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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Feb 07. 2023

아버지와 김치찌개

주말이 다가오면 항상 식구들 삼시세끼 뭘 해줘야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이다. 그나마 꼬마가 이제는 매운 음식을 제법 잘 먹을 줄 알게 되어서 예전보다는 메뉴 선택의 폭이 한층 넓어져 좀 나아졌다. 지난 주말 뭘 먹을까 고민 끝에 오랜만에 돼지 살코기를 커다랗게 쑹덩쑹덩 잘라 넣고 김치를 잔뜩 깔아 양념을 넣어 돼지고기 김치찜을 만들었다. 자작하게 양념 국물이 베어든 고기 덩어리에 흐물흐물 잘 익은 김치를 얹어 한입에 쏙 넣으니 세상에나 그 맛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는가.

 "돼지고기랑 김치가 만나면 실패란 없단 말이지~"

맛있게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내며 남편이 하는 말이다. 말해 뭐 하냐며 격한 동의의 뜻으로 다시 한 무더기 고기와 김치를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입은 더없이 즐거웠지만 그 순간 문득 친정아버지가 떠올라 잠시 마음이 멈칫했다.




나는 친정에서 차로 5분이면 닿는 거리에 살고 있다. 해외로 오래 떠돌긴 했어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기 싫은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혼자되신 친정아버지와 가까이 지내는 것이 응당 마땅하다는 나의 자식 된 마음에서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한다.


아무리 가까이 살아도 각자의 삶이 무에 그리 분주한 건지, 자주 드나들며 식사도 챙겨 드리고 하면 좋은데, 생각처럼 그렇게 착실히 자주 들여다보질 못한다. 나도 자식 키우며 깨닫는 바가 참 많지만, 어쩜 그렇게 자식은 늘 제 살기에 바빠 부모님 생각할 겨를이 없는 건가 싶다.


그나마 나의 찔리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무마시킬 수 있는 건 아직까지도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계신 아버지 덕분이다. 몰입할 일이 있으시기에 혼자된 그 세월을 그나마 견디고 계시기 때문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 무렵 이미 몸 상태가 너무 많이 안 좋아지신 때에 간혹 아버지께 멸치볶음은 어떻게 만들면 되는지, 나물은 어떻게 무치면 되는지, 기운도 없으면서 그렇게 계속 얘기를 해주셨더란다. 본인 떠나면 혼자 남은 남편이 밥이나 제대로 해 먹을까 염려되셨던 모양이다. 요즘은 훌륭한 반찬 가게도 천지에 널렸는데 엄마는 어째 괜한 걱정을 그리도 하셨을까.. 어쨌든 엄마 생각에 아버지도 자립이 필요하다 생각하셨던 게지...


실제 아버지는 처음엔 너무도 서툴렀지만 그래도 혼자 이렇게 저렇게 반찬도 만들어보시고 요리도 해보시더니, 스스로 개발하신 나름 희한한(??) 음식들을 가끔 내어주시기도 한다. 이게 뭐냐며 양미간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먹어보면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 놀랄 때도 많았다. 그래도 종종 아버지댁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어느 날 그런 말씀을 하신다.


 "거 희한하게 말이다.. 김치찌개를 내가 만들면 그렇게 맛이 없어..."

 "아우 아부지, 김치엔 이미 간이 다 배어 있는데.. 김치 잘라 넣고 물 맞추고 간만 맞추면 뚝딱 끓여지는 게 김치찌개인데 그게 왜 맛이 없을까나요?"


그 쉬운 김치찌개가 늘 맛없게 끓여져 아쉽다 하신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 그 간단한 음식 하나를 내가 해드리질 않았구나..

마음이 잠시 따끔했다.




오전에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다. 요즘 손쉽게 육수를 낼 수 있는 동전 육수 두 알과 냉동실에 있던 고등어 한 마리를 챙겨 들고 갔다. 아버지는 출근하고 안 계셨지만, 빈 집에 혼자 있는 강아지도 좀 돌봐주고 딸아이는 피아노 연습했다. 나는 부지런히 가져간 재료와 냉장고를 털어 고등어 김치찜을 만들었다. 김치를 잘라 깔고 고등어를 얹은 후 갖은양념과 육수를 부어 보글보글 끓여냈다. 맛을 보니 제대로 간이 잘 배었다.


사진을 찍어 아버지께 문자를 보냈다.

 '아부, 잠깐 들렀다가 고등어 김치찜 만들어놨으니 저녁에 드세요'

아이와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줄 시간이 되어 부지런히 일어섰다. 이렇게 우렁각시 노릇 하지 말고 주말에 와서 같이 끓여 먹을걸.. 다음 주말에는 와서 된장찌개 끓여 먹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저녁에 아버지께 전화드렸더니 아주 맛있게 드셨다며 흡족해하셨다. 그거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 자주 좀 해드리지 나도 참...

아이 하나 키우며 내 앞가림한다는 게 어쩜 이렇게 하루가 분주하고 정신없는지 모르겠다. 애 데리고 들락거리며 잠시 짬날 때 글 쓰고 틈날 때 해야 할 일들을 쳐내다 보니 집안일을 말끔하게 처리할 시간도 사실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어쩌겠나.. 복잡하게 살고 싶은 게 나의 선택인 것을...

주말에는 아버지랑 소시지 당면 잔뜩 넣고 부대찌개나 끓여 먹을까.. 아님 지글지글 삼겹살이라도 구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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