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나는 오페라 작품을 소개하는 방송을 진행 중에 있으면서도 뮤지컬 이야기를 넘나들며 다루고 있다. 그건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사실상 오페라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두 카테고리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작품들이 종종 있는데, 대표적으로 뮤지컬이지만 오페라 컴퍼니에서도 다루는 '오페라의 유령'이 있고 또 다른 작품이 있다면 아마 바로 이 '스위니 토드'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오페라 쪽에서 뮤지컬을 다루는 일이 아주 빈번하다고 볼 수는 없는데, 어쨌든 상업성을 무시할 수 없는 입장에서는 간혹 서비스 개념으로 오페라 작품들 사이에 이런 뮤지컬들을 끼워 넣기도 하는 양상이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Sweeney Todd)는 휴 휠러(Hugh Wheeler)의 각본에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이 가사와 음악을 입혀 197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다. 이듬해 1980년에 영국 웨스트엔드에 입성했고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후 '팀 버튼' 감독의 연출로 '조니 뎁'이 스위니 토드로 분하여 영화로 제작해 2016년에 개봉했었다.
내가 이 뮤지컬을 처음 만난 건 대략 20년 전이다. 당시 한창 오페라 코치가 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열혈로 배우던 시절인데, 그때 난 아직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던 초보 학생이었다. 그즈음 Opera Australia에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는데 왜 뮤지컬이 오페라 컴퍼니에서 다뤄지냐며 세상 신기해하던기억이 난다. 스승님께 여쭤봤을 때 간혹 그런 작품들이 있다는 아주 심플한 답변만이 돌아왔었다. 지나고 보니 약간의 창법만 달리 한다면 오페라 가수들이 뮤지컬을 다루는 것은 아주 큰 어려움은 아니라 가능한 부분인 것 같다.
스위니 토드의 도입부는 다소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닮아 있다. 자신의 아내(또는 연인)를 탐하는 힘센 권력자에 의해 알 수 없는 죄명이 씌워져 멀리 귀양 보내지고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다는 점이다.
이발사 벤자민 바커는 억울한 옥살이 끝에 스위니 토드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런던으로 돌아와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찾지만, 아내는 독약을 마셔 생을 마감했고, 자신의 운명을 뒤바꿔버린 사악한 판사 '터핀'이 딸을 돌보고 있다는 소식만을 접하게 된다.
그는 터핀 판사에게 복수할 방법을 구상하던 중 런던에서 최악의 파이를 팔고 있는 러빗 부인과 만나게 되고, 그녀의 파이 가게 위층에 다시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이들은 아주 끔찍한 운명 공동체의 길을 걷는다. 스위니 토드는 이발소에 온 손님들을 모두 살해하고 러빗 부인은 그들의 시체를 넣은 고기 파이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스토리의 시작은 토드를 아주 억울하고 불쌍한 피해자로 만들어 그에 대한 동정심을 일으킨 후, 복수한다며 살해를 감행하는 그에게 나름의 합리화(excuse)를 안겨주는 듯하다. 사실상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 스릴러는 말 그대로 끔찍한 살인을 소재로 관객에게 단순한 재미를 제공하자는 게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 현상을 꼬집는 '블랙 코미디'를 꾀하고자 함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어두운 스토리에 걸맞게 손드하임이 엮어낸 음악은 그야말로 놀라움 자체다. 사실 이 작품을 영화로 접하면, 아무리 뮤지컬 영화라지만 어쨌든 영상미와 스토리 라인 편집에 좀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음악은 다소 부차적인 요소로 다뤄진 느낌이다. 하여 나 역시도 영화로 봤을 때는 음악이 그저 듣기 싫고 불편한 불협화음이 잔뜩이라는 생각만 했었다. 거기에 노래 전문가들이 아닌 기존 영화배우들의 다소 아쉬운 노래 실력이 한 수 더한 이유도 있지만 어쨌든 음악 자체에는 그리 귀를 기울일 수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팀 버튼 감독의 연출은 어찌나 생생한지, 영화의 화면 전반의 느낌이 마치 흑백 영화를 보듯 컬러인데 컬러가 아닌 회색의 영상 구성이었고, 살해 장면이 다소 실감 나게 등장해서 뮤지컬로 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으스스하고 무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일주일 전 다시 무대에서 만난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영화에서 받았던 느낌과는 아주 달랐다. 그리고 20년 전 아주 흥미롭게 지켜봤던 무대 위의 장면들과 음악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파이프 오르간의 장황한 사운드와 함께 시작되는 'Attend the tale of Sweeney Todd(스위니 토드의 얘기를 들어봐)'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리드하고 일관성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상세히 들어보면 가사 안에 담아놓은 '라임(rhyme)'이 대단히 스마트하다.
작품 전체에 등장하는 음악은 대부분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진 부분이 많은데, 이 듣기 싫은 소리가 그저 듣기 싫은 소음이 아니라 작품의 스토리와 어우러져 어찌나 실감 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지 손드하임의 음악은 가히 천재성이 빛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1막 마무리를 장식하는 토드와 러빗 부인의 듀엣은 아주 끔찍한 살인을 계획하는 내용임에도 음악 자체는 너무도 경쾌한 왈츠 풍이라 여기서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다.
그래서 그는 복수에 성공했을까?
살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중죄이다. 마치 그의 복수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그에게 되돌아온 저주였다고 나 할까. 함께 운명 공동체를 결성했던 러빗 부인마저도 결국은 그의 손으로 죽음에 몰아넣었고, 생각지도 않던 반전의 인물에 의해 스위니 토드 역시 생을 마감한다. 끔찍한 비극으로 종결되는 작품이다.
무대 위에서 마주하는 스릴러의 무서움에는 한계가 있다. 그것은 영상물처럼 실제를 상상하게 만드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대 위 장면을 마주하는 관객들 역시 그 모든 상황이 연출된 것임을 너무도 명확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접하기 때문에 사실상 뮤지컬을 본 후 무서워 죽겠더라는 관객은 전혀 없으리라.
이런 끔찍한 스토리를 통해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결국 뼛속 깊은 인간의 본능과 바닥이다. 살면서 원수 같은 사람 한 둘 쯤 안 만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감히 표현하지 못할 뿐 어떻게든 복수해주고픈 생각을 해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나 같은 '일반적 인간'에 한해서 말이다)
그러나 결국 돌아오는 답은 하나이다. 복수는 무의미하고 그것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르긴 몰라도 세상이 모두에게 아주 공평하게 돌아가지만은 않지만, 악을 악으로 갚겠다는 마음보다 선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덮어가며 공정을 추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나의 삶이 더 윤택하다는 것을 우리는 얼추 다 알지 않던가. 그래서 어찌 보면 이런 극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고 거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이 다소 어려운데 출연한 배우들이 모두 훌륭하게 소화를 해주어 내내 몰입할 수 있었다. 신성록 배우는 괴기스러운 스위니 토드의 모습을 잘 표현했고, 러빗 부인의 비중이 상당히 큰데 어려운 노래들임에도 린아 배우가 그 느낌을 아주 맛깔나게 잘 표현했단 생각이 들었다. 틈틈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그들의 애드리브가 상당한 재미 요소 이기도하다. 처음 뮤지컬을 접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작품성을 본다면 한 번쯤은 볼만한 좋은 뮤지컬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