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우리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상황이 꽤나 오래 이어졌는데, 최근 점차적으로 많은 것들이 정상화되어가는 모양새다. 이쯤 되니 사실 무엇을 두고 정상이라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미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정상'이라고 믿었던 수많은 것들로부터 멀어져야 했고, 사실상 세상을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과 개념을 정립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온라인 세상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문화 예술계라고 어찌 예외가 될 수 있으랴. 사실상 다양한 공연 콘텐츠들이 현장에 관객 없이 무대만을 영상으로 송출하는 온라인 공연을 기획하는 곳들이 많아졌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점엔 무관객 공연을 온라인으로 보여주는 형태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오프라인 공연을 동시에 온라인으로도 송출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기도 하고, 또는 이미 종료된 공연을 네**TV 등을 이용해 관람의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라이브 현장 공연을 보는 이유는 사실 딱 하나다.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생생함과 감동이 방구석 1열에서 스피커를 통해 듣는 음악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전율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말이 있듯, 나 같은 공연 마니아들에게는 아쉬운 대로 아예 못 보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임은 분명했다.
바로 얼마 전 국립 오페라단에서 막을 올린 오페라 '라 보엠'을 온라인 공연으로 관람했다. 사실 현장에 가서 보는 것만큼은 못 미칠 거라는 선입견에 조금 망설였는데, 극장에 방문할 여건이 안 되는 상황에 놓치기는 너무 아쉬워하는 수 없이 온라인을 뒤적이게 된 것이다.
오페라 극장을 직접 찾아 괜찮은 좌석에서 관람을 원한다면 대략 인당 20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가능하다. 아무리 오페라가 비교적 '고급' 문화라는 이미지를 갖추고 있다한들 한 번 관람을 위해 써야 하기엔 다소 부담되는 액수임은 분명하다. 국내에 오페라가 대중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아닐까 싶다. 물론 티켓 가격이 왜 이렇게 높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 일단 거기까지 들어가지는 않도록 하겠다.
국립 오페라단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KNO myOpera 회원 가입을 할 수 있는데, 이 멤버십을 통해 국립 오페라단의 각종 공연을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다.
실제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도 홈페이지 멤버십을 가입하면 그간 메트에서 올렸던 다양한 공연들을 유료로 관람할 수 있다. 지구촌 반대편의 대 극장에서 올려지는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고퀄리티 공연들을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획기적이라 생각한다.
꽤나 오래전부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자신들의 공연을 카네기홀 극장 야외에서 스크린을 통해 관람할 수 있게 한다던가, Opera on screen이라는 타이틀로 영화관에서 오페라 공연을 상영해오고 있다. 실제 국내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메트로폴리탄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너무도 고마울 따름이다.
라 보엠 관람을 위한 비용은 2만 원이 소요됐는데, 방구석 1열에서 한번 관람을 위해 지불하기엔 다소 높은 비용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공연의 여운이 사라져 갈 즈음 집으로 우편물이 한 보따리 당도했다.
라 보엠 프로그램 북과 내년 오페라 공연 스케줄 브로셔, 그리고 라 보엠 작품의 굿즈들이었다. 사실 기대치 않고 있다가 갑자기 받으니 상당히 반가웠던 것만은 사실이다. 숱하게 공연을 보러 다녀도 프로그램이나 굿즈를 절대(?) 구매하지 않는 나인데, 기대치 않게 받는 선물은 꽤 괜찮았다.
온라인 공연은 '연결성'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느껴지는 거리감은 어쩔 수 없는 맹점이건대 이런 노력을 통해 현장과 연결되었음(connected)을 느끼게 해 주려는 세심한 배려라는 점에서 좋은 마케팅 기법이란 생각은 든다.
초고속 인터넷 보유 국가의 위엄
사실 국내메이저 극장들은 모두 서울 도심지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서울 이외의 지역 거주자들에게는 문화생활의 기회가 적어질 수밖에 없는게 현실이다.
솔직히 나만 해도 외곽에 나가 조용히 사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보다가도, 이러한 공연 인프라와의 접근성을 생각하면 그저 고개를 젓게 된다.(나한테는 아주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 온라인 공연은 어쨌든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 있든지 초고속 인터넷 연결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안에 있다면 공연 관람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대단한 장점이 있다.
또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카메라 워크를 통해 무대를 촬영하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아주 가까이서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극장에서는 최고가의 티켓을 구매해 앞쪽 좌석에 앉지 않는 이상 무대 위의 사각지대도 있을 수 있고, 배우들의 표정까지 일일이 다 보기는 실상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오페라글라스를 대여해주긴 하지만, 눈앞에 들었다 놨다 하며 관람하는 것은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온라인으로는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를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아쉬운 점이 왜 아니 없겠는가. 라이브 음악을 특히나 선호하는 나는 무대 위의 오페라 가수들의 노랫소리뿐만 아니라, 사실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좀 더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 상당히 아쉬웠다. 말 그대로 현장감이 너무 떨어지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맹점이라 한다면, 방구석 1열인 대신 좀 더 선명한 화면에서 보겠다는 의지로 스마트 TV에서 연결했더니, 웹 브라우저가 따라주지 못해 자꾸 끊기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넷플**같이 공들여 TV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한 게 아닌 이상 웹브라우저를 통한 연결엔 한계가 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연결이 매끄러운 컴퓨터로 관람을 마쳤는데, 사운드나 이미지 사양이 조금 떨어지는탓에 다소 퀄리티가 떨어지는 부분은 좀 많이 아쉬웠다.
한 가지 더 좋았던 건, 나는 영화를 보건 공연을 보건 간에 그것들이 만들어진 비하인드 스토리 듣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공연이야 경험으로 얼추 다 알고 있지만, 영화나 드라마의 메이킹 필름이 사실 본 작품보다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나의 끝없는 호기심 때문일 게다. 온라인 공연이 시작되기 전 이렇게 출연자들과 연출자가 작품과 준비 과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내용을 보여줬는데, 상당히 흥미롭고 좋았다.
어쨌거나 방구석 1열의 즐거움이란,
내 맘대로 편하게 퍼져 앉아 마치 영화관처럼 각종 주전부리를 입에 넣으며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굳이 인터미션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자유롭게 화장실을 드나들 수 있었다는 게 또 좋은 점이 아니었을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국민들 생활 수준이 높아진 만큼 다양한 문화생활이 보편화되어가고 있음을 상당히 실감하는 요즘이다. 꼭 극장에 찾아가야만 고상하고 있어 보이는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나 역시 팟캐스트에서 오페라를 논하고 있지만, 그것이 꼭 실전을 준비하듯 극장에 가기 위한 준비 운동처럼 여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인문학이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다양한 인간사들을 음악과 스토리로 만나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오페라이기에 더 많은 분들께 그 만남을 주선하고픈 것이다.
클래식을 가까이하는 삶은 막상 경험해보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마음이 풍성해짐을 느끼게 된다. '여덟 단어'의 저자 박웅현 님은 책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클래식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즐길 대상이기에 클래식을 당신 밖에 두지 말라고 말이다.그저 가까이하기엔 나하고는 너무 멀다 생각하기보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한 번씩 공연을 경험해보는 것도 상당히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나만 모르고 있던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