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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an 02. 2023

세월이 가면.... 잘 살아가는 수밖에...

자라는 내내 우리 집은 '신정'을 쇠는 집이었다. 크리스마스의 들뜬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금 찾아오는 '설날'이라는 명절은 어린 내게는 아묻따 즐거움 그 자체였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치르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깨끗이 세수하여 눈에 붙은 눈곱부터 제거하고 나면, 1년에 몇 번 구경 못하는 곱디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손질했다. 그러고는 오빠와 나란히 서서 앞에 앉으신 부모님께 정성스러운 세배를 드렸다. 그러면 여지없이 아버지는 빳빳한 배춧잎을 손에 쥐어주시곤 했다. (세상에 이렇게 쉬운 돈벌이가 또 어디 있으랴...라는 속마음은 고이 접어두고) 어쩜 우리 조상님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습을 만드셨을까 그저 감탄해 마지않을 따름이었다.


내게 무려 한 살을 더 먹여준다는 떡국은 또 어떠한가. 그 쫄깃함과 고소함을 따끈한 국물과 함께 떠먹으면 입안에서 춤추는 떡과 각종 고명의 향연은 그저 등 따시고 배부르면 그것이 행복임을 이른 나이부터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그러고는 찾아뵙는 양가 할아버지 할머니, 친지분들께 그저 정성껏 세배만 하면 영문도 모른 채 나의 복주머니에는 현금이 채워져 갔고, 내어주시는 맛있는 음식들을 배가 터질 때까지 먹기만 하면 되니 세상 설날처럼 행복 가득한 날이 어디 또 있었을까. 그렇게 한 해를 시작한다는 것은 넘치도록 기쁨만이 가득한 것이었다.

<설날 상차림> 차려주시는 음식을 먹던 시절이 즐거웠다.




그 언젠가 내게도 있었던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한 해가 넘어간다는 아쉬움에 흠뻑 젖어 스탠드 불 아래 책상 앞에 앉아 라디오를 틀어놓고 DJ가 읽어주는 사연들에 귀 기울이며 아쉬움을 달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설렘을 라디오 너머 알 수 없는 그 누구들과 함께 나눴었다. 등만 닿아도 잠이 쏟아지던 청년기 시절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12a.m. 까지 기어이 잠을 참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누가 알아준다고 밤을 새워가며 새벽을 보겠노라 기를 썼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요즘처럼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시절도 아니건만, 그 시절에도 다이어리 꾸미는 일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요즘은 그걸 '다꾸'라고들 줄여 말하던데, 사실 왜 그렇게까지 줄여 말해야 하는지가 당최 공감이 안 가지만, 하여간 나도 다꾸에 온 정성을 다하던 시절이 있었다. 색색가지 볼펜으로 날짜를 정성스레 적어 넣고, 가족과 지인들의 생일을 모두 찾아 표시해두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내가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의 다짐을 꼭꼭 눌러 적는 것은 의례 치르는 의식이었다. 그것이 잘 실천될지 말지에 대한 뒷일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나의 다이어리를 보기 좋게 채우는 것이 좀 더 큰 목적이었다고나 할까.(정말 그랬다)




성인이 된 후 젊은 시절 한 해가 저문다는 것은 그저 남자 친구가 없어서 서러움만 가득한 쓸쓸함 뿐이었다. 고백하건대 나는 꽤나 오랜 세월 연애 고자로 살았다. 그에 대한 나름의 타당한 이유들을 갖고 있지만 구차하니 여기에 늘어놓않겠다(이게 더 구차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길...)  


그 시절 나는, 인생길 어디로 향하는지는 잘 모르니 그저 어딘가를 향해 목표를 세우고 끊임없이 달리기의 연속이었다. 그러니 해를 거듭할수록 뭐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었고, 그렇게 한 해가 끝나면 다소 부족했던 부분을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개선하겠노라 다짐하며 새해 첫날을 맞이하면 그만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나이가 들어감에 대해 무거운 짐을 느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세상은 1년이라는 세월 단위로 돌고 돌아 흘러가고 있는데, 어차피 돌고 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오늘은 오늘이고 내일은 그저 내일일 뿐이 아니던가. 작년이 되어버린 어제도 그저 어제였을 뿐이고, 새해가 된 오늘도 그저 오늘일 뿐인 것이다. 이것이 중년의 내가 새해를 바라보며 갖게 되는 마음이다. 그래도 새해를 맞이하는 나름의 한 가지 행사라고 한다면, 집안 곳곳을 깨끗이 청소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새로 오는 해니까 묵은 먼지 정도는 치워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 탓이다.


나는 이제 꿈꾸지 않는 걸까? 100세 시대를 살며 중년의 한 복판에서 벌써 염세적인 태도를 가진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이쯤 되니 뼈저리게 알아버린 것이 있다면, 인생길이 어차피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고 그 꿈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라고들 얘기한다. 물론 아주 훌륭하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이루고 싶은 목표점을 장대하게 세워두고 그게 마음처럼 빨리 현실로 나타나지 않을 때 느껴지는 좌절감과 스트레스가 훨씬 크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여야 또 인생 신화가 한 편 나오는 법이라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사실 삶의 방식이 천편일률적이 아니듯 뭐든 내게 맞는 방식을 선택하는 게 좋지 않겠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흐르는 대로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참 마음에 와닿았다. 내게 주어진 오늘이 어제 세상을 떠난 그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간절했던 시간이라지 않던가. 하루하루가 거저로 주어진다 생각지 말고 오늘 내게 24시간이 던져졌으니 그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매일 이른 새벽 조용히 나의 하루를 계획해 본다.


'적정한 삶'의 저자 김경일 교수님은 책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떠올려볼 만한 좋은 추억이 많은 사람들은 삶이 행복하다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고 좋은 기억들을 쌓아야 하는 건, 미래의 나를 위한 저축이란다.


모든 것이 다 같은 맥락에 있지 싶다. 내 인생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 있는지 나는 알 길이 없으니 그저 긍정의 기운으로 채워 하루하루에 충실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보니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오는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며 보신각에서 종을 치는 것에 그다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전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불꽃 축제에도 큰 감흥은 없다.


나는 그저 매일 아침 다이어리를 펼치고 나의 하루를 그려본다.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 그저 내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채워가며 지켜볼 따름니까...


새해 모두에게 나름의 희소식이라 한다면 올해부터 나이를 국제 표준에 맞추기로 함으로써 떡국을 아무리 열심히 먹어도 한 살을 더 먹지는 않는단다. 마음 놓고 먹어야겠다.

소화력도 예전 같지 않아 설날이라고 차리는 음식을 배 두드리며 먹지도 못하지만(어쩜 그것은 '내가' 음식을 차리는 주체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2023년의 시작에서 새해를 맞이하던 예전의 나는 어땠는지 떠올려봤다. 세월이 흐르며 점차 변해온 내 모습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나는 그저 올해도 그렇게 세월에 발맞춰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좋은 방향을 향하여...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탐라이트가 되었습니다. 이 달에는 순차적으로 앞선 작가님이 지정한 문장을 포함하여 글을 이어가는 글쓰기 릴레이를 진행 중입니다. 제가 지정한 문장은 <나는 그저 올해도 그렇게 세월에 발맞춰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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