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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향 Jan 04. 2023

이름이 너무 흔해서 사인을 고쳤다

곧 써먹을 날이 오겠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친정집 근처에 새로운 마트가 생겼다. 엄마는 별로 관심 없는 듯 나에게 전단지를 건넸다. "집에 가는 길에 살 거 있으면 들러볼래?" 나이를 먹으며 변화된 수만 가지 중에서 한 가지, 패션잡지보다 마트 전단지가 더 재밌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을걸. (여기서 왜 나이 타령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반짝이는 눈동자로 요리조리 전단지를 훑어 내리다가 시선은 어느새 아래 칸에 고정되었다. "와~ 선물이 꽤 고급진데?" 일주일 동안 오픈 기념 선물로 민트색 장바구니를 준다고 한다. 첨부된 사진을 보며 나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집에 보유하고 있는 장바구니들과 나란히 놓여있는 모습을 떠올려봐도, 단연 돋보이는 색상이 될 터였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어차피 장도 봐야 했기에, 서둘러 마트로 향한다.

 

우리 집에서 친정은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새로 생긴 마트는 그 사이에 있어서, 할인율이 괜찮다면 자주 왔다 갈 요량으로 포인트 적립카드도 신청한다. 친절한 점원이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 네! ooo입니다."

"죄송하지만 같은 성함의 고객님이 등록되어 있어서, 성함 옆에 숫자 2를 붙여도 될까요? 아니면 다른 가족분의 성함을 등록하셔도 됩니다."


또다. 또 이런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마트에서도 듣던 소리였다. 그나마 여긴 숫자 2가 붙지만, 집 근처 마트는 동명이인이 3명이다. 어쩌다 보니, 그중 한 명은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계산대 앞에서 남들 이름 세 글자만 말하면 끝나는데, 나는 아파트 이름, 동호수까지 말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고선, 그냥 남편 이름을 쓰 있다. 우리 부모님은 왜 귀한 딸내미 이름을 이렇게 성의 없이 지은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 원망 섞인 하소연이 입 밖으로 툭 흘러나온다. 평생 부를 이름인데, 좀 특별한 걸로 지어줬으면 얼마나 좋아. 성인이 되었을 때는 개명을 생각해본 적도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정도의 이름은 아니었기에 그대로 지냈다.


맥이 빠진 채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저녁을 먹고 잠시 책상에 앉았다. 새로운 해가 떴고, 새해 관련 생각이나 글을 끄적여보기 위해서다. 빈 노트에 이런저런 글자를 적어 보다가 문득 낮에 일이 떠올랐다. 손에 힘을 잔뜩 뺀 채 내 이름 세 글자를 흘리듯 적어본다. 왠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이 이름으로 살아온 인생도 쓱~ 한번 돌아보고 싶고, 저녁 감성이 마구 품어져 나오는 것 같다. 너무 흔한 이름 덕분에(?) 내 삶도 평범하고 흔하게 흘러왔던 것 같기도 하다.  평범하고 흔한 인생은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묵묵히 걸어온 발걸음을 돌아보면, 성실하게 살아온 것은 분명했다. 나는 그저 올해도 그렇게 세월에 발맞춰 성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이왕이면 더 멋진 이름으로...


더 멋진 이름은 어떤 이름일까? 여전히 이름을 바꾸는 건 내키지 않는다. 이런저런 상념 끝에 또다시 이름을 흘리듯 낙서하다 보니, 제법 그럴싸한 모양이 만들어졌다. '오잉? 좀 멋진 것 같기도 한데? 별도 한 번 넣어볼까?' 그렇게 시작된 이름의 향연들이 나를, 사인 디자인 작업으로 몰입시켰다. 우습게도 새해 들어 가장 먼저 생산한 결과물이 내 이름 글자를 갈겨쓰며 만든 새로운 사인이었다. 영문으로 글자를 연결해 그림 그리듯 적어 보며, 리본 같은 하트와 점 같은 별도 달아본다. 나름대로 개성 있는 사인이 뚝딱 만들어졌다.


2023년부터 새롭게 사용될 사인! 이게 뭐라고 이토록 뿌듯한 걸까? 이름을 바꾼 것도 아니고, 사인만 바꿨을 뿐인데  이렇게 예쁜 이름이었나 싶기도 하다. 하얀색 빈 노트 안에서, 흔하지만 소중한 내 이름이 가치롭게 빛나고 있다. 이 사인이 언젠가는 노트 안을 벗어나 곳곳을 누비며 다니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그래! 올해 포부는 너로 정했다. 이제부터는 이 사인을 널리 퍼트려보기로 한다. 머지않아 써먹을 날이 오겠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이름이 너무 흔해서 고민이라면, 지금 당장 사인부터 고쳐보기를 추천한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이 달에는 순차적으로 앞선 작가님이 지정한 문장을 포함하여 글을 이어가는 글쓰기 릴레이를 진행 중입니다. 제가 지정한 문장은 <소중한 내 이름이 가치롭게 빛나고 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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