 제안을 함으로써 뮤지컬 무대에 올려졌다고 한다.
일단 오페라 '아이다'와는 어떻게 다른지 비교 차원에서 한 번쯤은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라, 일찍이 조기 예매를 해두고 날짜를 손꼽아 기다려 드디어 지난 일요일 그 무대를 직접 만나보게 되었다.
뮤지컬의 시작은 이집트 현대 미술관에서 시작된다. 전시되어 있던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의 조각상이 살아나 모두를 고대 이집트로 초대하며 극이 시작되는데, 이러한 각색이 상당히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적국의 관계에 놓인 이집트의 장군 라다메스와 노예로 잡혀온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가 사랑에 빠지게 됨으로써 펼쳐지는 비극적 스토리인데, 오페라의 진중함과는 완연히 비교되는 가벼움을 상당히 많이 담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디즈니'라는 제작 배경이 한몫했을 터인데, 스토리 자체가 아이들까지 모두 아우르기에는 너무나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인 데다, 결말이 비극이다 보니 어째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할 수 없었던 건지는 어느 정도 짐작할만했다.
어쨌거나 뮤지컬 무대에 좀 더 적합한 스토리 라인임은 분명하지만, 극 초반부터 등장하는 다수의 장면이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아주 철이 없는 캐릭터로 묘사된 '암네리스' 공주는 사실 오페라 '아이다'를 선입견으로 담고 있는 내 머릿속에 다소 큰 충돌을 일으키는 부분이었다. 그녀의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되는 '패션은 또 다른 나'라는 넘버는 사실상 통째로 들어내도 맥락상 아무런 지장은 없겠구나 싶기도 했다. 스토리에 그다지 필연적이지 않아 보이는 브로드웨이 표 볼거리가 한 상 차려진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입부부터 그렇게까지 철없는 맑고 투명한 공주 캐릭터였던 암네리스가 결국 최종적으로는 작품의 비극을 선언하는 역할로 분하게 되는 부분은 사실상 너무 갑작스럽다는 느낌마저 안겨주었다.
음악은 사실 누가 들어도 '엘튼 존'이구나 싶은 요소들이 가득했는데, 개인적 취향으로는 특별히 나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듣는 순간 특별히 좋아서 기억에 내리 꽂힐만한 인상적인 음악도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엘튼 존이 대 히트를 불러일으킨 뮤지컬 '라이언 킹'에 비해 상대적으로 좀 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오페라에서는 아이다의 조국이 에티오피아인데, 뮤지컬에서는 누비아라고 묘사되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잘 몰라도 에티오피아 커피는 알 만큼 우리에겐 어느 정도 익숙한 나라인 반면, 누비아는 수단의 고대 문명국가로 당시 이집트와 국경을 마주했다는데, 거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던 나라라고 한다. 전체 스토리의 흐름은 오페라와 동일하지만, 세부적인 극의 요소들이 뮤지컬에서는 다소 간소화됐다는 느낌은 있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미국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화려한 무대와 연출이 두드러졌다. 이는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다수의 유러피안 뮤지컬들에 비하면 사실 태생부터 분위기가 상당히 다른데, 미국 뮤지컬 작품들이 좀 더 '엔터테이닝'에 방점을 찍는다면, 유럽의 뮤지컬들은 역사적으로 오페라의 뿌리가 깊은 유럽 지역에서 출발했다는 면에서 좀 더 진중한 서사와 음악 스타일을 담고 있다. 어느 쪽이 더 낫다 논할 부분이 아니라 그저 근본적으로 두 지역의 뮤지컬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고 보면 된다.
디즈니라는 제작사와 브로드웨이의 프로덕션, 엘튼 존과 팀 라이스 등, 그저 흘려보내기에는 아쉬울만한 명성을 탄탄히 지니고 있다.
한 번쯤은 볼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아이다'는 원조 오페라가 역시나구나 싶은 생각은 든다.
이날 주연을 맡았던 전나영, 최재림, 민경아 배우님들의 내뿜는 가창력은 정말 훌륭했으나 언제나와 같이 그리 큰 만족감을 던져주지 못하는 블루스퀘어 홀의 음향 밸런스 덕에 때로는 노래가 충분히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감은 있어 조금은 아쉬웠다.
현재 이 작품은 커튼콜 촬영이 허용되고 있어 영상에 담아와 봤다.
5/29 마티네 공연 커튼콜 - 전나영, 최재림, 민경아
차디찬 지하 감옥에 생매장되어 함께 죽음을 맞이한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 라다메스와 아이다는 시간을 거슬러 환생하여 현대 미술관에서 마주하며 극을 마무리 짓는다. 우리는 흔히 사람 간에 '관계'를 논하며 '인연'을 운운하는데, 아마도 정말 '환생'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누군가에게 직감적으로 알 수 없는 '끌림'을 경험하는 건 분명 그 언젠가의 생에서 나와 어떠한 인연의 끈을 붙들고 있었던 사람이란 뜻이지 않을까. 그저 오페라에서 처럼 비극으로 마무리 지어 끝내기보다 환생의 메시지로 극의 여운을 남겨준 부분에서 뮤지컬의 구성이 좀 더 따뜻함은 분명 느껴진다. 환생한 라다메스와 아이다가 지금도 어디에서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게 하는 마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