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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Sep 05. 2022

독서 천재는 아니지만, 나름의 원칙은 있습니다

읽어야겠다고 작정한 책이 책상 위에 산으로 쌓여있다. 인간의 지적 욕구에 충실한 건지, 아니면 그럴싸해 보이는 허영인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렇게 책에 대한 욕심은 쉽사리 정리가 잘 안 된다.


어릴 적부터 사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엄마는 서점에 데리고 가 딱 한 권씩만 사주시면서 내게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시는 멘트가 있었으니 바로 '오늘 하루 만에 다 읽으면 안 되는 거야~'였다. 그럼 냉큼 천천히 읽겠노라 약속을 하고는 집으로 오자마자 정신없이 글자 속으로 파묻히곤 했다. 뒷 내용이 궁금해 어쩔 줄을 몰라 그렇게 읽고 읽고 또 읽다 보면 하루 만에 다 읽지 않겠다는 엄마와의 약속은 무용지물이 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마다하면서까지 책 속에만 사는 아이는 또 아니었는데, 여하튼 내 어린 시절 하루 만에 읽지 않겠다는 약속을 매번 어기게 만든 건 오히려 그 하루 만에 읽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 한 권을 다 읽어야만 다음 책을 사주셨기 때문에, 누가 그걸로 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니건만 나는 그렇게 기를 쓰고 열심히 읽기에 매진했었다.

그래서 문득 드는 생각이란, 나는 정말 본질적인 지적 욕구가 충만했던 걸까 아니면 한 권을 끝내야만 다음 책을 얻을 수 있다는 실질적 물욕과 승부욕이 컸던 걸까..

가끔 이런 쓸데없는 궁금증이 몰려올 때가 있다.




한 권을 다 끝내야 다음 책을 살 수 있었던 우리 엄마의 '규칙'덕분이었을까. 간혹 생각해보면 우습게도 책에 대한 어쭙잖은 결핍이 생겨난 건가 싶을 때도 있다. 가끔은 정말 읽지도 못할 책을 왜 이리 많이 사들고 왔나 싶게 도서 쇼핑에 열을 올리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도 쇼핑의 일종이다 보니 정말 이 많은 책을 읽겠다고 작정한 건지 아니면 사재기에 빠졌던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책도 참 희한한 것이 당시에 끌리고 읽어보고 싶은 책을 딱 손에 쥐고 읽어내려야 단숨에 끝낼 수 있지, 만일 사두고 눈앞에 오래오래 묵히다 보면 본의 아니게 제목만으로도 싫증(?)을 느끼고 읽지도 않은 내용을 마치 읽은 듯 착각하게 만들어 조용히 잊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간혹 내가 이걸 왜 샀을까 후회 아닌 후회를 하는 경우도 많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래서 제대로 읽지도 않은 깨끗한 책을 모두 싸들고 낑낑대며 중고책 판매점에 방문한 일도 몇 번 있다.




그렇다면 그 좋은 도서관 대여를 놔두고 나는 왜 그리 새 책을 사대는 걸까. 사실 그것 역시 나의 어설픈 깔끔 병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뽑아 읽다 보면 그 어떤 아이의 짓인지 누런 코딱지가 늘어 붙어 있는 페이지들이 종종 등장했는데, 나는 그럼 어김없이 기겁을 하곤 했었다. 누구 코에서 나온 건지 알 수 없는 그 노란 것은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불결했지만 행여 내 손가락이 터치한 건 아닌지 그 찝찝함을 이루 다 말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새 책을 사대는 건 어린 시절 늘 마음의 준비 없이 마주해야 했던 책 속의 코딱지 트라우마가 남긴 쓸데없는 잉여로움이다. 나는 솔직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상당히 싫어한다.




어쨌거나 멈추지 못하는 지적 호기심 덕분에 책을 사대는 비용이 사실 만만치가 않았다. 가뜩이나 물가도 엄청나게 올라 뭘 사기가 무서울 지경인데 책에까지 여유를 부리자니 정말 부담스러운 요즘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란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고 진짜 소장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는 책만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대여한 책을 읽으며 코의 부산물을 발라놓는 성인은 없지만, 그 누군가들이 수도 없이 만진 책을 빌려오는 게 내심 상당히 껄끄럽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상당히 꼴사나운 결벽증 인간 같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내 살고 있는 집의 상태를 보면 바로 답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장 좋은 대안이란 바로 전자책 구독이었다. 정말 그 서비스를 처음 접했을 때 심봤다를 외치고 싶었다. 매월 지불하는 9,900원으로 세상 다양한 책을 가장 '깔끔한' 상태로 만날 수도 있고, 마음대로 하이라이트를 할 수도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사실 책에 코딱지 묻은 거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교과서가 아닌 이상 책에 직접 밑줄 긋고 메모하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좋은 내용은 따로 인덱스 테이프를 붙이고 필사를 해두는 편이지 책에 직접 뭔가를 표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피한다. 결코 결벽증과는 무관한 그저 나의 개인적인 책에 대한 예의라고나 할까. 나는 그저 깨끗한 책이 좋다.




그렇게 전자책으로 먼저 찾아 읽어보고 정말 좋다고 판단이 되면 그 책은 반드시 구입한다. 찬찬히 책장을 넘기며 다시 읽내용을 꼭꼭 씹어 먹어 보는 것이다. 책 읽을 때 늘 함께 하는 알록달록 인덱스 테이프와 필사 노트를 옆에 두고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펜으로 눌러 적어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예전엔 그렇게 한 권 만을 깊이 들이 파며 읽다 보니 사실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땐 한 권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요즘 많이들 한다는 병렬 독서에 발을 들여봤다. 이렇게 읽어서 제대로 이해가 갈까 의구심이 들긴 했었는데, 실제 해보니 생각보다 인간의 뇌는 다양한 정보를 카테고리화 해 제대로 잘 저장하는 기능이 구비되어 있고, 또 그렇게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집적 대보니 생각보다 한정된 시간 내에 여러 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을 깨닫게 됐다.


뭐 그래도 사느라 바쁘다 보면 생각처럼 독서에 빠지기 힘든 때도 분명 많이 있다. 독서는 통찰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지 않던가. 요즘은 읽기보다 더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영상물 선생님들이 너무도 많지만, 그래도 차근히 생각하며 능동적으로 머리에 담는 행위가 여전히 더 유효하다는 데에는 반대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이제는 잊힌 표어가 아닌가 싶은데 어릴 땐 이 즈음이면 어김없이 듣던 말이다. 다들 먹고살만해지니 사실 지적 배고픔을 채우기보다 실제 배 채우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아져 그야말로 천고마비天高馬肥 가 아닌 천고 인비天高人肥 (하늘은 높고 인간은 살찐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늘어지는 뱃살을 삼단으로 고이 접고 앉아 독서 삼매경에 한번 빠져봐야 되겠다. 커피 한잔과 어우러지는 책 한 권의 여유, 이 어찌 아니 좋으랴.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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