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뮤 Mar 02. 2023

악녀의 유혹은 그렇게도 달콤했을까..

feat. 오페라 카르멘  

모처럼 지난 토요일 혼자 호젓하게 오페라 관람을 다녀왔다. 오페라 극장이 아닌 메가박스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사실 영화관에서 오페라 작품을 상연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소 대중들에게 있어 거리감이 느껴지는 클래식이라는 장르 중에서도, 특히나 어느 외계의 것쯤으로 여겨지기 일쑤인 오페라가 그저 다가와주길 기다리지 않고 한 발짝 성큼 대중들을 향해 바운더리를 벗어나 발걸음을 내디딘 나름 획기적인 방편이었단 생각이 든다.


실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같은 경우 자신들의 프로덕션을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영화관으로 보급 중에 있기도 하지만, 그들의 상주 극장인 카네기홀 앞마당에서도 빅 스크린을 통해 공연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영화관에서 만나본 오페라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공연되었던 '비제'의 '카르멘'이었다. 내가 자라는 내내 오디오 마니아셨던 우리 아버지는 카르멘 하이라이트 연주곡을 참으로 자주 틀어두셨는데, 당시 들었던 레코드는 성악가들 없이 오케스트라 연주만 있는 버전이었다. 그렇게 접해왔던 나는 카르멘이 그저 연주곡인줄로만 알았기에 후에 노래와 함께 접했을 때 되려 그게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것은 즉, 성악가들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더라도 오케스트라 자체가 단순히 '반주'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완성된 음악 작품으로 완벽했음을 의미한다.


1875년 3월에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던 카르멘은 당시 스토리가 지나치게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상당한 혹평을 얻었다고 하지만, 오늘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작품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데에는 비제의 완벽하고 아름다운 이 음악의 공이 실로 대단하고 볼 수 있다. 3시간의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단 한순간도 귀를 사로잡지 않은 부분은 정말 없었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보자면 이러하다. 극은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담배 공장 앞의 광장에서 시작된다. 경비 기병대 소속의 호세는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가 정해준 순박한 시골처녀 미카엘라와 약혼한 사이이다. 정오를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담배 공장의 여공들이 점심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오는데, 그중 뭇남성들의 관심과 시선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매혹적인 집시 여인 카르멘이 나타나 호세에게 추파를 던진다. 이때 부르는 곡이 바로 그 유명한 '하바네라'인데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때 당신은 날 조심하세요'라는 내용이 등장한다.


남성 편력으로는 세상 그 누구보다 닳고 닳았을법한 카르멘의 무심한 척 훅 들어오는 유혹에 이 순진한 청년 호세가 흔들린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 걸까. 담배 공장에서 카르멘이 다른 여공과 다툼이 일어났는데, 상대의 얼굴에 칼로 상처를 내어 체포되는 일이 생긴다. 유치장으로 끌고 가기 위해 포박하는 호세를 카르멘은 쉬지 않고 유혹하고, 이미 그녀에게 혹한 호세는 이를 거스를 재간이 없다. 카르멘은 호송 중 자신이 호세를 밀치고 도망갈 테니 실수로 놓치는 척해달라는 계획을 세워 행동에 옮기고, 이 일로 인해 호세는 두 달간 영창살이 신세가 되고 만다.


호세가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남성들은 여지없이 카르멘에게 접근하지만, 그녀는 냉담하다. 심지어 나의 사랑은 돈 호세라고 말하며 그들의 구애를 거절하기에 바쁘다. 석방되어 나온 호세는 다시금 카르멘과 마주하게 되는데, 역시나 그녀에게 흑심을 품은 채 호세에게 귀대를 명하는 상관 수니 칼싸움까지 벌이는 하극상을 벌인 후 더는 군으로 돌아갈 수 조차 없는 신세가 돼버린다. 결국 그는 카르멘을 포함한 집시들로 구성된 밀수업자들의 무리와 함께 산으로 들어가기에 이른다.


그저 한 순간 지나는 바람이었을 뿐인 호세라는 존재는 이제 카르멘에게 있어 귀찮음 그 차체이다. 카르멘은 호세에게 왜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냐며 빈정대지만 호세는 그녀 곁을 떠날 수 없다. 빈정대는 그녀에게 죽일 듯 덤비며 역정을 내어 봐도 카르멘은 콧방귀만 날린다.


이제 호세의 사랑은 더는 사랑이 아닌 집착으로 변질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든 그 여인 하나만 바라보고 당최 적응할 수 없는 밀수업자 신세가 돼버렸는데, 호세에게 있어 현재의 위치는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해 그저 입에 물고 있어야 하는 껍질채 먹은 사탕과도 같은 것이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에 카르멘의 치정은 바람 잘날 이 없을 뿐이고, 호세의 애증은 커져만 간다. 그러던 중 호세를 찾아온 약혼녀 미카엘라가 고향의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하고, 호세는 실로 마지못해 미카엘라와 산을 내려가며 지금은 떠나지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일방적으로 외친다.


카르멘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왔던 투우사 에스카미요와 그녀는 이제 연인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런 카르멘을 다시금 찾은 호세는 세비야의 투우장 앞에서 그녀와 재회하게 되는데, 그저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인 카르멘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 사랑이 전부 인 줄로만 알았던 순진한 청년이 다시금 얼굴을 마주하고 묻는 질문이 고작 이러하다. 정말로 에스카미요를 사랑하느냐는 것이다. 카르멘은 에스카미요를 죽도록 사랑하고 호세와의 관계는 끝장났다고 호기롭게 외친다.


순간 질투에 이글대는 호세에게는 한 가지 옵션밖에 남지 않았다. 바로 카르멘의 등에 비수를 내리꽂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쓰러지고 호세는 절규하며 외친다. 당신이 나를 묶어두고 놓아주지 않았다 말이다. 자신의 엄청난 범죄에 대해 그는 그렇게라도 핑계를 댔어야만 했을게다. 호세는 르멘의 시신을 안고 자신이 이 여인을 죽였다고 외치며 페라 전체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사랑의 민낯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이 늘 그렇게 아름답기만 하던가. 어디 서로 간의 주파수가 항상 일치하는 경우만 있던가. 한 사람의 마음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식어버리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혼자서 사랑의 온기를 키워가고 있는 상대방은 당혹스럽게 마련이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들 하는데, 카르멘처럼 아직 물정을 모르는 순박한 청년의 마음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게 진정 선수의 길일까. 장사에도 상도덕이 있을진대 사랑에도 최소 모럴은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을, 이건 페어플레이가 아니니 카르멘은 그저 '나쁜 년'이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이 순박한 청년의 마음 길은 그저 예고된 경로를 고스란히 따라가고 있다. 불시에 훅 들어온 떨림의 사랑이 상대의 배신으로써 귀결되는 집착으로 변질되어 결국은 주체 못 할 질투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질투란 녀석은 모두를 순식간에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기어이 죽음으로 종결되는 하나의 비극만이 남겨졌을 뿐이다.


카르멘이 호세로부터 마음을 거둬들였을 때 '그래? 네 맘이 변했으니 나도 이제 됐어!'라며 쿨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을 탓해야 할까. 어디 마음이란 게 그렇게 종잇장 뒤집듯 대로 달라지던가. 그저 상대가 세상 온갖 풍파에 닳고 닳은 자신과는 근본적으로 급이 다른 선수였단 것을 몰라본 호세의 순진함을 나무라야겠지만, 꼭 이처럼 극단적인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어쩜 사랑은 그토록 어렵게 어렵게 사람을 철들어가게 하는 것인지, 우리는 그렇게 주변에서 엇갈리는 사랑들을 아쉽잖게 목격하지 않던가..


어쨌든 질투라는 감정에 눈이 멀어 살인까지 저지른 호세를 감싸줄 마음은 전혀 없다. 줏대 없이 사랑에 휘둘려 인생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그가 멍청하단 생각마저 드니 말이다. 살면서 '나쁜 남자'라는 치명적인 상대를 만나본 경험이 없는 내가 감히 내던질 말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나쁜'이라는 타이틀을 뒤춤에 숨긴 자들의 유혹이란 정말로 그렇게까지 떨쳐내기 불가할 만큼 강력한 걸까?


'마음'이 어찌나 의지대로 돼주지 않는지를 너무도 잘 아는 현대인들은 그 마음을 의지대로 이끌고 가기 위해 각종 루틴과 기록을 통해 스스로를 다잡고 또 잡는다. 호세도 멍하니 보초만 서다 웬 여자의 눈빛에 가서 꽂히지 말고, 당시의 심경 변화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 내렸다면 좀 더 냉정하게 객관화해서 스스로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엄청난 범죄로 몰락하여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아니 애초 급이 다른 선수에게 휘둘리는 일도 안 일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은 자아가 바로 서지 못했던 탓이다. 그가 다독을 통해 다양한 간접 경험을 많이 쌓고 글을 쓰며 자신의 내면을 돌볼 수 있었다면.... 이런 명작 오페라가 탄생할 수 없었겠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해 본다.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결국은 이런 게 그저 사람 살아가는 모습인 게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페라 상식 번외 편 <오페라의 유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