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일주일 전이 추석 연휴였는데, 왜 이리 새삼스러운지 모르겠다. 지긋지긋한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 처음으로 거리두기가 없는 명절을 맞이하여 저마다 고향을 찾는 발걸음들이 모처럼 분주했던 가운데, 나는 무슨 복(?)을 받아 뮤지컬 관람을 하고 왔다.
사실 코로나 덕분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그간 서로 간에 거리를 두며 명절의 복잡 미묘한 관례와 공식들이 대체적으로 정리가 좀 된 건지, 예전처럼 며느리들의 곡소리가 크게는 들려오지 않았다는 느낌이들긴 한다. 기분 탓인가.
여하 간에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득했다. 미세스 다웃파이어 작품 자체가 가족 뮤지컬이라는 장르 특성도 있겠으나 "명절"에 가족이 함께 뮤지컬 관람을 하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여 예전과는 좀 다르구나 싶었다.
이 작품은 1993년 개봉했던 '크리스 콜럼버스'감독의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Mrs.Doubtfire)를 원작으로 제작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존경하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를 대표하는 영화라는 점에 만감이 교차하는 추억의 작품이다.
이 뮤지컬은 2013년에 제작에 돌입했으나 실제 무대에서 빛을 본 건 2019년 시애틀에서였고, 이때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그 후 2020년 3월에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프리뷰가 계획됐었으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취소되었다가, 2021년 12월에 공식적으로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그런 작품이 올해 8월 한국어 첫 라이선스 공연으로 샤롯데 시어터에서 막을 올렸다. 현재 이 작품은 논 레플리카(Non-replica) 버전으로 공연되고 있는데, 이는 음악과 대본에 관해서만 원작자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그 이외의 모든 프로덕션 요소는 국내의 현황에 맞게 새로운 방향으로 재해석했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 점이 현재 공연되고 있는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대단한 관전 포인트이자 묘미이다.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스토리를 미리 알아두고 이해한 상태에서 관람해야만 현장에서 일어나는 종합 예술을 그야말로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늘 주장하는 바이지만, 이번 미세스 다웃파이어만큼은 확실하게 예외 사항으로 두고자 한다. 사실 영화 자체가 너무 유명하고, 설사 직접 보지 않았다 한들 스토리가 그다지 복잡하게 꼬여있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공부씩이나 할 거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싶다. 일단 그냥 극장을 찾아 준비 없이 맞이하는 예상외의 유머들을 현장에서 맞닥뜨리고 빵빵 터지는 것이 이 뮤지컬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배우 정성화 님의 코믹 연기는 그야말로 최고다! 더불어 모든 배우들의 합이 너무 훌륭했다.
우선 이 작품이 어느 정도로 철저하게 '현지화'를 했는지가 사실상 놀라울 따름이었다. 작품 자체는 너무도 미국인들의 미국적 스토리 이건만, 뮤지컬의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대사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우리의 정서와 유머로 가득 차 있어 시종일관 배꼽을 잡게 만든다.
게다가 어찌나 따끈따끈한 사회 이슈들이 대사 속에 쏙쏙 담겨 있는지, 아마 역대 그 어떤 작품보다 시의성에 있어서는 가장 최고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시나리오 작가님들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3시간 가까운 러닝 타임 내내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단언컨대 내 기준에서 여태 봐온 그 수많은 뮤지컬 중 '가장'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게임 요소가 잔뜩 반영된 그래픽이 적절히 잘 어우러진 무대 워크도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그 덕분에 안 그래도 유쾌 발랄한 뮤지컬에 생동감이 넘쳐났다.
배우 정성화 님의 연기는 그야말로 천하일품이다. 그가 펼쳐 보이는 코믹 연기와 더불어 탭댄스를 비롯한 비트박스 퍼포먼스까지, 뭐 하나 놀랍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외에도 모든 출연 배우들의 약방의 감초 역할이 곳곳에 꿀잼을 더한다. 그 누구도 재미없는 역할이 없는 듯하다.
또한, 유럽의 뮤지컬들과 가장 크게 구분되는 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인데, 이 작품 역시도 관객들을 쉴 새 없이 무대 안으로 흡수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은 관객을 단순히 앉아서 관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극의 일부로 끌어들이고 참여하게끔 유도하는 시도가 다양하게 펼쳐지는데, 이 작품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혀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초대였다.
어느 작품이든 각자의 매력이 있고 나름 빠져드는 포인트가 있게 마련인데, 여태 미세스 다웃파이어처럼 크게 웃고 크게 반응한 작품이 있었나 싶다. 더구나 나처럼 혼자 관람하는 사람이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사실 공연을 본 후 쓰는 글에는 무대, 음악, 배우들에 관해 상세히 풀어놓는 편인데, 이 작품은 너무 많은 정보를 오픈하고 싶지 않다. 그만큼 재미를 반감시킬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사실 글의 제목에서 이미 한 가지 스포를 한 샘인데,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 제목을 여러 차례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이 대사가 등장하는 장면을 실제 본다면 파안대소를 하게 될 터이다. 이런 예측 불가한 우리 한국인들의 유머 센스 정말너무 멋지지 않은가.
왜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은 공연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지 모르겠다. 엔도르핀이 폭발하는 시간을 원한다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끝나기 전에 꼭 한번은 봐야 할 공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