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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Oct 10. 2022

지금의 현실은 당시의 이상보다 아름답다

자라는 내내 엄마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다음에 꼭 네 일을 갖고 살라고...

그저 열심히 아이 키우며 남편 내조 잘하는 현모양처가 여성들의 미덕인 줄 알았던 시대를 살아온 우리 엄마는 딸이 자신의 삶과 똑 닮은 모습으로 살지 않기를 그렇게도 바라셨던 모양이다.


일찍이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는 일본의 복장학원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하셨지만, 과년한 장녀는 그저 조신하게 잘 있다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외할아버지의 시대를 비껴갈 수 없는 사고방식에 눌려 그저 조용히 묻혀 버린 꿈이 되었다. 워낙 손재주가 좋았던 엄마는 펼치지 못한 '끼'를 자식들에게 예쁜 옷을 만들어주거나 본인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으며 그렇게 집에서만 써먹기엔 과분한 재주를 발휘하시곤 했었다.


그래서일까. 나의 사회생활이란 내 사고방식 안에선 어떤 선택의 문제가 아닌 너무도 당연한 필수 요건이었다. 엄마의 세뇌 아닌 세뇌 덕분이었다. 다소 늦은 나이에도 기꺼이 결혼을 선택하며 그 이후에 이어질 임신과 출산이 나의 인생 행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사실상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내가 사회에서 활동하는 건 변치 않는 고정값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참으로 순진했다. 나는 그렇게 이상적인 상황을 꿈꾸며 살았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현실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계획을 정리하고 잠시라도 책을 읽는다. 씻고 사람의 몰골로 변신을 하고 나면,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한 후 아이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등교 준비를 한다. 그러고는 아이의 등굣길을 함께 하고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 다시금 아이의 하굣길을 마중 가기 전에 틈틈이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아이가 집에 돌아온 이후엔 사실상 내 개인 시간을 갖기는 좀 어렵다.


가끔 일이 있는 날엔 아이를 등교시키고 바로 집을 나서야 하는데, 그럴 땐 아침에 마음이 어찌나 분주해지는지 다른 날보다 다소 날카로워지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러니, 내가 만약 매일 아침 출근하는 워킹맘 라이프를 고수했더라면 얼마나 날이 서서 못되게 굴었을까 싶기도 하다. 결과론적인 생각이지만 그러니 각자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삶이 주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상 전업주부라는 현주소가 온전히 나의 결정사항이라기보다 어느 정도 상황에 떠밀린 때문인지, 늘 미련을 가지고 살았기에 결과적으로 어디서든 만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말 어떤 운명이란 것이 있다면 결국 나는 그저 그 운명을 따라 흘러왔을 뿐이구나 생각해보게 된다. 오히려 그저 좋을 줄로만 알았던 그 이상의 삶보다, 지금 나의 현실이 내게 가장 감사한 상황이안도의 마음이 찾아오니 말이다.




그 언젠가 뉴욕의 높은 건물들 사이를 바삐 다니는 도시의 커리어 우먼들의 모습이 내 삶의 완벽한 이상형이었던 때도 있었다. 오피스 빌딩이 가득한 도심지 건물 숲 사이를 걸어 다니며 더없이 높은 자존감을 느꼈던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더는 그것이 내 것이 아니게 되었을 때 나는 상실에 빠졌고 방황했다.


방황은 길었지만 감사하게도 어느 날 자연스러운 깨달음이 찾아왔다. 붙들지 못할 이상만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나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나의 현재를 한껏 받아들였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 '때문에'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의 형태가 어그러졌다는 피해 의식이 있었는데, 귀한 아이 '덕분에'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됐고, 이제는 '엄마'라는 역할에 온전히 충실함으로써 삶에 대해 좀 더 성숙해져 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한껏 느끼게 해 줄 수 있으니 감사하다.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한 순간도 빠트리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수고하는 남편에게 따뜻한 저녁밥을 지어줄 수 있으니 그 역시도 감사하다. 아무리 시간이 부족하다 해도 틈틈이 나를 위한 자아 발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감사하다. 아마도 내가 워킹맘으로 살아가야 했다면 언감생심 글을 써야겠단 생각조차 못했을게 분명하니 말이다.




얼마 전 박웅현 님의 '여덟 단어'를 다시 읽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실 내가 당시 처한 상황에 따라 와닿는 구절이 참 제각각이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마지막 부분이 참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인생은 기필코 되는 게 아닙니다.
뭔가를 이루려 하지 말고 흘러가세요.
살아가다 보면 기회는 분명히 옵니다. 믿으세요.
그러니까 한탄하지 말고 준비해 놓으세요.
그러면 빛을 발할 때가 옵니다.

꼭 지금의 나에게 해주는 말이다. 나는 그 언제 올지도 모를 '때'를 준비할 수 있는 귀한 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저자는 인생에서 항상 최선만을 선택할 수는 없음을 상기시킨다. 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야 하냐면, 그 하루하루가 모여서 언젠가 내 인생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란다.


매일의 현실을 소중하게 살아보자. 그리고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에 정성을 다해보자. 그 수많은 날들이 쌓이고 쌓여 반짝이는 날들을 만들어 줄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지금 나는 엄마로서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그저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 것처럼 내 인생도 반짝이며 흘러가고 있으니 앞으로 또 어디에 다다라 빛을 발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줄타기(이상과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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